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8장,29장은 아무리 읽어도 헛갈립니다

특히 제사의 종류에 따라 드리는 제물의 수와 소제와 기름과 전제의 양이 그러합니다

그래서 모든 제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찾아봅니다

혹여 그 공통점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보기 때문입니다


하루 첫 순간->상 번제(상번제는 일 년 열 두 달 변함없이 항상 드리는 제사로

                         날다다 두 번 드리는데 아침 저녁에 드리는 제사)

한 주의 첫 날->안식일 

한 달의 첫 날->월 삭(한 달의 머리라는 뜻)

종교력의 한 해 첫 달->14일 유월절(첫 유월절은 애굽에서 지냄)

                          애굽에서 열 가지 재앙 중 마지막으로 애굽의 모든 첫 것들이 죽어나갈 때

                          유월절 어린 양 피로 이스라엘 장자들과 첫것들은 유월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

                          15일부터 21일까지 무교절(첫 무교절은 광야에서 지냄) 


한 해의 첫 보리 수확->유월절 지나 안식 후 첫 날 초실절(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님을 뜻함)


한 해의 첫 밀 수확->맥추절(보리 첫 수확 후 오십일이라 하여 오순절,혹은 초실절에서 일 곱 주 지났다 칠칠절)

                       부활의 첫 열매(초실절 보리 첫 단)이신 예수께서 부활 사십 일 후 승천하신지 

                       십 일째 되는 오순절에 성령강림으로 부활의 열매들이 맺히기 시작함(추수기로 들어감)


유대민간력의한해첫날->7월1일 나팔절

                          7월10일 대속죄일

                          7월15일 수장절(장막절, 초막절):수장절의 영적의미는 부활의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 예수로 

                                                              인해 부활의 열매들이 맺혀진 오순절 성령강림이후의 

                                                              추수마감기를 위해 오시는 재림 예수를 뜻함                                                                   

                                                  

여러가지 제사를 열거하여 읽다보니 "첫" 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들의 처음을 열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듯 날마다 하루를 마감시켜주시는 분도 

동일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제사란 이것을 기억, 기념하여 아버지앞에 가까이 나아가는 것으로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우리들에게 주어진 의무라는 것입니다

물론 종교는 자유입니다

허나 생명은 자유로 얻는게 아닙니다


생명은 주어진 것으로,우린 주어진 생명을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은 살으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우린 언제부터인가 기독교를 종교란 카테고리로 묶어놓았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 입문하여 나날이 복음의 진보를 향하여 가는 자들에게 계시되어지는

주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진리, 생명, 사랑, 공의, 정의 자체이지 종교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사랑하신 분이였고 그 사랑으로 아버지께서 만드신 사람도 사랑하신 분이셨습니다


민수기 28장 29장에 기록된 모든 제사의 시작은 

아버지의 유일한 처음인, 

즉 첫 아들이신 예수를 이 땅에 보내사 죽을 우리를 대신하여 죽이시고 

우리를 그 아들의 부활과 함께 살리셨다는 것을 기억하며 기념하는 것이 동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루 하루의 첫 순간부터 그 분의 죽음이 전제되지 아니하면 부활의 삶도 없습니다

허나 그분의 죽음과 부활이 전제된 날마다의 첫 순간을 기억 기념하여 아버지께 성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우리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으면 죽지 않고 사는 자들이 됩니다


우리들이 이런 죽음과 부활이란 기억과 기념으로 제사드리지 않는 한 

자신도 모르게 율법적인 굴레와 종교적인 제도에 갇혀 헉헉거리게 됩니다 


이런 현상은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패망하기 직전에 나타난 현상이기도 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것이 피곤하고 번거롭다고 투덜거립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두 번씩 드리는 제사 위에 매 주 돌아오는 안식일에 또 그 위에 매 달 

돌아오는 월삭에 또 그 위에 매 해 봄 여름 가을마다 돌아오는 절기 제사를 드리는 것에 감사가 빠져버린 것입니다

죽음에서 다시 살려주신 부활의 생생한 기쁨과 찬양이 사라진 것입니다


저 역시 온전히 감사함으로 제사를 드리지 못한 날들이 몇 년동안 지속된 적이 있었습니다

2010년 교통사고 나서 죽었다가 살아났는데도 그 감격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교통사고 휴우증이 의외로 길었고

그 휴우증속에서도 늘상 드려야 할 예배를 위해 먼 거리를 오갔는데 그 때마다

좀 쉬고 싶은데도 "네가 안가면 말도 안되지 않냐?"며 남편은 모질게 끌고 다녔습니다


거기에 주일날 토론토 가서 예배드리고 왔는데 크리스마스 예배가 

월요일 혹은 화요일에 끼게 되면 정말 미쳐 팔닥거리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그리고 나면 또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려 가야하니 감사 감격으로 드려야 할 예배가 

의무의 굴레가 되어 어찌나 멍에가 무겁던지 도대체 이래도 내가 예수를 믿는 사람인가? 

질문해보기를 삼 사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조용히 질문할 때마다 내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너무나 확실한데

다만 감사가 솟구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오직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 중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예배의 의무를 지키며 오늘에 이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죽을 뻔한 교통사고에서 살려 주신 은혜만을 생각하면 감사하며 갈 것 같은데 왜그게 그리도 안되던지요?

죄와 허물로 죽은 나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생명으로 살려 주셨는데 왜 그리 감사가 나오지 않던지요?


그 어렵던 시절을 감사로 펑펑 솟구쳐서 돌파해 나가야하는데 몸이 아프니 잘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돌파해냈을까?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온갖 만물의 더러운 찌끼란 찌기는 다 내 속으로 흘러 들어 온 듯 

여기저기 요란하게 쿡쿡 찔러대며 성가시게 괴롭히는 영적 현상속에 갇혀 있는 자신을 어떻게 뚫고 나왔을까?

돌아보면 "묵상의 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감정과 신체는 따라주지 않았지만 말씀을 끊임없이 탐구 묵상하고자하는 내적 목마름 덕분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 시절엔 

왜 그리 주일이 빨리 옵니까?

왜 그리 부활절도 빨리 옵니까?

왜 그리 추수 감사절은 빨리 옵니까?

왜 그리 성탄절은 빨리 옵니까?


만일에 내가 교회하면 헌금 없는 교회를 해야겠다 

싶을정도로 헌물이 부담스러웠던 계절을 어찌 다 형용하겠습니까?

덕분에 가난한 성도들이 헌금하기가 얼마나 힘들까? 체휼의 계절이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왜 이런 말을 굳이 나를 쪼개서 두들겨 패가며 쓸까요? 

그것은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예배는 자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살아야하는게 자유가 아니듯 예배 또한 자유가 아닐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절대적 명령이기에 내 자유의지로 선택해서 가도 좋고 안 가도 좋은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명령대로 순종하는 자는 살고 명령에 불응하는 자는 죽습니다


절대적 명령인 제사를 통해서

아버지께서는 첫 것 없이, 즉 당신, 아들, 아들의 머리 없이는 

결코 우리에게는 처음도 없으며 따라서 그 다음도 없다는 걸 상기시켜 주십니다


또한 날마다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날마다 죄를 먹고 마시는 세상에서 사는 우리들을 위해

날마다 씻겨주시기를, 곧 사유하시기를 즐거워하시는 아버지께서 계신다는 걸 상번제를 통해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와 친밀한 관계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발견해야만 할 것입니다


말도 안되는 말이지만 말이 되는게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의 "죄"를 통해 우리를 망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죄"를 역이용해 당신의 긍휼과 사랑과 인애를 당신께서 명령하신 제사와 제물을 드리며 맘껏 누리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절대 명령인 제사가 있기에 죄인 중의 괴수인 저조차 그 앞에 가까이 나가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아버지를 사랑할 재주도 능력도 

지혜도 지식도 없는 저이기에 그 분이 어떠하신 분인지 한계의 늪에 빠져 허우적 거릴뿐인데도 

그는 저를 제사와 제물을 통해 받아주시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분을 알만한 것들을 주셨다지만 그것은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격이며 고무장갑 낀 손으로 

아버지 마음을 만지는 격임에도 그분께서는 저도 모르는 저를 안다하시니 저를 알고싶어서라도 그분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린 제사 드릴 때마다 제물을 요구하시는 여호와를 반드시 기억해내야만 할 것입니다

이 제물은 궁극적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제물, 예물이란 말은 "코르반"이란 히브리어로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을 뜻합니다


당신께로 가까이 가게 하는 제물, 예물은 기본적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외에는 그 어떠한 예물도 없다는 것을 단단이 알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헌금으로 인해 시험받질 않습니다

헌금 못낸다고 주눅 들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헌금 못낼수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찬송하며 감사하며 산 제사를 드리는 제사인(예배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역으로 헌금 많이 내는 자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는 말도 성립이 안되니 자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린 주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 심령이 충만해지는 것에 비례한만큼 아버지께 나아가 친밀감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제물이신 예수 없이는 아무도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우린 민수기 앞 부분에서 대제사장 아론과 제사장들에게 가까이 갈 자는 

오직 하나님께 요제로 바쳐진 거룩한 레위인뿐이라는 것을 기억해내야만 할 것입니다

이는 마치 남편 곁에 가까이 갈 자는 아내밖에 없다는 속뜻이 있는 말입니다

감히 외인들은 성전에 들어 올 수도 없었을뿐더러, 대제사장과 제사장에게도 가까이 갈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아버지!

당신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로  

덕지덕지 덧입혀진 저를 당신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셔셔 감사합니다

이런 저를 통째로 안고 피 흘려 속죄해주신

유월절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드립니다

저도 우리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에 따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게 하셔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을 우리가운데 나타내게 하옵소서 

고난의 신비에 동참케하시는 당신의 부르심에 예민케하시고 당신의 세미한 목소리를 이해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