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이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고 묻는 말에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는 답변은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는 초월적인 울림입니다

 

실로 "아침빛 같이 뚜렷하고 달같이 아름답고 해처럼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같은 위엄"입니다

헤롯 왕실도 국회도 국방부도 종교회당도 시민광장도 아닌 광야에서 오로지 주님의 길을 곧게 한다는 일념으로 산 행위가 해처럼 맑고 순수합니다

또한 알긴 알아도 늘상 머뭇거리며 소신을 펼치지 못하며 살아가는 어둡고 축축하고 우유부단한 인생들에게는 분명 아침빛처럼 뚜렷하고 달처럼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광야에서 낙타털 옷을 입고 외치는 그는 하나님 나라의 깃발을 세운 군대처럼 위엄있습니다

 

믈리적인 소리는 분명 이천년전 그의 죽음과 함께 사라졌건만 범이 표효하듯이 우렁찬 그의 소리가 내 마음을 가득 채우니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는 저들이 던진 질문도 함께 들립니다 눈물납니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시편19:2~4

 

십 대 때 성경을 읽다 설마 그럴까라는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다 강산이 두 번 변하기 시작하는 이 십년 세월이 흐르면서 의혹 대신 확신있게 믿어진 말씀(요한21: 25)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줄 아노라"

 

세례요한이 자신의 정체성을 '주의 초림의 길을 곧게 하려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 했다면 나는 주의 재림의 길을 곧게 하려고 일상에서 기도하는 소리이거나 기록된 말씀을 묵상하는 자의 펜(묵상 자판기)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례요한의 입술의 모든 말과 그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어 그가 한 사역을 불꽃으로 삼고 천사들을 바람으로 삼아 온 땅가운데로 번지는 불 길을 내사 코로나로 지친 선교사님들과 주의 종들과 모든 성도들에게 돌파의 새힘과 코로나를 능히 전복할 수 있는 백부장의 믿음을 주시길 기도합니다

 

세례요한이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과의 만남을 가진 그 이튿날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보라!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을 보라!"고 외칩니다 

 

마치 술람미 여인이 예루살렘 딸들에게 왼 팔로 내 머리를 고이고 오른팔로 안아주시는 내 사랑이 나를 깨우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아달라 하자 그 다음 수순으로 그녀의 귀로 들리고 눈으로 보이는 사랑하는 자를  본 순간 예루살렘 딸들을 향하여 "보라!"고 외친 것과 다름없습니다

(아가2:6~8)

 

근데 주께서 그녀에겐 사랑스럽고 다정한 노루 사슴같이 다가가셨다면 세례요한과 이스라엘에게는 온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으로 오십니다 

세례요한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연이어 세례요한은 자기 증언에 인쳐주시는 성령의 감동에 사로잡혀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요한1:30~31

 

세례요한을 통해 그리스도도 알고프고, 말라기가 예언한 엘리야의 심령을 갖고 올 선지자도 알고프고, 모세가 형제들가운데 자기와 같은 선지자를 일으키면 그의 말을 잘 들으라고 부탁한 그  선지자도 알고파 갈증을 일으키며 찾아 온 자들과 헤어지기 직전 주신 말씀을 다시 되새김질 해봅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요한1:25~26

 

세례요한은 예루살렘에서 요단강까지 찾아 온 목마른 레위인과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나는 너희에게 알린 바 되었으나 아직 "너희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다고 말해줌으로서 그들의 갈증을 더욱 더 부추깁니다

 

너희 갈증의 목이 빠져나가도록 그 한 사람을 기다렸다가 나타나게 되면 내가 그 사람의 신발끈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다고 말한 것을 숙고하며 그 분을 잘 받들어 그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힘써 펼치라는 권면일 것입니다 눈물납니다 

 

세례요한은 빈들에서 자라면서 언제쯤이면 그 분이 자기에게 오시려냐 광야의 적막한 별빛아래 일념의 칼을 예리하게 갈며 살았음이 분명합니다 

근데 지금 그분께서 Suddenly, 남이 아닌 자기에게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자 "나도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였었다고 고백합니다

 

생각에 세례요한의 어머님과 예수님의 어머님께선 친척인지라 얼마든지 교제하며 아들들 이야기를 피차 주고 받았을텐데 왜 알지 못하였다 하실까?  갸우뚱거리게 됩니다

 

허나 그것은 성장 과정 속에 오가는 사람 사는 이야기로서의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천사의 수태고지와 잉태하여 아들들을 각기 해산했을 때의 말할 수 없이 찬란했던 영광도 살다보면 아득히 멀어집니다

엄마의 뱃속에 태아로 있을 때 둘이 만났던 그 순간의 희열도 희미해지는게 썪어질 육체를 입고 살아가는 자들의 슬픔이라면 슬픔인 것입니다 

유년의 예수는 아버지 요셉의 일을 돕느라 하루 하루가 가고 육신의 아버지 마저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 마리아와 동생들의 호주로 사노라 빈 들의 세례요한을 찾아가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눈 적이 있었을까요?

 

살아보니 각기 자기 사명을 위해 사는 것도 버거운만큼 그 누구를 잘 알아 볼 수 있는 여력을 갖춘다는게 쉽지 않습니다 

세례요한은 예루살렘에서 자기를 찾아왔던 사람들에게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다"고 예수에 관해 말해주었듯이 자신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라는 말을 두 번씩이나 고백합니다(31절,33절)

 

그는 정말 예수께서 언제 나타나실런지,또한 무슨 일을 펼치실지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세례요한이 자기가 할 일도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 때부터 빈 들에서,오직 주의 길을 곧게 하라는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로 살면서 그가 발견하게 된 것은 자신이 묵묵히 물로 세례를 베풀다 보면 그래서 물 세례의 분량이 채워지면 그 분께서도 온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나타나리라는 믿음으로 살았던 것입니다(31절)

믿음은 반드시 실상을 가져옵니다~^^

 

남편의 기도 중 떠나지 않고 내 마음 속에서 향를 사르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 기도는 1994년경 지역교회를 섬길 때 드린 대표 헌금기도입니다 

 

"우리들의 꿈인 주의 얼굴을 정녕 뵈올 수 있는 날이 올 것을 믿습니다"라는 기도인데 그 기도의 향을끄지 않고 산지도 어느새 27년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세례요한이 초림 예수의 얼굴 볼 날을 하루가 일 년처럼, 일 년을 하루처럼 기다리면서 그가 <베푼 일>속에 묻혀 있는 멧세지를 들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과연 세례요한처럼, 광야에서 가나안 땅으로 진입하기 직전 건너가야 할 요단 강가로, 각처의 사람들을 오게 할 수 있는 믿음의 물세례를 베풀 수 있는 하늘로부터의 권위가 있는가?

 

세례요한은 자신이 물세례를 베푸노라면 예수께서 당신 앞으로 나오시리라는 것을 믿는 마음으로 행하였는데 그의  물세례 자격증은 여호와께 순복하며 살았기에 주어진 권위라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의식하든 안하든 임박한 종말에 나타날 재림 주의 얼굴을 믿음의 세례요한처럼 자신뿐만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 앞에 나타나도록 믿음으로 물세례의 분량을 채우는 일에 어느만큼 성실한가?

 

우리는 열방 교회뿐만이 아니라 만민을 향한 기도의 꽃술이 펼쳐진 각 지역 이웃들에게도 재림 주의 얼굴이 나타나도록 눈물의 기도로 세례 받은 적이 과연 일생에 몇 번이나 있었을까?

갈수록 주님께서는 내 가슴 깊숙히 가르며 심각한 죄를 보게 하십니다

용서해 주십시요

 

피차 주님의 몸이 된 성전/우리 교회는 진실로 진실로 만민을 위하여 기도세례를 베풀 때 입니다 

이런 영적 자각을 실현시키는 교회야말로 이천년전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이 물세례를 베풀던 일에 참여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이런 교회가 받는 복은 세례요한과 이스라엘이 물세례를 베풀고 받는 일을 하다 초림 예수를 만났듯이 재림 주의 임박한 때를 온 열방에 알리는 이 일을 하다가 재림 주를 아주 가까이서 뵐 수 있다는 믿음에 항상 깨어있는 복입니다 

 

이스라엘은 언약의 땅으로 입성하기 위해 창일하게 흐르는 요단강물속에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먼저 들어가 서있자 물이 말려 백성들이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고 가나안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홍해는 애굽에서 나와 광야교회로 입성하기 위해 율법의 모세와 함께 세례를 받은 바다입니다

요단강은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입성하기 위해 믿음의 여호수아와 함께 동행하시는 벱궤의 하나님과 함께 거룩한 세례를 받은 곳입니다 

 

하다면 세례요한 당시 요단강은 친히 입을 열어 말씀하시는 성자 하나님을 만나려면 반드시 사백년의 침묵시대를 건너가야만 하는 진리와 기도의 물세례 강입니다

 

물이 뜻하는 바 진리의 생수와 기도의 눈물과 주께서 쏟으신 물과 피로 아직도 처리되지 못한 쓴뿌리로 얼룩진 점과 티와 상처와 과거의 주름들을 깨끗이 씻는 일을 하다보면 속히 오리라 한 주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의인이 된 것입니다 

 

물세례 분량을 채워가는 세례요한에게 하나님께서는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면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줄 알라고 하신 것을 미루어 볼 때 세례요한은 성인이 되신 예수님 얼굴을 정말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어도 열리지 않던 하늘 문을 여사 성령을 지상에 끌어내려 머물게 하신 분!

당신으로 인해 오늘은 내 맘속에 소리없이 흐르는 눈물을 느낍니다

 

우리들의 기도가 영하 몇십 몇백 몇천도로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려면 0도가 될 때까지 향을 사를 것이며 또한 0도,혹은 그 이상의 온도가 된 마음들이 주와 함께 승천하는 영적 현실을 깨닫게 하려면 물이 끓는 임계점인 백도가 될 때까지 불을 끄지 않듯이 기도의 향 사름도 그리해야 할 것입니다 

 

아버지!

이미 모든 인류를 위한 은혜와 진리의 하늘 문은 열렸건만 많은 나라 많은 백성들에게는 아직도 꽁꽁 닫혀 있는 것을 봅니다

용서하소서! 그리고 우리들의 애닯음과 영적무지와 결핍현상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

영적대각성의 소망을 품고 얼굴과 얼굴을 보며 부르짖을 수 있도록 코로나의 독으로부터 모든 교회들을 자유롭게 하소서! 

성령의 불로 코로나를 태우소서

사단이 코로나로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가는 것을 우리로 목도케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