20여 년 전 어느 교회 부목사로 사역할 때의 일입니다.
비교적 상류층의 지식인이 많은 그 교회에는 저의 대학교 동창생들도 꽤 많이 있었는데 불신자 가정에서 주일학교도 다녀보지 못한 채 대학부 생활만 하다가 목사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여 갑작스럽게 부목사사모가 된 저로서는 그 교회의 장로님이나 권사님의 자녀들인 그 친구들에게 잠깐 동안 이나마 공연히 주눅이 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시골에 군목으로 있는 동안 동창들은 이미 남편들이 의사나 교수, 자영업으로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고  예나 제나 세상이 감당 못할 경제관을 갖고 있는 목사님과 살면서 예전의 친구들과 학창시절의 자유로움을 가지고 교제하기는 어려운 처지였습니다. 그 때는 저도 아직 사모의 정체성이 확립되지 못한 20대의 젊은 엄마였기에 친구들이 유명유치원이나 개인레슨을 이야기 할 때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면서 자주 마음이 불편하곤 하였습니다 친구들도 저를 온전히 사모님으로 대하지도, 그렇다고 예전의 친구로 대하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상태를 유지하곤 했는데 약간 제 마음을 상하게 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그 교회의 재력있는 권사님의 외동딸로 남편은 촉망받는 의사이니 가문이나 경제력, 무엇 하나 손색이 없는, 누가 보아도 복 받은 여성 이었습니다 그 친구도 저와 같이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고 있었는데 늘 최고의 유치원에 개인레슨, 집에는 일하는 사람까지 있는, 게다가 남편은 돈도 잘 벌지만 믿음도 좋은 모범가족이니 그 친구의 교육방침, 영양섭취와 유치원선택, 유행하는 어린이 패션까지 복 받은 집안은 다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은, 어떤 난관의 그림자도 범접치 못할 그런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 보기에 저는 자녀 교육에 무심하여 유치원도 안보내고 아이들 건강도 신경 안 써서 생수도 아닌 수돗물을 마시며 추운 겨울에도 냉정하게 어린자식 걸리고 업혀서 새벽기도 나오는 융통성 없는 사모일 뿐이었습니다. 그런 은근한 갈등 끝에 저는 개척을 하고 우리 가족의 형편은 사실 더 안 좋은 시기를 보내는 동안 저는 대학동창들과는 만남을 피하였는데 그 친구에 대하여는 남편이 더 유명한 의사가 되고 장로가 되었다는 소문은 들었고 사실 그들은 불행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좋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17년이 지난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우리는 자녀를 대동하고 만나게 되었는데  지난 날의  몇 년 동안보다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우선 서로가 놀란 것은 무공해 유기농 음식만 먹은 그 집 딸이 천식과 질병으로 인해 거의 자라지 못한데다가 그런 신앙 인텔리 부모 밑에 그 집 아들은 갖은 반항 끝에 간신히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 중에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은근히 가지고 있던 우아한 교만을 내려 놓으니 이전엔 상상도 하지 못하였던 감사가 터져 나오며 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어떤 사람도 용납할 수 있게 되어서 부부가 기쁘게 청년부 교사를 하고 있다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친구의 남편인 장로님은 어려운 시기를 거쳐 오면서도 오직 주님께만 의지하여 자녀들을 믿음으로 잘 기른 사모님께 진심으로 존경을 보내신다며 몇 번이나 치하를 하셔서 부족한 사람을 더욱 부끄럽게 하셨는데 저 또한 낙담이나 울분에 빠지지 않고 자녀의 문제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서 위기를 극복하고 청년부 지도자들이 된 저의 친구부부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날의 갈등을 넘어서서 따뜻하고 진실한 믿음의 친구를 다시 만나게 하신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10-13 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