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1)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2)짐을 질 것이라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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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는 몰랐었는데 어느날 느닷없이 성령의 비췸으로 인해 드러나는 공동체나 개인의 죄가 있습니다

그런 순간 바로 잡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러한 책무를 감당할려면 필히 요구되는 것이 있는데 신령해야 하고 온유해야만 합니다

안그러면 자신의 율법적인 만족이 될 수 있으며,

또한 자신을 범죄한 자와 다르게 생각하거나 비교함으로서 스스로의 자존심을 강화시킬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온유는 모세를 생각하면 좋을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집을 맡은 종으로서 충성한 것은 하나님께 연루된 관계속에서 나타난 것으로 온유와 충성은

함께 갑니다


우리는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께서 이러한 책무를 감당함에 있어 사람의 직분이나 

직책이전에 그 성도됨의 고유한 내적 상태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살아갈수록 내 허물과 죄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면 내가 신령치 못한 것이며 온유한 심령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불러내신 성도들에게도 자기처럼 키워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것이 없었다면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겠습니까?

자신이 전한 복음의 말씀이 분명 일할 것을 믿었기에 

교회와 성도들에 관한 염려를 하나님 말씀에 위탁하며 지속적으로 복음을 전한 사도입니다


바울이 말씀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컸으면 

너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가라는 말씀을 남겼을까요?


그의 신뢰와 더불어 모세의 갈망(여호와의 영이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여 다 선지자 같기를 원함)을 

생각하면 성도들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믿음과 갈망이 아닐까? 합니다


삼 십 오년전인가?

이민 오기 전 한국에서 살 때 한번은 새해 시민들 각자의 꿈을 거리에서 취재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잊을만하면 떠오르고, 또 잊을만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은 한 소녀가 들려준 새해 꿈입니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 한글을 쓰는게 꿈이라는 것이였습니다

그 순간 내 가슴도 뜀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녀도 이젠 오십대가 되었을텐데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요?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에서 짐이라는 말을 두 번 썼는데 

1)짐이 매우 무겁고 큰 짐을 말한다면

2)짐은 각자 개인이 지는 짐을 뜻합니다


우리는 민수기를 통해 성전기물을 한 사람이 들기엔 너무나 무거워 각각 

고핫자손, 므라리 자손, 게르손 자손이 서로 서로 나눠지는 것을 묵상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렇듯 생각보다 상상보다 무겁습니다

그 무거움의 절정이 십자가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 무거움의 무게를 약간은 갸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부활로 나타나 그 영광과 위엄을 온 세상에 비취입니다


공동체나 각 개인의 범죄한 사실을 성령님께서 비춰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잡아주라 한다

동시에 자신도 시험을 받을까 조심하라 합니다


이게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허나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순종할 때 교회가 성장 성숙해나갈 것입니다


예수께서 지신 십자가는 너무나 잔혹하고 끔찍하고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무거운 형벌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하나님을 믿고 순히 받으면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는 격이 되어 찬란한 영광도 받게 됩니다


이 말은 절대 행위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은 성도들이 당연히 지고가야 할 십자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라나 공동체가 잘못을 깨닫게 되어 깊이 참회할 때,

심지여 그 백성 중 단 한 사람일지라도 십자가의 고난을 전적 수용하여 나아갈 때

여호와께서는 그 한 사람으로 인하여 모두에게 다시한번 만회의 능력, 곧 회복의 능력도 주십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려니 한 젊은 사역자가 떠오릅니다

그 사역자는 형벌을 받을 때 개인적인 아닌 공동체적으로 받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나누어서 받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특정 지도자나 직분자들에게만 바르게 함의 책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라의 구성원들인 백성과 교회의 성도들도 다 함께 바르게 함의 책무가 있다는 것을 바울은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르게 함의 근거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비추이시는 빛에 근거한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이 빛은 말씀을 뜻합니다


우리 행동은 물론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생각들과 

마음의 동기들조차 말씀 앞에 늘 살펴봐야 할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이러할 때 우리 각자는 하나님과의 관계망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  결과 각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평강과 칭찬이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각자 자기의 일을 살피라고 권합니다

잣대가 여호와의 말씀이 아닌 사람에게 있다면 사람 사람과 비교하며 열등감을 갖거나 혹은 내가 남보다

낫다는 헛된 영광에 빠져 자랑하게 된다 합니다


또한 이렇게 신령한 것(복음)을 가르치는 자들을 

바울은 배나 존경하며 피차 모든 좋은 것들을 함께 하라고 권면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