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15: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을 번뇌하게 하온즉 16:원하건대 우리 주께서는 당신 앞에서 모시는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수금을 잘타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하는지라 17:사울이 신하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잘 타는 사람을 구하여 내게로 데려오라 하니 18: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수금을 탈 줄 알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하더라 19:사울이 이에 전령들을 이새에게 보내어 이르되 양 치는 네 아들 다윗을 내게로 보내라 하매 20:이새가 떡과 한 가죽부대의 포도주와 염소 새끼를 나귀에 실리고 그의 아들 다윗을 시켜 사울에게 보내니  21: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앞에 모셔 서매 사울이 그를 크게 사랑하여 자기의 무기를 드는 자로 삼고 22:또 사울이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원하건대 다윗을 내 앞에 모셔 서게 하라 23: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영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삼상16장

 

여호와의 말씀대로 양치는 소년 목동에게 왕(멜렠)의 기름을 부은 사무엘은 장차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이 소년이 왕좌에 앉게 될런지 한 마디 말도 없이 떠납니다. 생각에 노선지자는 이새와 그 아들들에게 다윗의 기름부음에 관한한 함구령을 내리고 떠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노선지자는 이런 위태롭고 아슬 아슬한 상황속에서도 가장 멋진 일을 하실 여호와를 기대하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성실하게 기도했을 것입니다.

 

노선지자는 더이상 사울 왕과 더불어 나랏일을 의논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때 그는 분명 소년 왕 다윗이 악령에 시달리는 사울 왕 앞에서 수금을 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얼마 후 사울 왕의 무기를 든 자가  되었다는 소식도 들었을 것입니다.

 

노선지자는 사울이 얼마나 이기적인가를 알기에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자기 병이 낫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하나님도 이용할 수 있는 자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울은 여호와의 영께 자신을 복종시키기보담은 자기 의를 위하여 사용하기에 급급하였으며 여호와의 말씀보다 자신의 말을 앞장 세우다 종내는 여호와의 영으로부터 버림 받게 됩니다. 성경도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말 것과 성령을 소멸하지 말 것을 명하십니다. 성령께서는 내 속에서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대신 세미한 음성으로 일하시기에 내 목소리를 낮추지 않는한 잘 들리지 않습니다. 성령님을 대놓고 무시한 적은 없지만 성령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내 목소리를 멈추거나 낮추지 않는 한 결과는 동일하여 세미한 음성을 놓치게 됩니다

 

사울이 자기 몸과 맘이 괴롭지 않았다면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다윗을 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은 단 한번도 지도자로 세워 달라고 구한 적도 없는데 자신의 뜻과는 달리 지도자로 택하사 왕으로 세우실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는 자신을 버려 왕이 못되게 하신 하나님!

그런 하나님을 생각한다거나 그런 하나님 이야기를 듣는 자체가 번민이요,괴롬이요 미칠 지경인데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자를 데려다 치료 받으라뇨?

차라리 숨통을 조여오는 악령에 의해 죽을지언정 그짓은 못할 것 같은데 종내는 허락한 사울을 생각하노라면 연민과 동정이 앞지릅니다.

한 때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어 용감히 싸운 사울 왕의 몸이 이제는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의 놀이터라뇨? 이런 결과를 초래한 원인이 여호와일까? 사울 왕일까? 를 두부모 자르듯 분명한 선긋기를 따지는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근데 묵상과 함께 여기까지 오고 보니 선긋기는 내 몫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면 위의 본문을 묵상하려니 여호와의 영이 떠났다 하여 사울에게 은혜와 자비마저 떠났다고 볼 수 없는 요소들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를 여전히 사랑하여 그의 조여오는 숨통을 열어 다시 숨쉬게 하시려고 다윗과 함께 사울 곁으로 오신 하나님을 뵈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깐 다윗이 사울 곁에 온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눈물납니다  

 

여기서 우린 악령을 부리는 주체가 사단이 아니라 여호와시라는 것과 악령이 사울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일시적이며 제한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시적이며 제한적인 것도 이스라엘의 찬양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쫓겨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

우린 이런 섭리적인 구도가 그때나 지금이나 반복적으로 역사 속에 펼치시며 우리를 연단하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복된 자녀들입니다. 

 

하다면 왜 여호와께서는 사울과 다윗을 이런 섭리적인 구도 속으로 불러 드리신 것일까? 

 

사울 왕은 자기를 기름 부어 세운 여호와를 버림으로 그도 여호와로부터 버려져 이미 폐위 되었으나 아직 왕좌에서 내려 오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는 마치 여호와께서 제 인생의 왕되기를 거절하고 제 스스로 왕이 되어 살고 있음에도 저를 즉시 폐위시키지 않은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왕으로 섬길 수 있는 회개의 기회를 주신 셈입니다

또한 악령이 사울에게 이르면 이내 죽을 것처럼 숨 넘어 가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다윗의 찬양 소리에 되살아나게 하심으로서 사울을 회복시키듯이 제 심령이 괴로울 때마다 저를 회복시키고자 여호와의 종들의 말씀을 보내시기도 하고 성도들의 찬양을 듣게도 하십니다. 이는 여호와의 오래참으심과 자비와 긍휼의 속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한편 다윗은 악령을 제어하시는 여호와의 능력을 더욱 더 신뢰하는가운데 사람과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직 여호와를 찬양하는 자로 성숙해져갑니다. 또한 다윗은 폐위 되었음에도 아직까지는 현직 왕인 사울 왕을 섬기면서 종의 형상을 이루어갑니다. 그리고 왕궁의 일들을 보고 들으며 습득하게 됩니다.

 

폐위된 사울 왕에게는 회개와 회복기를, 이제 떠오르게 될 다윗 왕에게는 위로는 여호와를 왕으로,아래로는 백성을 섬기는 종의 형상을 이룰 수 있도록 배치한 여호와의 완벽한 구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오늘날도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여호와께서 각 가정과 각 교회와 각 사회 속에 배치시킬 때면 종의 형상을 이루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과 장소로 보내신다는 걸 믿어야합니다.

이런 믿음으로 발을 딛고 사는 자들은 내 주를 내 앞에 왕으로 모시고 사니 이것이 곧 왕궁의 삶인 것입니다


오늘 특별히 묵상한 말씀은 "22:또 사울이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원하건대 다윗을 내 앞에 모셔 서게 하라"입니다 

 

사울이 다윗과 함께 하신 하나님을 보았다면  다윗의 아버지 이새가 아닌 이스라엘의 아버지 하나님께 구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아버지여! 내가 회개하오니 이제라도 아버지를 내 앞에 모시어 드립니다라며 통곡 하며 울부르짖었을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편16:8

 

아버지!

저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께서 기름 부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저희들을 있게 하사 아버지를 섬기신 

아들을 보고 들으며 배우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또한 종의 형상을 이룰 수 있었도록 가장 완벽한 인생 구도 속에 저를 배치시켜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아버지 뜻이 하늘에서 이루신 것 같이 제가 발을 딛고 사는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