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

 그대의 입을 땅의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어 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이는 주께서 영원하도록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며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예레미야 애가 3:15~32




한 평생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 온 사람이 제게 말하길 

만일 하나님께서 자기 앞에 나타나시면 갈기 갈기 찢어서 죽이고 싶다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치 제 가슴이 갈기 갈기 찢겨지는 듯 아파왔습니다 


전능자이신 하나님을 믿고 여지껏 살아 왔건만 자신에게 족할만한 응답을 주시지 않는

하나님으로 인해 느꼈을 통증이 피부로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전 그 사람에게 어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그런 불손한 말을 하냐며 책망할 수가 없었습니다

성도들 안에는 이미 인간의 어떠한 아픔이든 또한 하나님께 어떠한 불손한 언행이든

이미 용서해주신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채찍에 맞아 살점들이 갈기 갈기 찢겨진채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가는 숨결속에서도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아버지께 간구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니 저 역시 주의 보혈로 용서해주길

기도할 뿐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슬픔과 아픔과 외롬과 애증과 낙심과 실망을 제게 달라고 기도할 뿐이였습니다

제게는 그것들을 넉넉히 나누어 져주시는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니 감당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런지 예레미야 애가를 묵상하려니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눈물이 흐릅니다


예레미야 애가의 저자도 결단코 신앙의 고수가 아닙니다 

믿음의 용사가 아닙니다

그도 믿음의 바닥을 칩니다

그 스스로에게 이르길 나의 힘과 여호와에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고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우리들에게 위로가 되는 말입니까?


예수님께서도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울부짖으심으로 인해 아버지로부터 버림당한 것 같은 설움과 고통속에 절규하는 

모든 이들을 그분께서는 너끈히 끌어 올려주십니다


불신자들은 몰라도 성도들에게 있어서 여호와를 향한 소망이 끊겨지면 사실 죽은 자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자신이 당한 고초의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해달라 합니다 

여호와를 향한 소망이 끊긴 상태에서 지속되는 고통의 숨결은 더 더욱 고통스럽습니다

어느 인간이, 그 어떠한 권세가 그 고통을 멈추게 할 것입니까?


여호와께서 고초와 재난을 기억해주시길 바라는 저자의 심층엔 

예루살렘이 당한 고통을 보시고 구원해 주시길 바라는 소원에서 일 것입니다 

자신은 이미 여호와를 향한 소망이 끊겨졌으나 여호와는 사람의 한계에 갇히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히려 그 분께선 인생의 한계와 때론 자연을 초월하여 역사하실 때가 많으신 분이십니다


예루살렘이 당한 수많은 고초의 재난은 사실 심판의 고통입니다

저자는 그 심판의 고통을 기억하고 낙심도 합니다 

허나 그 심판의 고통을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다합니다 


심판의 고통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심판 중에도 모두가 진멸되지 아니하고 자신을 포함하여 살아 남은 자들이 있다는 것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라는 걸 발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는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의 무궁하심을 아침마다 새롭게 깨닫습니다

당연히 저자 자신도 심판 받아 죽었어야하는데 아침마다 눈을 떠 빛나는 해와 산천초목을 바라봅니다

  

저역시 가장 절망스러웠던 시절 

이내 죽을 것 같은 고통으로 잠들었는데 또다시 눈을 뜨는게 신기했습니다

참으로 아침마다 새록 새록 신기했습니다 


그러고보니 세상은 주의 성실로 가득차있었습니다 

해가 뜨고 지고 아침이 오고 저녁이 오고 바람이 불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등등....


별들은 밤마다 떠올라 얼마나 아름다운 빛을 무상으로 던져주고 있는지,

그 별을 쳐다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까지 하게 되었답니다. ㅠ ㅠ ㅠ

자연에게도 이토록 성실하시다면 저란 사람에게야 얼마나 성실하신 분이실까?

얼마나 제 기도를 성실히 듣고 계시는 분이실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호와를 향하여 소망이 없다던 저자는 이제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라 고백합니다

그리고 성실하신 여호와를 자신의 기업으로 삼으니 고통을 생각하는 인식에 대반전이 일어납니다


하여, 

저자는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다고 오히려 고난을 소개하는 자가 됩니다

실은 이 말씀은 저를 대범하게 살려준 말씀입니다

왜냐면 젊은 날에 다른 벗들은 질 수 없는 멍에를 메게 된 것이 마치 특별한 사람으로 대우받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보잘 것 없는 한 인생에게 찾아 와 직접 멍에를 메어준 것이라는 말씀은 그 때부터 지금까지

제 가슴을 뛰게 만듭니다

돌아보니 주께서 메어준 멍에가 있어 이리 늙어가면서도 날마다 주 앞에 나와 배우는 자가 된 셈입니다

 

저자는 이제 고난 중에 가장 참기 어려운 치욕으로 배를 불리라고 보란듯이 권면합니다

치욕으로 배불린다는 것은 인간본성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인간 본성은 그런 신적 축복의 사건을 주는데도 자존심이 강해서 되받아칠뿐입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무엇이든 그 분을 생각하며 참으면 아름다운 일이라 하였습니다 

그분을 생각하면 그분의 능력을 사모하게 되어 있고 그분께서 주시는 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 아버지와 함께 살아왔는데 나는 과연 몇 번이나

치욕으로 배불려 본 적이 있었을까? 질문해보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요한과 함께 자신을 능욕 당하기에 합당한 자로 

여겨주신 것에 하나님께 영광돌렸는데 저는 한없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수치를 견디지 못하는 종은 아직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아버지!

당신께서는 저를 근심케하실 때 아버지 뜻대로 근심케하옵소서

말씀대로 살지 못했음에도 망각하고 살 때 반드시 책망하여 주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당신의 성실하심에 소망을 갖게 하옵소서

당신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시는 당신의 용서하심과 치유하심의 손길을 놓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