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을 읽고 미국에서 초청이 왔다.
그러나 나는 선뜻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아직까지 미국에 가 본 일이 없어서 비자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불법체류를 많이 해서
비자를 내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 많은 여비를 어디서 마련할 것인가?
이 궁리 저 궁리 해봐야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대답한 말이
“주님이 보내주시면 갈 수 있을거에요.” 였다.

그렇게 나의 미국비자 신청은 시작되었다.
여행사에 전화를 해 보니 비자 서류로 필요한 것들을
불러주는데 준비해야 하는 서류들이 만만치 않았다.

인터뷰 날짜가 잡혔다.
인터뷰에 합격시키기 위해 여행사를 방문하란다.
미리 서류를 꼼꼼히 챙겨보던 자매는
머리를 저으며 “이 서류 가지고는 비자 인준이 안나올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사모님! 이렇게 해보세요.
누구에게 돈을 며칠 빌려서 통장에 넣어 놓으셔야해요.
통장 잔액이 580원가지고는 도저히...
인터뷰 끝나면 빌린 돈을 돌려주시면 되거든요.”
자매는 난처한 듯 애원하듯 나에게 말했다.

“빌렸다가 다시 줄 돈을 통장에 넣어놓아야 비자를 주다니?
통장에 잔액이 없어서 비자가 안나온다고 해도 나는 괜찮아요.
내 통장엔 잔액이 있을 수 없는 당연한 사실을 말 할 테니 걱정 말아요.
지금 병원비 몇 만원이 없어서 병원에 못가는 사람이 내 곁에 수두룩하니
잔액 없는 것이 마땅 하잖아요.
통장에 돈을 넣어 놓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안 주는 그런 사람을 비자 내주지 말아야지.
통장 잔액이 그 사람을 가늠하다니 옳지 않아요.”
자매는 기가 막힌지
“인터뷰에 실패해도 저로서는 어쩔 수 없는 거예요” 하고 나에게 다짐을 받았다.
“주님이 보내 주시면 가는 것이고
주님이 안보내시면  못가는 것이지 뭐!”

겨울의 아침 오전 9시 이전인데도 비자를 받으려는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나도 그들 무리 중에 끼어서 인터뷰 자리에 들어갔다.
인터뷰 심의관은 나를 위 아래로 훑어 보았다.
다른 서류는 하나도 안보고 동아일보에 난 기사 복사물을 보더니
통역관에게 그 내용을 물었다.
통역관이 나도 알아 들을 수 없는 얘기를 그에게 진지하게 하였다.
그러자 그는 아무 것도 묻지 않고
단 번에 OK! 명쾌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서투른 발음으로 “잘 다녀오세요!”라고 인사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집에 배달된 여권을 보니 자그만치 10년 비자를 내 준 것이다.
주님이 하시면 580원도 얼마든지 넉넉한 돈이 아닌가!

그러면 이젠  580원으로 미국을 갈 비행기표를 사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 주님이 나를 미국에 보내 주시려는 사인이 왔으니
이번에도 580원으로 얼마든지 넉넉히 갈 수 있다고 믿었다.

비자를 받은 지 열흘 만에
미국의 한 교회에서  비행기 표를 사서 보냈다는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주님이 보내주시는 미국길이
걸음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넘칠 것을 또 확신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분은 통장 잔액 580원 으로도 10년 비자를 내 주실 수 있는 분이고
그 분은 통장 잔액 580원 으로도 얼마든지 미국 왕복 비행기표를
사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직 그 분만 믿고
오십여 평생에 한 번도 가 본 일 없는
지구 반대편의 멀고 먼 나라 미국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