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우벤과 자손과 갓 지파는 심히 많은 가축떼를 가졌더라 그들이 야셀 땅과 길르앗 땅을 본즉 

 그 곳은 목축할 만한 장소인지라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와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 지휘관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다롯과 디본과 야셀과 니므라와 헤스본과 엘르알레와 스밤과 느보와 브온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회중 앞에서 쳐서 멸하신 땅은 목축할 만한 장소요 당신의 종들에게는 가축이 있나이다 

 또 이르되 우리가 만일 당신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이 땅을 당신의 종들에게 그들의 소유로 주시고 

 우리에게 요단 강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 민3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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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우벤과 갓지파가 요단 강을 건너지 않게 해달라고 모세에게 간청합니다 

이스라엘 열 두 지파가 모세와 함께 홍해를 건넌 목적은 언약(그리스도)의 젖과 꿀이 

흐르는 곳으로 가기 위하여 요단 강을 건너가야하는데 왜 이리 되었을까?를 민수기 32장은 잘 보여줍니다


르우벤과 갓 지파가 생각하는 은혜는 요단 동편 땅을 기업으로 얻어 요단 강을 건너가지 않는 것입니다

허나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은혜는 그분의 인도함 아래 단연코 요단 강을 건너가 

언약의 땅(그리스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언약의 땅(그리스도)보다 목축하기 좋은 야셀과 길르앗 땅을 얻는 것이 은혜라 생각합니다

야셀과 길르앗 땅처럼 목축하기 좋은 장소, 장사하기 좋은 몫, 출세하기 좋은 명문, 

아이들 교육시키기 좋은 동네 등등을 얻는 것을 은혜와 축복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축복과 은혜을 약속하신 언약의 땅, 곧 세초부터 세말까지 여호와의 눈이 떠나지 않은 가나안 땅은 

반드시 요단강을 건너가야만 합니다

 

이 땅은 아브라함에게 주리라며 아브라함에게 눈을 들어 사방의 동서남북을 바라보라하신 땅으로 궁극적으로

궁극적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땅입니다


그래서 이 땅은 오직 믿음의 창시자시요 완성자이신 

믿음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함을 받아 요단 강을 건너가야만 합니다

때문에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의 인도아래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입성하여 

우상과 죄와 죄로 관영한 악인들을 심판하시는 여호와의 전쟁을 치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린 질문을 던져야 할 것입니다

요단 강을 건넌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세례요한은 요단강을 건너지 않고 요단 동편에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모세와 함께 홍해를 건넌 현상을 일컬어 바울은 모세와 함께 물 세례라 풀어주셨는데

세례요한도 자신의 세례를 물세례라고 직접 증거합니다

그가 자신의 세례를 굳이 물세례라하면서까지 밝혀주고 싶은 세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곧 자신은 물세례 밖에 줄 수 없지만 자신의 뒤에 오시는 분은 성령세례, 불세례를 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요단 강가 세례는 홍해를 건너는 물세례를 재현시킨 현상입니다

때문에 사도요한은 세례요한이 세례를 준 장소를 요단 동편이라고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이는 출애굽 백성들이 사십 년 광야를 벗어나 요단강 동편까지 이르러 여호수아의 인도아래 요단 강을 

건너갔듯이 새 마음 새 율례로서의 새언약의 땅을 가려면 오직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요단강을 건너야 할 것을

시사해주는 역사적 장면입니다


하다면 구약에 여호수아와 함께 요단 강을 건넜으면 되었지 왜 또 건너야되는 것일까요?

여호수아와 함께 언약의 땅으로 입성하기 위해 요단 강을 건너갔던 

이스라엘이 언약을 땅을 차지하여 살면서 그들이 연약하여 언약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언약이 불완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연약함이 원인인 것입니다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예례미야를 통해 새 마음의 새 율례의 영,즉 새 언약을 체결하셨습니다 


첫 언약시에는 모세를 통해 당신 말씀을 우리들의 몸 밖 

돌비에 새겨주셨지만 새 언약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 몸 밖이 아닌 우리 몸 속에 심비에 새겨주겠노라고 새 언약을 하셨습니다

곧 새 마음 새율례의 영이신 성령을 주사 말씀(아버지와 아들)을 심비에 새겨주겠노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언약 백성이 언약을 지키지 못하면 응당 받아야 할 심판만 남아 있게 됩니다

성경은 언약을 깨트린 이스라엘이 받아야 할 심판을 우리 주께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다 받으사 하나님의 공의가 온전히 실현되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께서도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하시면서 

아버지께서 예언하신 새 언약을 당신의 살과 피로 확증하셨습니다 


신약에 이르러 르우벤과 갓 지파가 누구일까? 

생각해보면 대표적으로 성령을 받기 전의 베드로가 아닐까 합니다


예수께서는 새 언약을 지상에 펼치시기 위해 아버지의 계시로 고백하게 된 베드로의 신앙을 

받아 그리스도의 일인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선포하셨는데 그는 죽지 말라고 만류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영적으로 살펴보면 요단강을 건너지 않게 해달라는 말과 동일한 말입니다

새 언약을 성취시키려면 반드시 주께서는 죽으셔야 하고 

다시 살아나사 지극히 높은 셋째 하늘 문을 열고 아버지 보좌로 가셔야만 됩니다


이것을 보여 준 장면이 곧 예수께서 요단 동편에서 세례를 받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선 세례요한을 일부러 찾아와 <모든 의>를 이룰 수 있도록 세례를 받게 해달라고 간청하셨습니다

마지못해 세례요한이 세례를 베풀 자 하늘 문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 위에 머무시며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기뻐하는 종이라는 소리가 나는 장면이 곧 요단 강을 건너는 장면으로 

이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열린 하늘 문을 지나 아버지 보좌 우편으로 가시는 승천을 보여주는 이중적인 

장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만류하는 베드로나 르우벤과 갓 지파가 무슨 상관일까 싶겠지만 잠시 잠깐 생각만해봐도

베드로가, 그리고 제 자신이 어쩜 르우벤과 갓 지파보다 더 고약한 이생의 안목과 정욕과 자랑에 빠져있는 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날마다 아버지로 인해 말씀을 얻어 먹는 자이니 

그리스도는 뻔질나게 증거하는 내가 얼마든지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아니면 가질 수 없는 교회의 직분도 가졌으니 십자가가 아니면 

내 직분도 무용지물이요 설 수 없는 자라는 것도 아는만큼 십자가 뒤에 숨어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베드로가 닭이 울자 깊이 통곡했지만 그 통곡도 자신의 혼적인 회개로 머물렀을 뿐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부활을 베드로에게 보이셨는데 불구하고 제자들에게 "고기나 잡으러 가겠노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혼절할 듯이 통곡하고 울어도 자아의 끈질긴 자기 이익과 사람 영광과 

자기 보호와 자기 인식체제와 자신의 생각 구조와 자기 연민과 자기애의 휘장은 찢어지질 않습니다. 


베드로가 변화된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인 오순절에 임하신 약속의 성령님때문입니다

 

르우벤과 갓지파가 모세에게 은혜를 구합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언약의 땅으로 가기 위해 요단 강을 건너갈 수 있는 은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건너가지 않게 해달라는 은혜를 구하는 그들에게 모세가 책망을 합니다


올바른 책망은 대단히 중요하지만 우린 과연 올바른 책망을 할 수 있는 자들일까요?

돌아보니 나는 내 유익을 위해서 성경을 써먹어가며 책망할 때가 더 많지 않나싶습니다 

올바른 책망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한 결과로 맺히는 열매로 생각보다 잘 맺히질 않습니다 


모세의 책망은 약속의 말씀에 근거하여 책망합니다

요단 강을 건널 때만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은 요단 강을 건너가 싸우고 있는데 너희는 너희 가축과 너희 가족만 생각하며

여기 앉아 있겠느냐? 입니다


이 순간 나를 돌아봅니다

내 가족 내 가축을 위해 내 손으로 발버둥친 적은 없었을까?

느혜미야는 한 손에 병기와 한 손에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병기도 일도 다 주를 위한 것이였습니다


모세의 책망을 들은 출애굽 이세들은 확실히 출애굽 일 세대보다 유연한 사고를 지닌 것을 봅니다

르우벤의 내력은 서모와 통간했고 광야에서도 고라당에 속했던 다단 아비람 온도 르우벤 지파였습니다

아비는 그러했을지라도 그의 이세 아들들은 그렇지 않음을 보며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저들은 모세의 책망을 듣고 멀리 도망가는게 아니라 모세 가까이로 나와서 자신들의 의견을 고합니다

본인들도 요단 강을 건너 형제들과 함께 싸우되 선봉에 서서 싸우겠다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기업을 얻기까지 싸우겠다 합니다

또한 그렇게 싸웠다하여 요단 강 건너 땅을 달라하지 않겠다합니다

단지 가축 우리를 짓고 우리 유아들을 위하여 견고한 성읍을 지은 후 무장하고 싸우러가겠다합니다


그들의 제안에 모세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깁니다


" ~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복종케하시기까지 싸우면 여호와의 앞에서나 이스라엘의 앞에서나 무죄히

 돌아오겠고 이 땅은 여호와 앞에서 너희의 산업이 되리라마는 너희가 만일 그같지 아니하면 여호와께 범죄함이니

 너희 죄가 정녕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민32:20~23



모세는 요단 동편 땅(아모리인의 왕 시혼의 국토와 바산 왕 옥의 국토)을 

르우벤과 갓 지파외 1/2 므낫세 지파에게도 분배해줍니다

저들은 성읍을 건축하고 양 우리를 짓고는 지명 이름들을 다 새롭게 짓습니다

요단 동편 땅을 분배해주는 것을 봅니다

이들은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이스라엘 지파들이 기업을 얻게 되자

여호수아의 말씀에 순종하여 다시 요단 동편으로 돌아옵니다(여호수아 22장)

정확한 햇수는 잘 모르지만 어림잡아 5년~7년동안 걸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고 함께 승천하여 

함께 하늘 보좌에 앉혀진 우리들의 생명을 보기까지 우리 모두 우리들의 한 손에는 

복음의 병기를 들고 또 다른 한 손으로는 일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