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아 여인이 갖고 있는 반유대적인 관념을 깬 결정적인 요인은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요한4:22)"는 주님 말씀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이 함께 유하시기를 간청함으로 예수님께서 이틀을 더 머무시다 떠나는 장면을 묵상하려니 

오늘날도 여전히 그 당시 사마리아인들 못지않게 전세계적으로 만연된 반유대주의가 걸립니다 

 

오늘날 반유대주의를 널리 확산시키고 있는 가장 악랄한 책은 '시온 장로 의정서'입니다

이 책을 읽게 된 독자들은 그 내용들이 허위임에도 진실로 믿어 이전엔 전혀 없었던 반유대적인 감정이 싹트고 

또한 이미 반유대적인 사람들은 이것을 이용하여 반유대주의를 확산시킵니다.이 책은 러시아를 비롯해 유럽,미국,

일본,남미,일본,아랍권에 이르기까지 번역되어 간행됩니다

 

1920년대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이 책을  오십만부나 복사할 자금을 대주었습니다. 

1921년 런던타임즈는 이 책에 관해 '매우 서투른 표절'을 증명하는 결정적 증거를 제시합니다

'시온 장로 의정서' 대부분이 유대인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정치풍자극으로 프랑스의 졸리가 ' 마키아벨리와 

몽테스키외의 지옥에서의 대화(1864년) '  에서 복사해 온 것이라고 밝힙니다 

 

나치당은 1919년에서 1939년 사이 이 책을 23판이나 찍어서 배포합니다  

이렇듯 인간들은 진리보다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을 믿고 듣고 싶은 것을 듣고 보고 싶은 것을 봅니다 

1964년 미국 상원은 '시온 장로 의정서'가 조작되었음을 선언하는 보고서를 출판합니다

러시아 법원도 1993년 극우 민족주의 팜야트가 '시온 장로 의정서 '를 

출판함으로  반유대적 행위를 저질렀다고 판결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러 아랍국과 이슬람 세계 학교 교과서에는 '시온 장로 의정서 '가 사실이라고 가르칩니다. 

또한 미국과 유럽 신나치주의 백인 우월주의자 맟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은 이것을 지지,유포시키고 있으며 

일본 등 유대인들이 거의 없는 국가에까지 공급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인터넷 웹 사이트들이 '시온 장로 의정서'의 사기행각을 폭로해도 인터넷으로 인한 

반유대주의 확산이 더 쉽게 퍼지고 있는 중입니다

 

대한민국도 만만치 않음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면 세대주의로 치부하거나 이단시 

여기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반유대주의가 과연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일까? 깊이 헤아려보아야 할 때입니다 

 

아무리 온 세계가 반유대주의로 뭉친다 해도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육체를 입고 오실 때 유대인으로  탄생하셔서 

반유대적인 사마리아인에게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고 말씀하심엔 영원히 변함없으십니다

 

반유대적인 사마리아에서 "세상의 구주!"라는 고백을 듣게 된 예수님의 마음은 기쁨으로 충만했을 것이나 

거기서 마냥 머물 수는 없습니다.

한정된 육체에 한정된 시간의 삶을 사는 동안 예수께서 하셔야 할 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로 가는 길 위에서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힘을 받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그럴지라도 고향에 가심은 그곳에서도 영혼 구원을 이루셔야 하기 때문입니다(요한4:44). 갈릴리에 오니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전에 갔다가 거기서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본 갈릴리인들이 예수를 영접하나 

"세상의 구주" "그리스도"로 영접한게 아니라 반갑게 인사하는 정도로 그칩니다 

 

예수께서 물포도주 표적을 행하신 가나에 오니 왕의 신하가 예수가 갈릴리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께 가서 

병든 아들이 가버나움에 있으니 내려오셔서 고쳐달라 하십니다(요한4:47). 이에 예수께서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요한4:48)"고 섭섭해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다시한번 병고치거나 귀신을 

내쫓는 일없이 순전히 말씀만 듣고도 "세상의 구주"로 믿게 된 사마리아인들의 믿음이 참으로 고귀하게 느껴집니다 

 

신하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뭔 말씀인지 도무지 상관할 바 아니라는 듯 다시 또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요한4:48)"라고 애원합니다

나도 내 식구 중 누가 병으로 사경을 헤멘다면 오직 병 낫는 표적만을 구하겠지요. 바라긴 우리에게도 백부장처럼 

"주님 말씀만 해주시면 낫겠나이다" 라는 기이한 믿음을 보일리 만무일 것입니다

백부장은 표적이 먼저가 아니라 말씀이 먼저였습니다. 생각할수록 기이한 믿음입니다.

 

신하는 주님을 얼마나 작고 초라하게 여기고 있는지 그조차 감을 잡지 못합니다  아들이 죽기 전에 내려와 달라는 

말은 사실상 아들이 죽으면 당신도 더이상 필요없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그 신하를 사랑하사 

그 신하로 하여금 말씀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할 수 있도록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라는 

한 마디 말씀을 던져 주십니다

 

"가다보면 네 아들이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시면 오히려 쉬울텐데 "가라 네 아들이 살아있다"라니 

이건 더 못믿겠습니다. 아들이 지금 살아 있다니 어떻해 살아 있다는 것일까? 

예수와 함께 가면 좋으련만,허나 대신 말씀과 동행하며 걸어갑니다 

온통 내 아들이 살아 있다는 말씀으로 가득찬 발걸음이 되였다면 가는 길이 즐거웠을 것이나 의심이 들었다면 

몸이 무거웠을 것입니다. 놀랍게도 성경은 신하가 말씀을 믿고 갔다고 기록합니다 (4:50b)

 

우리도 예수께서 곁에 계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가 원하는 표적이나 기적은 일어 나지 않으나 기록된 

말씀을 붙잡고 사망을 당한 자들로 붐비는 세상을 걸어갈 때 믿으면 발걸음이 가벼울테고 안믿으면 무거울 것입니다 

 

요즘 저는 에스겔에게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는 말씀을 붙잡고 살아갑니다.

아침에 가게 문을 열고 사거리를 향해 외칩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고 외칩니다.

처음엔 어찌 생기(성령)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성자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과 성부 하나님께서는

항상 상호내주/상호소통/상호존중/상호순종 하신다는 진리를 알게 된 후에는 달라졌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기에 생기가 듣고 그대로 행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니 명대로 순종하여 외칠뿐입니다

 

가나에서 하룻길 되는 가버나움으로 내려가던 중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하는 말이 아이가 살아있다 합니다. 

신하는 이제 자기 아들이 살아 있다는게 중요한게 아닙니다. 

그것보다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절대적으로 믿고 살아도 되는 진리/말씀이 정말 살아서 말씀사건이 나타나느냐?

아니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제 낫느냐고 묻습니다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믿으니라"요한4:52~53

 

신하가 어찌 그 온 집안 식구들에게 주님 말씀의 능력을 전하지 않았을까 싶고 그 말씀을 듣게 된 자들이 어찌 믿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은밀히 진행되고 있는 영혼의 추수가 지금도 동일하게 진행중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한번도 후퇴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 믿음이 연약하여 힘써서 그 하나님 나라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해서 그렇게 느낄뿐이나 

진리는 그렇지 않음이여!

 

아버지!

아드님을 보내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표적과 기사보다 말씀을 믿는 믿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 말씀 그 믿음을 우리에게도 주셨다는 것을 날마다 새롭게 발견할 수 있도록 지혜와 계시의 영을 앙망하나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