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4

  로또북권을 사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대부분의 무료한 사람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세계일주 혹은 긴 여행을 하고 싶다는 대답이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짜증나는 일상을 벗어나서 식사준비도 청소도 하지 않는 호텔생활, 그리고 멋진 신세계, 이국적인 카페에서의 커피 한잔, 지중해와 스페인의 낭만적 향취.......[영화나 그렇지요]
  그러나 정말 그렇게 짜릿한 즐거움의 연속이 될 수 없음은 여행 좀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절감하는 일입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억지로 맛없는 빵을 챙겨먹고 어젯밤 빨아서 덜 마른 빨래를  비닐에 싸서 가방에 쑤셔 넣고 1불을 아끼려고 무거운 짐가방을 낑낑대며 들고.... 한 번 타면  7~8시간이 기본인 버스를 타고 내려서 상상보다는 영 썰렁한 있는 유적지 한 곳 보고  맛없는 점심을 구역꾸역 먹고 [딱히 따로 사먹을 곳도 모르거니와 그럴 시간도 없고 말도 안통하고 무엇보다도 밥값이 여행비에 포함되어 있으니까]다시 버스를 타고..... 국경이라도 지나려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루한 수속, 게다가 한국보다 잘 사는 유럽이나 미국에 가면 우리가 외국인 근로자 보던 시선으로 단박 무시하는 태도에 한국에선 그다지 먹지도 않던 고추장이나 깻잎 한 장을 아끼고 아껴 먹으며 혹시 냄새 날까 온갖 눈치를 다 보고, 김치찌개라도 생각나면 그건 정말 동아가고 싶은 그런 것이 긴 외국여행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정말 가보고 싶었던 곳을 쌈박하게 다녀도 이처럼 피곤한 것이 여행인데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역사와 사회에 대한 지식도 없이 하는 여행은 고급 노숙자요 방랑자의 시간 때움일 뿐입니다
  열 시간이상을  버스타고 가서 보는 고린도의 나뭇잎 무늬가 새겨진 기둥[코린트 양식]들이 성경도 미술사도 알지 못하는 지중해 관광단에게 쓰러진 돌기둥, 무너진 성벽이상의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루디아 기념교회는 그저 흔한 유럽의 한 작은 교회일 뿐이고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3:20]”는
말씀을 모른다면 라오디게아 교회 유적은 그저 한무더기 돌더미와 풀밭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거기다 긴 여행을 함께 하다 보면 한껏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하던 위선의 껍질이 벗겨지며 내면에 감춰진 상처와 성품이 다 드러나게 되어서 오만 정이 떨어지던지 아니면 드물게 아주 흉허물 없는 친숙한 사이가 될 수 도 있겠지요
이렇게 여행의 낭만 뒤에 감춰진 실상을 어느 정도는 알기에 시어머니와 믿지 않는 동서, 네 명의 손 윗 시누이와의 긴 여행이 가족보다 더 가까운 교인들을 두고 가는 나에게는 긴장을 수반하는, 즐겁지만은 않은 계획인데 “죄송하지만 사모님 안가시면 안되요?” ‘서운해요’ “교회 오기 싫을 것 같아요”라는 애교 섞인 문자와 매일 기도로 챙기지 않으면 염려되는 교인들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게다가 신앙은 없으나  믿는 사람보다 훨씬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큰 동서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동서와 시누이들, 시어머니 사이에는 신앙을 갖기 전에 주고 받았던 상처의 흔적들이 아직도 선명히 남아있었고 저도 거기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기에 정말 많은 기도가 필요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