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당신의 심판이 왜 의로운지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를 보고 듣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만일 자신이 자기를 증언하면 참되지 않다하십니다. 

사실 그분은 말씀이신 하나님으로서 그 누구의 증언이 필요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허나 하나님 보좌를 버리고 사람으로 오신 분으로서 율법 아래 사는 우리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주십니다

호수처럼 맑고 깊은 고요한 심성을 지닌 인자 예수를 알아 가는게 가면 갈수록 신비요,알 수 없는 은혜입니다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실 필요가 없으신 창조주께서 인간으로 오사

유대인의 구원을 위하여 첫번째로 세례요한의 증언으로 자신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31: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되 32 : 나를 위해 증언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 증언이 참인줄 아노라 33 :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였느

니라 34 :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받게 함이니라"

 

세례요한은 나는 주의 길을 곧게 하는 광야의 소리라고 외친 자입니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요단강에서 예수께 세례를 베풀자 하늘이 열리며 들리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기뻐하는 종"이라는 

음성도 증언한 자입니다

또한 성령이 비둘기처럼 예수께 내려와 머문 것을 보고 그가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 자라는 것도 증언한 자입니다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요한1:34

 

예수께서는 세례요한이 자기에 관해 증언해주었음에도 여전히 의심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계속 말씀을 주십니다.

지금도 수많은 종들이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과 재림 예수에 대한여 증언을 해주는데도 정작으로 

예수께서 "와서보라!"는 부르심에는 주저주저합니다 


세례요한이 그렇게까지 그리스도를 증언했 주었는데도 사람들은 왜 예수께로 가지 않고 

켜서 비추이는 등불인 세례요한 곁에서 머물기를 즐거워했을까요? 

켜서 비추이는 등불 빛과 스스로 빛이신 예수와는 그 빛됨의 차원은 달라도 엄청나게 다릅니다. 

스스로 타오르는 빛의 밝기를 누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 빛앞에 서면 우리 모두는 쥐구멍을 찾아 숨고 싶을지경입니다


베드로는 육체를 입고 사람 모양으로 오신 주께 고백하길 죄인인 자기를 떠나 달라고 요청합니다

허나 예수께서는 떠나지 않고 함께 머무셨습니다. 

사랑했기에 십자가에서 당신과 함께 죽여서라도 같이 살고 싶어서였습니다. 눈물납니다 

 

예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좇으라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연단된 인격이 되어 끝내는 당신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을 것을 요구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신과 함께 죽어야 당신과 함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태어난 새피조물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와 함께 나도 십자가에서 죽어지는 성령(거룩한 소멸의 불)체험이 있을 때만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나라,

사랑의 나라, 하나님 나라,영생의 나라,그리스도의 나라,진리의 나라를 맛보며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는 

왕같은 제사장과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 수 있습니다 

 

"35:요한은 켜서 비추이는 등불이라 너희가 한 때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36: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내가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 37: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 38:<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39: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요한5:35~39

 

예수께서는 이제 세례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를 소개해주십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사 이루게 하신 역사라 합니다.

이루신 역사라함은 공생애 사역시 행하신 수많은 표적과 기사와 기적으로 풍랑을 잔잔케하셨고,오병이어로 군중을

먹이셨고,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고, 권세있는 말씀을 증거하신 것을 말합니다

이루신 역사의 엑기스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당신을 믿는 자는 구원하시고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역사를 이룰 수 있도록 성부 하나님께서는 아들에게 성령을 기름붓듯이 부어주셨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가지가 또 나옵니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일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친히 아들을 위하여 성경을 통해서 증언해 놓으신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막상 와서 너희들을 보니 너희 속에 아버지께서 친히 아들을 위하여 증언해주신 

<그 말씀>이 없다는 것입니다.(38절)

 

살 떨리는 말씀입니다

짐작건대 이 유대인들은 오늘날 불신자들이 아닌 모든 성도들처럼 성경을 끼고 살았던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요한1:19,24)

 

<그 말씀>이라함은 하나님께서 친히 아들을 위해 

당신의 사람들을 통해 증언해 주신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을 가리킵니다 


예수께서 왜 이제껏 아들은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보고>

<듣지만> 너희는 왜 못보고 못보는지 37절 후반부를 보면 매듭이 풀리듯이 풀립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증언코자 창세기 때부터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을 주셨지만 

너희는 그때 그때마다 무수히 선지자들이 들려줄 때마다 그 음성을 <듣지>못했다 합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주시는 말씀을 하나님 음성이 아닌 너희들이 듣고 싶은 대로 듣는데 

어떻해 너희 속에 <그 말씀>이 머물러 너희와 함께 살 수 있겠느냐는 질문입니다

<그 말씀>과 함께 동거동락하지 못하는데 <그 말씀의 형상>인 하나님을 어찌 <볼>수 있겠느냐고 물어 보십니다 

 

그러니 아파서 신음하며, 먹지 못해 죽어가며, 죄에 눌려 종노릇 하는 

이웃들을 보며 먹이고 싶고 입히고 싶고 재우고 싶고 살리고 싶겠느냐?

특히 죄와 저주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해주고 싶은 하나님의 형상도 본 적 없으니 

나보고 안식일날 병자 고쳐주었다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그리스도)의 형상이 없으면 말씀도 없는 것입니다  

있다고 우겨도 정작 말씀이신 아버지와 아들의 형상은 없는 것입니다 

 

"40: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나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41: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인 영생(생명나무)을 썩어질 선악과와 바꾼 자들입니다

예수께서 사람의 증언을 취하지 않는 것과 사람의 영광을 취하지 않는 것은 같은 맥락입니다 

피조물이 어찌 창조주를 증언해 줄 것이며 창조주가 무엇이 부족해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할 것입니까?

 

선지자들이 그리스도를 증언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기 때문이며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올릴 수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지극한 영광이신 성자 예수를 

우리에게 먼저 주셨기 때문입니다  눈물납니다

 

"42: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43: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44: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옳습니다. 제게는 하나님을 사랑함이 없었나이다.

나란 세상을 사랑하여 하나님을 열심히 섬겨 내 만족을 취하려 했나이다.  

이렇게 자기 만족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자들이 자기가 만든 하나님 이름으로 오면 

서로의 영광을 취하고자 영접합니다.

허나 아버지 사랑을 품고 아버지 이름만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아버지 뜻인 영생을 주고자 

십자가 고난의 이름으로 함께 가자 하면 영접하지 않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45: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 

46: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47: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모세의 율법은 고소하며 송사하며 판단하는 정죄의 직분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성령과 생명의 법으로 의의 직분입니다. 복음(그리스도)안에 들어 온 자는 탕감과 용서를 선포하는 자들입니다 

 

아버지!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를 알기에는 너무나 교활하고 교만한 저입니다.

이런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