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3:9~21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난 자라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말씀에 니고데모는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라고 의아해합니다

율법을 행하는 자마다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하셨으면 손안에 쥘 수 있겠는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니 실로 감조차 잡기 어렵습니다 

 

거듭나는 수단과 방법을 똑부러지게 명시해주시면 자신이 주체가 되어 달려갈텐데 그게 아닙니다 

네가 바람은 보지 못하나 귀로는 분명히 들으면서도 그것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듯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다니 마냥 신비롭기만해 더 이해불가입니다   

문자로 쓰고 입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첫문장조차, 말머리조차 어디서 어떻해 끌어다 써야 할지 모르니 "어찌 이런 일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그 심정이 저는 충분히 이해갑니다

 

구약 곳곳에 물도 나오고 성령도 나옵니다

특히 물은 바벨론 포로로 살던 선지자 에스겔을 통해 죄와 우상으로 더럽혀진 이스라엘을 씻기사 정결케 만드시는 하나님 말씀의 신비로움을 나타낸 말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물과 병행하여 돌 같은 마음을 살 같이 연하게 해주는 신비로운 속성으로서의 새 영을 부어 줄 것도 약속하셨습니다 

 

에스겔은 환상속의 새성전 문틈으로부터 새어나오는 물이 급기야 큰 강을 이루어 주변의 생명들을 소생케 할 것이라는 예언도 했습니다 

이 때의 물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다시나게 하는 생명수,곧 성령을 말합니다

 

또한 그는 마른 뼈 환상속에서 회생 불가능한 모든 뼈들에게 여호와의 말씀대로 대언하자 이 뼈 저 뼈들이 서로 연락하며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올랐으나 생기가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때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대언할 때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곧 살아나 큰 군대가 된 것을 봅니다

 

새성전 환상이나 마른뼈 환상은 성령이 아니면 보게 할 수 없는 환상으로 이는 성령께서 책임지시고 성취할 것이기에 여호와께서는 인자 에스겔을 통해 대언하게 하신 것입니다 

 

바로 그 성령께서 보여주신 환상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쳐 그 성령의 나라/그 하나님의 나라/그 인자의 나라를 사모하도록 고무시켜야 할 이스라엘의 선생님께서 그렇지 못함이 드러납니다

 

나 자신도 정말 난해한 것들 앞에 서면 꽝 막히지만 뒤로 물러서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뒤로 물러나 침륜에 빠지는 것을 싫어하신다는 말씀을 먹고 먹으며 오늘까지 달려 왔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의 격차와 하나님 때와 내 때와의 시차도 항상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럴수록 내 생각에 사로잡힌 나보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고 신뢰할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끝없는 율법적인 요구에 지쳐 있는 우리에게 그림자로의 율법이 아닌 빛이신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날 수 있다는 말씀이야말로 위로요 복음입니다

그러나 의외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 갈망이 없을 정도로 땅의 부자이고 땅에 부요하고 땅에 부족함이 없는 자들도 있으니 다시 나는게 두려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율법이 축복이라 인정해주는 부자요 부요한 자요 부족함이 없는 자들에게 복음이 들려지지 않는 것도 가난한 우리들에겐 위로라면 위로입니다

허나 우린 그들이 재난 당할 때 그들을 위해서도 피흘리신 주님 사랑으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니고데모에게도 상류층으로 구성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공모할 때 외로운 투쟁을 감내하는 어려움을 만납니다

그는 용케도 불길처럼 타오르는 그들의 시기와 질투로부터 빠져나와 평생 익힌 율법으로 항거합니다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요한7:51 

 

생각에 니고데모는 자신의 답답함을 느끼시면서도  포기치 않으시고 계속 증언해 주신 예수님에게서 뭔지모를 사랑을 느낀 것 같습니다 

 

어리석고 답답한 저를 포기하시지 않고 날이면 날마다 기록된 말씀을 읽고 묵상하도록 당신 발치를 내주시는 사랑과 같은 맥락입니다

결국 니고데모는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몰약과 침향 섞은 것으로 예수님의 시체에 바르고 세마포로 싸서 무덤에 누이는 마지막 길을 동행합니다

 

니고데모가 제자들도 다 떠나버린 그 순간에 예수님의 죽음에 동참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께서 자신의 영적 무지함에도 포기치 않고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역사적 사건을 소급해서 증언해 주셨기 때문이 아니였을까 추측해봅니다

 

니고데모가 "인자도 광야에서 들린 뱀처럼 그렇게 들려야 하리라"며 자신을 향해 말씀하시던 예수님의 눈빛을 어찌 잊을 수 있었을까요?

 

생각에 그도 제자들 그 이상으로 주님의 부활을 기뻐했을 것이며 오순절 성령강림에 희열을 느꼈을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심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요한3:13~21

 

밤의 니고데모가 공회의원들에게 예수가 의인됨을 율법으로 증명코자 질문을 던진 걸 볼 때 그는 어둠에서 떨어져 나와 어둠을 비추는 별이 되어 남은 삶을 살았으리라 확신합니다 

 

결국은 그도 진리를 따르는 자가 되어 빛이신 예수의 시체 앞에 나와 채찍과 창과 못에 찔린 상처에 향을 바르며 울었을 그를 생각해보니 그의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이 나타납니다 

 

아버지!

저주 받은 땅(창3:17)의 사람으로 태어난 제게 성자 예수를 보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하나님 나라에서 다시 나게 하시려고 제 모든 저주와 죄와 질병과 연약함을 다 지시고 십자가 높이 들리사 성령의 불로 다 소멸시켜 주시고 새생명으로 살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