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을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갈라디아서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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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에는 우리에게 용기와 담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현 시점에 힘을 실어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아멘! 갈라디아서 5:1


바울은 자신의 직분이 사람들에게서, 사람으로 말미암아 난 것이 아니라 주장합니다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들은 하나같이 인간본성을 근거로 나온 것으로 인간 본성의 한계를 극복하지를 못합니다

선악간의 인과응보와 소경된 무지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얼마전에 우리는 광야교회가 모세와 아론의 누나 미리암이 죽은 후 물이 없어 물을 달라고 부르짖던 백성들을 위하여 

여호와께서 물을 주신 사건(민20:1~13)을 두고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고

매듭진 것을 묵상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조차 여호와께 불순종했지만 여호와께서는 그 불순종의 행위를 

뛰어넘어 당신 백성을 위하여 물을 주신 사건을 여호와께서 거룩함을 나타내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만일에 우리가 사람의 수고와 노력과 선행으로 물을 마시게 된 것이라면 

거기에 굳이 여호와께서 거룩함을 나타내셨다고 말씀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들과 전혀 상관없이 자녀들의 목마름을 해결해주셨기에 

그분은 우리들가운데서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신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린 그분의 거룩 거룩 거룩하심을 항상 인정할 때 내 수고와 노력과 선행과 상관없이 

거저 마시게 된 진리의 생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함 앞에 겸허해질 수 있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는 결단코 인간 본성으로부터 나온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습니다

이는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함입니다(고전1:30~31) 


이 말씀은 예수가 아니면 구원이 불가능한 인간 본성의 악함을 말해주고 있는 동시에 인간들이 얼마나 

자신들을 나타내기 좋아하며 자랑질 하기를 좋아하면 이토록 인간 자랑 차단을 선언하셨을까? 생각하게 만듭니다


실로 인간본성에서 나온 것이라곤 인간끼리의 영광과 자랑과 의를 조성하는 인간 바벨탑일뿐입니다

  

전능하신 신이 그까짓 물 한번 주는게 뭐 그리 당신의 거룩함을 회중들속에 나타낸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궁극적으로 생각해보면 그 물은 한 번 마시면 또 마셔야하는 물이 아닌 영생의 물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으로 말미암아 

각자의 심령에 오신 진리의 성령을 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로 인해 이러저러한 반문이 생기는 자들을 위하여 

그분께서는 당신에 관한 전후사방을 알 수 있도록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또한 이 성경을 우리들에게 맡기셨다는 것을 자각하는 자들에게는 누구라도 예외없이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는 말씀안에서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만일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배운 율법을 전했다면 영광과 성공의 삶을 살아갔을터이나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나사렛 예수로 말미암아 복음을 전하게 되니 순교하는 날까지 핍박과 고초를 당합니다 


그렇다하여 그가 전한 복음이 율법이 아니냐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의 복음은 철저히 율법(모세오경)을 상고하는가운데 발견되어지는 주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피의 제사를 드린 것도 바로 어린양 예수를 묵상케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날도 복음을 전하면 율법세력과 충돌하게 되여 바울처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될까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더 더욱 알기 위하여 성경을 묵상하는가운데 날이면 날마다 새롭게 발견되어지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음이 어제보다 더 새롭게 활기차게 나타나는 경험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의 아버지는 당신의 거룩성을 그분의 아들을 통해 영원히 나타내고 계십니다

곧 패역한 나(세대), 불순종의 나(세대)로부터 나(우리)를 건지시기 위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자기 아들의 살과 피를 주셨고 그 예수를 알 수 있도록 성령을 부어 주셨다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선악간의 시시비비를 초월하여 당신의 자비와 긍휼과 사랑과 공의를 십자가 사건으로 보여주신 아버지 하나님께선

이렇게 값없이 은혜로 날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내가 누리는 은혜와 평강은 철저히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 것입니다

사람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어느 사람이 제게 은혜와 평강을 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율법을 잘 지켜 율법의 기득권자들로부터 받는 칭찬과 인정이 은혜와 평강을 대신할 수 있습니까? 

내가 혹여 율법을 어겨도 율법의 기득권자들이 변함없는 칭찬과 인정과 관심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그래서 본질적으로 복음은 사람의 영광을 구하지 않게 됩니다

사람의 인정 받으면 좋겠지만 그것에 집착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우린 할 수만 있으면 덕을 세우는가운데 주를 위하여서라도 인정받는 신뢰할만한 성품으로 나가야함은 분명합니다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복음안에서이지 율법적인 행함안에서가 아닙니다

 

"내가 지금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일입니다

 내가 이제와서 사람을 기쁘게 하겠습니까? 내가 아직도 사람을 기쁘게 하겠습니까? 내가 아직도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한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아멘 갈라디아서 1:10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