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의 물결은 길마다 자동차로 메워서 차도는 거대한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집에서 길을 떠난지 얼마만일까?
나를 기다리고 있는 형진이가 입원해 있는 삼성의료원은 시끄러운 바깥 소리와는 달리
고요 속에 파묻혀 있었다.
중환자실 면회는 오전 10시 30분과 오후 7시 30분 하루 두 번 밖에는 허가 되지 않는다.
내과 중환자실 엘리베이터 근처에서 형진이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중환자실 앞에서 만난 형진이 어머니는
오랜 세월동안  병원 중환자실에서 아들을 들여다보며 마음을 끓인 얼굴이 전혀 아니었다.
60의 나이를 바라보는데도 너무 곱고 밝은 얼굴이었다.
중환자실에 들어서니 그 곳에 입원해 있는 모든 환자들의 고통이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다양한 아픔이 되어 저미어 온다.

그 곳에서  만난 청년 형진이!
그는 중환자실이 오히려 익숙해진 사람처럼 편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티없이하얀 얼굴은 그의 마음의 티없고 흠없는 순전함을 그대로 나타내 주고 있었다.
형진이는 생후 4개월 때 척추성 근위축증이라는 불치의 병명을 받았다.
이병은 근육이 서서히 약해져서 신체적 장애를 일으키고 모든 일상 생활을
다른이에게 의지해야 하는 만성적이고 진행적인 질병이다.
형진이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이미 전신이 마비 되었고 머리를 1mm 도 움직일 수 없게 되는
중증 환자가 되었다.

초등학교 다닐 나이를 살겠는가가 의문일 정도로 중증이었던 형진이는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열정으로 현재 23세의 청년이 되었다.
형진이 어머니는 형진이를 휠체어에 싣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마치게 한
위대한 사랑의 기적을 이룬 분이시다.
중증 장애인이므로 입학이 허락 되지 않는 중학교, 고등학교에
교장 선생님을 수도 없이 찾아가서
간곡히 부탁하여 입학시켰다.
형진이의 학교 시험 때면 학우들의 노트를 빌려 형진이에게 읽어주고 외우게 하여
형진이의 중학교, 고등학교 성적은  5, 6등에 이르렀다.
어머니는 형진이가 살아 있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었으나

형진이가 공부하는 것을 가장 행복해했기 때문에 아들이 행복해 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어머니에게도 가장 큰 기쁨이었다.
형진이는 연세대 컴퓨터 공학과에 정시 시험으로 당당히 합격을 했다.
수능을 치루던 날을 떠올리는 형진이 어머니의 눈에서는 어느덧 눈물이
가득 고여 흘러 내렸다.
건강한 청년들도 하루 온종일 긴장하여 시험을 치루면 지치고 지치는 수능의 분량이 아닌가
그런 힘겨운 시험을 전신마비 아들이 견디어 내며 하루 온종일 시험을 치루어 낸
기적의 그 날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나는 그 날 형진이가 시험을 치루는 것이 아닌 것을 알았어요
주님께서 기적을 이루고 계신 것을 목격했습니다.”
잔잔하면서 분명한 형진이 어머니의 신앙 고백이었다.

전신마비의 형진이가 연세대에 정시 합격을 하면서 세상은 형진이에게 주목하였다.
연일 그 기적의 청년의 이야기를 신문은 기사화 하기에 바빴다.

형진이는 학교에 다니는 시간보다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형진이는 작년 미국에 갔다가 병이 악화되어 미국 병원에서 5개월동안 중환자실에 있었다.
외국 병원의 낯섬과 외로움과 공포와 절망으로 지낸 처절한 시간이었다.
그런 형진이는 라포트 주한 미군 사령관의 주선으로 의료진 까지 동원된
군용 비행기로 한국에 올 수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홍해를 갈라지게 하신 기적이
형진이게는 전신마비로 하늘을 날게 하신 것입니다.
형진이의 하루 하루의 삶이 순간 순간의 삶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기적의 삶이었습니다”

형진이는 23세의 청년의 나이이지만 몸무게가 18kg 밖에 되지 않는다.
음식은 호스를 통해 먹을 수 있으나 호스를 연결한 살의 부위가 발갛게 붓고
염증을 일으켜서 고통이 크지만 얼굴 한 번 찌푸리는 일이 없다.
오랫동안 자리에 누워 있어 엉덩이에 욕창이 나서 짓무르고 있다.
그런데 왜 형진이는 그 모진 고통을 호소하지 않을까?


형진이는 이렇게 고백했다.
나에게 소원이 있다면 이제는 어머니에게 짐이 되는 아들이 아니라
힘이되는 아들이 되고 싶어요.
어머니에게 웃음을 주는 아들이 되고 싶어요.
그렇지 않다면 주님이 저를 하루 빨리 천국으로 불러 주시기를 원해요.”

기도속에서 나오는 아들의 소원을 듣고 어머니는 이렇게 응수하셨다.

“형진아! 어서 장가가서 손주 하나 이 어미 품에 안겨다오.
나는 네가 내 눈 앞에 이렇게 있어 주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요 기쁨이란다”
23년 동안 전신마비의 아들을 간호해온 어머니의 고운 얼굴엔
이젠 주름이 지고 흰 머리카락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형진아! 네가 읽고 힘을 얻었다는 책을 쓴 그 사모님이야!
너의 소원을 말해봐.”

형진이는 눈으로 말했고 어머니는 눈으로 말하는 형진이의 모든 언어를 알아 들었다.
어머니는 형진이의 말을 나에게 이렇게 통역해 주었다.

“어제 우리 남포 교회 권사회에서 형진이 병문안을 왔어요.
권사회에서 형진이 먹고 싶은 것 사 먹으라고 20만원을 주셨지요.
형진이가 생전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는데
오늘은 그  돈이 얼마냐고 물어서 20만원이라고 알려 주었지요.
그랬더니 그 돈을 사모님을 주라고 하네요.
노숙자 아침 식사 비용으로 주고 싶대요.
그것이 소원이라네요.”

나는 형진이가 주님께 쉬지 않고 간구하고 있는
진정한 마음의 소원을 그가 말하지 않아도 들을 수 있었다.

“주님!
저를 건강하게 해 주셔서 이젠 내가 어머니에게 업히는 아들이 아니라
어머니를 업어드릴 수 있는 아들이 되게 해 주세요.

어머니의 병간호를 받는 아들이 아니라
어머니를 간호할 수 있는 아들이 되게 해주세요.
이 땅에 태어나게 해 주셨으니
나라와 사회에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형진이는 비록 자신은 중환자실에 누워 있으나 주님께 감사하는 감사 예물을
추운 겨울 차디찬 땅에서 자고 있는 노숙자들을 위해서
그들의 허기진 배를 따뜻한 음식으로 대접하는 일을 위해
주님의 이름으로 드리기를 기뻐하였다.
형진이는 그 마음의 소원대로 이미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된 것이다.

형진이가 하는 말은 오직 그의 어머니만 알아 들을 수 있는데
간간이 웃으며 입을 움직이는 형진이의 말은
"고마워요!"
"감사해요!"
오직 두 마디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