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사람들이여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나의 고통과 같은 고통이 있는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그의 진노하는 날에 나를 괴롭게 하신 것이로다

 높은 곳에서 나의 골수에 불을 보내어 이기게 하시고 그 발 앞에 그물을 치사 나로 물러가게 하셨음이여

 ~

 이로 말미암아 내가 우니 내 눈에 눈물이 물 같이 흘러내림이여 나를 위로하여 내 생명을 회복시켜 줄 자가 멀리

 떠났음이로다 "예레미야 애가 1:12~16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고후4: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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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여기서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은" 그 세대는 물론이고 

모든 시대를 초월하여 이 성경을 눈으로 읽거나 듣게 된 모든 사람들을 말합니다 


너희들에게는 내가 겪는 고통과 같은 고통이 있는가 살펴보라고 묻는 것입니다

없으면 단연코 사생아입니다

이 저자는 자신이 겪는 고통의 진원지는 땅도, 사람도 아닌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라 합니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신 날에 나(저자)를 괴롭게 하신 것이라"


이렇게까지 많은 탄식의 눈물로 호소하며 

물어오는데 그냥 스쳐 지나간다면 저는 실로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한번쯤 세상을 접고 저자가 겪고 있는 고통에 눈을 주고 그가 부르는 슬픈 노래에 귀를 내주고 

마음으로 음미해보다 결국은 함께 애가를 부르는 자리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높은 곳에서 나의 골수에 불을 보내셨다합니다 

골수는 흉골이나 엉덩이 뼈나 허벅지 뼈같은 뼈 안에 존재하는 부드러운 지방조직입니다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불에 타버린 현상을 자신의 골수에 불을 보내신 것으로 표현함은 

성전과 한 몸된 자신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내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잠 3:5~8


성도는 마땅히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해야합니다

내 뜻과 소원대로 안될지라도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감사와 기쁨의 기름과 보혈의 찬송으로

산 제사를 드리는 것이야말로 내 몸에 양약이 되어 골수에 윤택한 기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 성도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유다에게 징계의 뜻을 정하시사 바벨론에 항복할 것을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해주셨지만 왕과 방백들은 여호와를 인정치 못하고 자신들의 명철을 의지하여 정사를 펼쳐나갑니다


그 결과 여호와의 진노의 날을 맞이하여 저자를 괴롭게 하신 것이라 합니다

세 번에 걸친 바벨론 느브갓네살 왕의 침략을 겪으며 처참하게 망합니다    


"내 죄악의 멍에를 그의 손으로 묶고 얽어 내 목에 올리사 내 힘을 피곤하게 하셨음이여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자의 손에 주께서 나를 넘기셨도다" 예레미야 애가 1:12


모태로부터 죄가운데 태어난 모든 인생들은 누구라도 예외없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자의 손에 넘기시는 주를 발견해야만 합니다

내 목에 걸린 죄악의 멍에를 들어 올리니 온 몸의 힘이 빠져나가 말할 수 없이 피곤합니다

그럴지라도 내 죄악과 관계된 주님을 발견하고 깨닫는 기쁨으로 애가를 불러야 할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죄인인 나를 찾아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이야말로 내 죄악으로 인해 그의 손이 묶인채 빌라도 법정에 넘겨진 경험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런 상황속에서도 범사에 아버지 하나님을 인정하시며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저자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강대국 바벨론의 손에 넘겨진 것이 자신이 결코 힘이 약해서가 아니라합니다

주께서 자신을 넘기셨기 때문이라 하십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인정치 않는다면 내가 약해서 강한 자의 손에 넘겨진 것이라 할 것입니다 

내 약함속에서도 내 약함을 탓한다면 주님을 주장하는 자세가 아닙니다

매사에 주님을 주장할 수 있는 자가 범사에 여호와를 인정하는 복된 자입니다


하나님 앞에 내 약함은 결코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나의 불순종이 문제가 될뿐입니다

오히려 내가 약함으로서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리스도의 은혜안에 온전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내(유다 성도들)가 감당할 수 없는 강한 자의 손에 넘겨지니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는 의로우시다 그러나 내가 그의 명령을 거역하였도다 너희 모든 백성들아 

 내 말을 듣고 내 고통을 볼찌어다

 나의 처녀들과 나의 청년들이 사로 잡혀갔도다

 내가 내 사랑하는 자들을 불렀으나 그들은 나를 속였으며~"예레미야 애가 1ㅣ18~19


저자는 이 끔찍한 고통의 한가운데서도 여호와는 의로우시다라고 노래합니다

우리가 고통스런 일을 겪는 것은 그분께서 악하시거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분의 의"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항상 옳습니다 언제는 옳고 언제는 그르신 분이 아니십니다

우린 그분께서 악하다하는 것을 선하다 하고 그분께서 선하다하는 것을 악하다하는 자들입니다


저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자(동맹국,애굽)를 부르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유다 왕과 신하들이 한 행위를 저자는 자신이 한 행위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바벨론에게 대적하지 말고 항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거짓말을 못하시는 분입니다

그분께서는 의로우시기에 그분의 말씀이 우리네 생각과 맞지 않고 

정말 아닌 것 같을지라도 범사에 그분을 인정하면 내 몸이 편하고 골수가 기름져 윤택해집니다


결국 저자(유다)는 속았다고 노래부릅니다

이 슬프고 비참한 노래를 모든 백성들에게 들어보라 합니다

 

왜 이렇게 슬픈 노래를 불러야만 할까요?

그것은 주의 의로우심 앞에 참회의 심령을 노래로 불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애가를 잘 부르면 주님의 의와 내 죄인됨을 보게 되어 위로와 겸손과 새 힘을 공급받게 됩니다


이왕에 사랑할려면 여호와를 사랑하는게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저자가 난다 긴다하는 세상 권력자를 사랑했더니 속임을 당했다하지 않습니까?

의로우신 여호와를 사랑하기로 한 언약을 배신하니 일파만파 치고 들어오는 만가지 고통속에 회개의 노래를 부릅니다


제가 감동받는 것은 처참하게 버려진 나라와 백성들과 처녀들과 청년들을 바로 나로 인식하는 한 몸 사상입니다

한 몸 사상이 없다면 과연 나라가 망한 죄악을 자신에게 지우고 대신 회개하며 애통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에서부터 책임 소재를 묻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얼렁뚱당 넘어가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물론 작정하시고 넘어가신 때가 있습니다

히브리 노예를 해방시킬 때입니다

그 때는 무조건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보고 넘어가셨습니다

그러나 내내 그러신 분은 아니십니다


저자가 자신을 책임소재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눈물을 강같이 흘리며 탄식 애통 참회의 시로 주 앞에서 애가를 불러 드립니다

우린 성경 저자 안에서 고통하시며 통곡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죄를 져서 십자가를 지신게 아니라는 것을 우린 너무나 잘압니다

하다면 애가의 저자도 유다에서 가장 많은 죄를 져서 

이렇게까지 내 죄, 내 죄, 내 죄라며 슬픈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로써 우린 이 저자야 말로 왕 같은 제사장이 어떠해야함을 보여주는 롤 모델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세례요한을 여인이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큰 자라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그는 나보다 능력이 크다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크신 능력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예레미야 애가를 통해 그리스도를 상고해본다면

그 분의 크신 능력은 그가 만인의 죄를 짊어지시고 만인의 죄를 말로만 용서한 것이 아니라

그 몸으로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서 실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왕 같은 제사장들은 마땅히 그분께서 십자가의 본을 보여주셨듯이

저마다 자기 몫으로서의 자기 십자가를 지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레미야 애가를 읽자니 다 망하고 난 뒤에도 이렇게까지 져야 할 십자가가 있다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도무지 깨닫지 못하여 망하게 했는데도 아직도 책임소재을 남탓으로 돌린다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길은 점점 더 멀어질 뿐입니다

예레미야 애가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일궈 낸 그리스도의 형상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짊어진다는 말씀은 

내 뜻과 내 자아의 부인과 내 혼의 죽음을 짊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전엔 사망이 무서워 못했습니다

죽는 즉시 사망의 세력 곧 지옥의 사자에게 끌려가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에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망을 이기신 십자가의 능력으로 인해  

응당 내 받아야 할 몫의 수치와 부끄러움과 고통의 죽음을 짊어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부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믿기에 말하며 믿기에 주와 한 몸된 여러 지체들과 더불어 예수의 죽음을 항상 짊어지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려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오시기 전에 활동했던 예레미야 애가의 저자도 그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행했다면 오늘날 구하는 자에게 성령 충만을 부어주시는 이 때야말로 더욱 더 그래할 것입니다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이 요구한다는게 궁극적으로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만 달란트 받은 자들은 만 명의 영혼을 놓고 그들의 죄악을 대신하여 속죄하는 산 제물이 되어

산 제사를 드리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내 집은 만인을 위하여 기도하는 집이라 말씀하신 아버지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예레미야 애가서의 저자가 자신의 고통이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라는 

질문을 받고 보니 참으로 그러합니다

그가 겪는 고통은 나라와 정부와 백성들이, 심지여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조차

죄를 깨닫지 못함으로 인해 겪는 고통이 태반이였기 때문입니다


내 자신과 내 가정을 내 목회와 내 조직을 먼저 세우려하는 인생들에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말씀은 참으로 실천하기 힘든 명령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나라 확장은 멀고 멀기만 한 것입니다


예레미아 애가는 죄악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도 자기와 같이 되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들이 내가 탄식하는 것을 들었으나 나를 위로하는 자가 없으며 

 나의 모든 원수들은 내가 재난 당하는 것을 듣고 주께서 이렇게 행하신 것을 기뻐하나이다

 그러나 주께서 그 선포하신 날을 이르게 하셔서 그들이 나와 같이 되게 하소서

 그들의 모든 악을 주 앞에 가지고 오게 하시고 나의 모든 죄악들로 말미암아 내게 행하신 것 같이

 그들에게 행하옵소서 나의 탄식이 많고 나의 마음이 병들었나이다.예레미야 애가 1:21~22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