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들과 같이 되었다합니다 

그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을 증거하기 위해 그가 그들의 상태가 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을까?

상상해본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자신의 특권인 선민사상과 가말리엘 문하생으로서의 율법학자다움과 

또한 모든 고상함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버렸던 걸 생각하면 제 맘도 착찹해집니다 


가난한 사람들 곁에서 그들을 위해 제 마음을 열고 늘상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과

실제로 내가 가난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일함과 내 사악함과 내 이기심의 나락에서 서성이는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길 기도합니다


바울은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으니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한다합니다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거리낌없이 요구할 수 있는 바울의 당당함이 부럽기만 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를

  눈여겨 보라" 빌립보 3:17절


자랑스런 학위와 그 결과 주어지는 기득권과 일상의 고상함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배설물로 여기고 그를 닮기 위해 몸부린 친 바울을 우린 실로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때문에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는 바울의 목소리 앞에 간구의 심령을 갖습니다 


"네.당신과 같이 되기를, 그리고 당신과 같이 된 우리들가운데 속해지기를 구합니다"


바울이 처음으로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복음을 전할 당시에 그의 육체는 약하였다합니다

그래서 갈라디아 교인들이 얼마든지 시험들 수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교인들은 

그를 예수 그리스도처럼 천사처럼 대하였다 합니다


우린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자들이 늘상 건강하고 행복한 줄 알면 착각입니다

왜냐면 복음을 증거하는 자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간들이기에 인간들이 당하는 생노병사를 비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복음을 전하기에 오는 필연적인 핍박이 안밖으로 있습니다


바울에게는 특별히 주신게 육체의 연약함입니다

우리들에게도 많은 육체의 연약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발견해야할 것은 내 육체의 연약함속에서 그리스도의 은혜, 곧 복음이 충만해진다는 것입니다


특히 복음을 증거하는 자들에게는 그들의 내면속에 복음이 보름달 그 이상으로 충만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기까지 그들이 겪는 시련의 다양함을 우린 이해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아니 제게도 그러하고 바울을 닮으려하는 자들 모두가 그러하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제게는 목회를 은퇴한 후 다시 또 선교사로 캄보디아에서 사역하고 계시는 형부가 계십니다

결혼 전부터 폐 하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복음을 증거하지 않을 분입니다 

거기에 루프스 질병까지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지금 선교현장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보통 현지에서 원어로 복음을 증거하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허나 형부는 여호와의 지혜와 지식의 영으로 크메르 원어로 복음의 핵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크메르 원어로 복음을 증거할 때 한 영혼, 한 영혼이 돌아 오는 것을 직접 보는 순간에 깃드이는 

하늘 기쁨이 선교현장에서의 모든 어려움을 덮고도 남는다합니다 


이 형부 꿈은 선교지에서 죽는 것입니다

이 형부를 보면 사도바울에게 그리스도의 은혜를 온전케하시기 위해 육체 가시를 주셨다는게 피부로 와닿습니다


바울은 노골적으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자신이 연약함으로 복음을 전했다" 고 말씀해 주십니다 

자신의 병약한 상태속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복음)가 온전해지는 경험을 했기에 전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병든 자들에게 얼마나 큰 희망의 말씀인지 모릅니다 

내가 연약한 순간처럼 그리스도의 은혜의 사슬에 강력하게 메이는 순간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 분의 은혜는 생각보다 크고 높고 넓고 깊습니다

내 연약함이 결코 내 연민을 자극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자극할 뿐입니다


상식적으로 말하면 바울의 병듬은 복음을 전하는데 장해물이되어야만 했습니다

허나 복음은 복음 전하는 당사자의 어떠함보다 훨씬 크고 강력하다는 것을 갈라디아 교인들이 직접 체험하는가운데

십자가의 주를 영접하였습니다

근데 지금 그들은 할례도 행해야한다니 너희가 누렸던 복(십자가의 주)은 어디 있느냐?"고 묻습니다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갈4:15 


바울이 던지는 질문을 한번쯤 우리들 자신들에게 들려주는 것도 좋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아버지! 

갈라디아 교회가 바울에게 눈이라도 빼어 줄 수 있으리라만큼 바울을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갈라디아 교회가 주 안에서 한 몸된 지체로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였습니다

허나 그 사랑을 이간질시키는 율법주의자들로 인해 그 그리스도와 한 몸된 지체로서의 사랑대신

의혹을 품게 되는 바울의 아픔속에 오늘도 그리스도의 은혜의 온전함속에 사랑과 공의와 진리와 용서와 긍휼를

구하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