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힘들고 난해한 싸움 중에 있을 때

조용히 "시험을 참는 자가 복있다"라고 읊조리기만해도 무겁고 침울한 영적 기류가 환기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말씀이 심령 속에서 운동하며 일하고 있는 중이라는 신호입니다

말씀을 그냥 흘리듯 스쳐 보내지 않고 믿음으로 내 속에 모시고 연합하여 사노라면

난처하거나 어렵거나 답답한 순간 순간 말씀이 나보다 더 살아서 왕노릇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문제는 내가 어렵고 힘들 때 믿음으로 말씀을 먹고 감사로 기도하는가? 아니면 불평과 연약한 자기 한계에 갇혀 있는가입니다.

시험이 없는 자가 복있는 자가 아니고 시험이 있는 자가 복있는 자라는 말씀이 얼마나 역설적인지 모릅니다
때문에 성도들은 여러가지 시험이 오거든 온전히 기뻐하라는 말씀에 "아멘!""할렐루야!" 찬송하며 기도하며 가는 겁니다

이것에 옳다함으로 인정 받는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말씀의 광명한 빛을 받아 찬송하며 걸어가는 기쁨의 여정이

단절되지 않고 무제한으로 영원히 여기서부터 저 하늘보좌까지 연결되어 있다는게 얼마나 황홀합니까?
물론 잠시 잠깐 슬프고 외롭고 헛헛할 것이지만 그런 것들은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는 감정의 찌끼들입니다

쉬 사라질 안개처럼  없음 일뿐인 인생에게 시험 받는 사건이나 기회가 왔다는 자체가 영원한  하나님 보좌를 향하여

나가게 만든다는 것에 뿌리를 내리면 즐거움과 담력이 생깁니다


젊은 날에 겪었던 이해할 수 없는 절망과 질병의 시험이 없었다면 오늘의 이와 같은 저는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시험 이후부터 저는 몇 년 아니라 몇 십 년도 기다릴 수 있는 인내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젠 인생 칠 팔십 백 년이 되어도 이뤄진게 아무 것도 없다해도 부끄럽지 않다는게 얼마나 놀랍습니까?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데 이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지 않게 하는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음이니"라고 말씀한바 그대로 부끄러워 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잘해서 부끄러운게 아닙니다
진실로 야망에 가득찼던 제가 복음에 이리 부끄러운 자가 될 줄이야 꿈에서 조차 생각 못했던 자인데

실상은 그러하니 얼마나 부끄러운지 이대로는 못죽겠다고 주님께 간구하면서도 부끄럽지 않은 것은 말씀이 위로를 주기 때문입니다


제 부끄러운 것만큼 무익한 종이 되고 보니 무익함만큼 텅 빈 제 빈 자리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짐을 느끼는 순간 부끄러움이 사라집니다
사랑엔 부끄로움도 두려움도 없답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부끄러움 가득한 탕자를 껴안고 입 맞추며 잔치를 배설해주는 사랑으로 나 같은 무익한 종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죽었다 살아 돌아왔다며 기뻐하시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이렇게 못난 절 부끄러워하시지 않는 사랑 덕분에

제게는 그리스도의 옷이 입혀지고 주와 함께 우주의 공동 상속자란  반지가 끼워 진 것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복음의 진수인 주님의 피와 살로 가득 가득  차려진  잔칫상을  배설해 주는 것입니다


이런 아버지의 사랑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담으려면 자신이 유익하다는 생각은 모양이라도 다 비워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 Nothing" 이 될 때 비로서 모든 유익함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일하십니다

우리 속에 자아의 진영이 자리잡고 있는만큼 아버지의 사랑은 부어지지 못합니다

때문에 여러가지 시험 환란을 통해 우리 자아가 형체도 없이 짖쪄져 고운가루처럼 만들어집니다
그제서야 우린 비로서 옳다 인정함 받아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신명기 말씀으로 사단을 물리칩니다

야고보는 시험 받을 때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하지 말라합니다
하나님은 악에 시험 받지도 않으시며 친히 아무도 시험하시지 않는다 하십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피조물인 자리에서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수없이 시험합니다
얼마나 가소로울까 합니다

물론 믿음의 차원에서, 또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기드온처럼 양털로 물을 수는 있습니다

출애굽 광야 사 십년간 이스라엘은 툭하면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오죽하면 저들이 통과하지 못한 시험을 예수께서 통과해야만 했을까 싶습니다

우리 때문에 예수께서 받으신 시험과 고난을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함께 하였으니라"는 말씀에 거하는 상태입니다
그러할 때 예수께서 모든 시험을 참고 승리하신 영광과도 함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무게는 우리에게 결코 가볍거나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비우고 자기를 미워하며 주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무게가 능히 모든 시험과 시련의 비장함과 비애와 비극을 넉넉히 이기게 함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분단의 무게에 말할 수 없이 짓눌리고 찢겨지고 아파하는 사랑하는 우리 조국을 기억하시고 속히 자유와 복음의 통일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속지 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 오나니 그의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야고보1:12~18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란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계1:9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는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1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