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야고보1:1~4

야고보는 형 예수가 자기 민족이 그토록 대망하던 메시야라는 걸 형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 알게 됩니다

얼마나 놀랍고 반갑고 기뻤을까요?
이스라엘의 대제사장되신 형님께서 친히 모든 죄를 담당한 생축이 되어 그 피를 가지고 하늘 성소에 들어가

죄의 종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주었으니 그 기쁨이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그 자유를  가지고 육체를 위하여 살지 않고 스스로 자원하여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종이 됩니다

주일마다 남편이 시모님 계시는 양로원에 들려 교회로 갈 때 오늘은 내 몸이 아프니 교회만 다녀 오면 좋겠다해도 기여이 끌고 다닙니다

그럴 때 확실하게 인쳐지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종"입니다

섬광처럼 한순간 빛나는 예리한 날로 제 심령을 가르며 심비에 새겨준 말씀이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던지 저마다 그 상황이 주는 시험과 시련을 통해 기필코 살아내야 할 그리스도의 형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들이심에도 아버지 하나님의 종으로 자원하여 살다 가신 그리스도의  종된 형상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겨 주신 주님께서는 그 섬김이 당신께 좋으면 섬기고 안 좋으면 안 섬기신게  아닙니다

그분의 섬김은 아버지 뜻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대속제물로서의 죽음으로 완성됩니다(그리스도의 목숨은 흠도 티도 없는 목숨으로 우리와는 다른 목숨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은 말과 교리와 신념으로 다듬어지는게 아닙니다
나란 인간을 뚫고 들어 와 나를 부수고 으깨고 다시 빚어가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나와 주님과의 살 떨림의 두렴과 흥분과 기대로 가득찬 연합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새창조입니다

그리스도조차 성령으로 자기를 드렸다면 정과 육의 본성일뿐인 우리야 더더욱 성령을 구하여 하나님을 힘입어야 합니다

성질 더러워 뒤집고 싶을수록 자기를 죽어야하는 섬김입니다
종에겐 대단히 슬픈 노래가 있습니다
일말의 자유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과 사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대제사장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로 분향할 때 부를 수 있는 아가(사랑의 노래)가 있습니다.
나를 내놓지 않으면 절대 부를 수 없는 노래입니다

울 주님께서 십자가를 코 앞에 둔 유월절 만찬시 자기를 팔러 가롯 유다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누가 더 크냐며 다투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들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눅22:24~30

엄밀히 말하면 예수께서 요단강 세례를 받으신 직후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 시험을 받으실 때에는 제자들을 택하기 전입니다

그럼에도 예수께서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너희들이다"고 말씀해주십니다

대단히 부끄럽지 않습니까?
이 부끄러움을 아는 자들은 어찌해서든지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모든 시험을 말씀 묵상으로 찾아 갈 것이며 동참코자 간구할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시험은 지극히 당연한 의무 저 너머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권능을 맛보는 특수한 낙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비참해지는건 무수한 고난을 받으면서도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할 때 입니다

그리스도를 너무 탁월하고 숭고한 틀 속에,
가령 형상화된 논리나 교리나 신념화된 문자 액자로 걸어 놓고만 있으면 절대 자신의 허접스런 숨결속에선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 분께서 가장 낮고 초라한 자리에서 허접스런 둘풀일뿐인 날 찾아 오셨다는 걸 실제로 느껴야만 합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으로 그치는게 아니라 그 분과 끊임없이 주고 받는 상태를 유지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분께서는 제가 없었던 그 당시임에도 저를 있는 것으로 여기사 자신이 받는 모든 시험속에서 저 (우리)를 생각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를 아버지 나라와 그 백성으로 삼게 하시려는 하늘과 바다와 산과 들녁 대지 같은 마음으로 품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가장 슬프게도 우린 거기에도 없었습니다
주님의 애가입니다
왜냐면 우린 모두 죄와 허물로 죽어 음부의 옥에 갇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사 음부에 있는 저(우리)를 찾아 오사 마침내 당신의 부활과 함께 우릴 다시 살리셨습니다

주님의 아가입니다


내가 시험 받을 때 그분께서 음부인 날 품고 시험 받으셨음을 발견하는 자들은

아직도 음부의 옥에 갇혀 있는 내 가족 내 이웃들을 맡게 되여 모든 시험 중에 기뻐하게 됩니다

우리 각자는 주께 속한 세상 모든 영혼들 가운데 보내진 자들입니다

내 삶의 동선 안으로 들어 온 자들을 어떤 시선으로 보십니까?

한번은 전임 사역자가 왜 나만 참고 견디어야하냐며 울먹거렸습니다

그 순간에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과연 그 분은 지금쯤 어느만큼 모든 시험을 우리와 함께 받으신 그리스도의 피와 살로 채워졌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불완전한 사람을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는 아버지와 예수님의 소원에 불타오르는 자는

결국은 어두운 주변을 비추이는 그리스도를 비추이는 자가 됩니다

아무리 숨기려해도 어둠 속의 빛이요,

산 위의 동네로 산 아래 음부의 옥에 갇힌 자들의 길잡이되신 그리스도를 나타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둠 속에 빛만큼 온전하고 구비되여 부족함 없는 건 없지 않을까 합니다

아버지!
한 밤 어둠속에서
자든지 깨든지
죽든지 살든지
항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시험을
함께 받을 수 있도록 불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