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에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예가시자 큰 무리가 예수를 따릅니다. 병자들에게 행하신 표적을 

보고 저마다 예수를 향한 부푼 기대와 동경과 꿈을 안고 따릅니다

 

저도 열 두살 어린 나이에 하나님께서 제 병든 몸을 낫게 하신 기적을 체험한 후 그 큰 무리들처럼 예수를 따랐습

니다. 그 시절 휴학한 상태로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죽음을 생각하면 죽음이 무서운게 아니라 지옥에 갈까 려워 

떠는 저를 찾아와 고쳐주신 제 유년의 하나님을 추억하노라면 지금도 형용키 어려운 사랑의 불꽃이 타닥거립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여러 병에 시달린 절 위해 피눈물의 기도로 키워주신 어머님께서는 항상 성경을 끼고 사셨는데 

그 때는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허나 이젠 제가 그렇게 되고보니 이것이야말로 어머님께서 하나님을 위하여 제게 주고 가신 선물이라는 확신이 

날이 갈수록 깊어지는 것만큼 큰 무리가운에서 깨어나 주께로 가까이 가는 중입니다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앉으시니 마침 유월절이 가까운 때라 하십니다 

 

"5: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을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해 하실지를 아시고 7: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요한6:5~7

 

예수께서 눈을 드심은 아버지 보좌를 향한 시선을 말합니다. 그 시선으로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신 

예수께서는 그 큰 무리들에게 어떻해 행하실지 다 아시지만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고 묻습니다 

 

빌립은 여지껏 예수께서 베푸신 수많은 표적과 기사를 봤으면서도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라는 

온전한 믿음의 고백을 드리지 못합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실 때는 이미 당신께서 어떻해 하실지 다 아시고 말씀하십니다

 

제게는 두고 두고 생각나는 음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함께 교회를 섬기다 다른 곳으로 가게 된 싱글맘에게 연보하라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순종했으면 다 

잊어버렸을텐데 불순종한 결과 이렇게 수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가슴 아프게 기억이 됩니다

 

생각에 빌립도 저처럼 두고 두고 그 때 그 순간에 자신에게 물어 오신 주님의 목소리를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동시에 그로인해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말씀대로 능히 이루시고도 남음이 있으신 만유의 주이심을 믿어 

온전한 믿음의 사역자로 세워졌을 것입니다

주님의 교육은 당시에는 얼마나 비현실적이며 비이성적이며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셔야만 하는지 안개 속을 

걷는 것 같지만 결국은 당신은 참 하나님이시라는 것에 도장찍게 만드십니다

 

당신은 참 하나님이시라는 행복한 항복선언 이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선이 때로는 모호해집니다.

이성은 분명 이전보다 명료해졌는데 동시에 비이성적이기도 합니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시공을 초월한 무한대의 나라,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사노라면 육체의 한계를 깨트리지 아니하면 안되는 사건들을 감당하리만큼 만나게 됩니다 

 

그때마다 표적과 기사와 기적을 베푸셨던 예수앞에 부르짖으면 기적같이 풀릴 때도 있지만 

대부분 위로의 말씀과 기도의 힘으로 인내하며 오늘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날마다 주님 말씀을 대하면서 제 생각의 틀을 깨고, 

내 성정과 인내의 한계를 부수며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새롭게 지어져가고 있는 중입니  

 

빌립의 말이 끝나자 안드레는 한 아이가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가지고 있다고 보고 드립니다.그 한없이 

작고 미미한 것을 보고하는 자신이 너무 엉뚱하거나 너무 말도 안되는 것은 아닌지 갈등하는 심리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요한6:8b


안드레는 가나 혼인 잔치의 물포도주 표적외 예수께서 행하신 표적들을 생각하면서 어린이 같은 마음과 

옛사람이 공존하는걸 봅니다. 어른의 눈에 어린이가 보이고 그 작은 도시락이 보였다는 것도 기적이라면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얼마든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실 수 있는 분이시지만 굳이 한 아이의 도시락을 받아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십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 

우리가 당면한 공동체나 사회적인 문제에 교회가 관심을 갖기를 원해서일 것입니다. 아무리 미미할지라도 

어린아이 같은 믿음으로 교회가 예수 이름으로 감사 기도하며 행동할 때 아버지께서 사회문제에 개입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건 아닐런지.  

 

빌립은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다고 했지만 주님께서는 

각 사람으로 충분히 먹게 하시고도 열 두 광주리가 남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비현실적이며 비이성적인 것이 그분께는 현실이고 말씀이십니다. 그런 분이 교회의 머리이심을 인식한다는 

것은 우리의 경험과 생각과 현실 저 너머 말씀과 한 몸되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말씀과 한 몸으로 산다는 것은 항상 내 자아와 내 목숨의 죽음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님이 오죽하면 

나는 날마다 죽노라,내 몸을 쳐서 말씀에 복종시킨다고 고백했을까 싶습니다 

 

아버지!

아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들이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바라보는 장면을 떠올려 본 오늘 내내 이사야가 

기록한 말씀이 생각났습니다(이60:4~9)

우리가 살아가는 나날속에 당신의 아들로 말미암아 말씀대로 돌아오는 무리들이 항상 있게 하사 

아버지께서 아버지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그 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부가 네게 돌아 오며 이방 

나라들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게달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일 것이요 느바욧의 숫양은 네게 

공급되고 내 제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저 구름같이 비둘기들이 

그 보금자리로 날아가는 것 같이 날아오는 자들이 누구냐 곧 섬들이 나를 앙망하고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먼 곳에서 네 자손과 그들의 은금을 아울러 싣고 와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에 드리려 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에게 드리려 하는 자들이라 이는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라"이사야6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