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히:멜렠)을 보았느니라"삼상16:1

 

길갈에서 사무엘이 공개적으로 선포한 사울 왕의 폐위 소식은 순식간에 이스라엘 전역을 불안과 두렴에 빠지도록 했을 것입니다. 사무엘은 여호와의 인도함속에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지도자(히:나기드)로 세웠습니다. 이는 사사시대 패턴대로 자기 백성의 울부짖음에 응답하사 사울을 통해 블레셋 손으로부터 건져내려 하심입니다. 허나 다

른 나라들 같이 왕을 구하는 백성의 완고한 뜻대로 왕으로 세워 주셨지만 결국은 여호와로부터 버림 받아 왕이 되지 못하게 하시니 사무엘이 나랏 일과 백성에 연루된 사울로 괴롭고 슬픕니다.

 

감사하게도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슬픔에 빠지도록  나두지 않고 말씀으로 당신을 나타내십니다.이젠 그만 슬퍼하고 앞 일을 도모하자시며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겠다>하십니다. 이 말씀 속에는 장차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수를 베들레헴 이새의 아들 다윗 혈통에게로 보내시는 장면이 함께 묵상되어집니다.

 

"베레스(유다가 며느리 다말을 통해 얻은 아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보아스는 룻을 통해 오벳을,오벳은 이새를,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룻4 :18~22

 

이스라엘이 생각하는 왕과 여호와께서 생각하는 왕이 얼마나 다른가를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통해 하시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보기를 원합니다.또한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는 시대에 여호와께서 다시 사무엘에게 말씀으로 나타나시므로 말씀이신 여호와의 성품에 힘써 참여하는 선지자를 잘 보고 따라가기를 소원합니다

 

2:사무엘이 이르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3: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네게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4: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이르되 평강을 위해 오시나이까 5:이르되 평강을 위함이니라 내가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하고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성결하게 하고 제사에 청하니라"

 

폐위 선언은 했지만 아직은 나라의 행정과 군사가 사울 왕의 손에서 움직이고 있는데 새 왕을 세운다는건 반역이고 무엇보담 이새의 집안은 물론 베들레헴 온 성읍이 사울 정권에 몰살될 가능성을 노선지자는 염려합니다. 성도가 세상 나라에서 여호와의 뜻,곧 말씀을 행한다는게  바로 이렇습니다. 말씀대로 행하고자 할 때 잘못될 가능성이 보입니다. 그렇다하여 기회만 엿보며 미기적거리자니 개운치 않습니다. 이럴땐 무조건 사무엘처럼 엎드려 여호와께 구해야 합니다.

*내가 어찌<어떻게하면>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여 갈 수 있으리이까?* 


이에 암송아지 끌고 가서 여호와께 제사 지내려 왔다 하고 이새를 제사에 청하면 행할 일을 가르치겠다 하십니다. 울 하나님 응답하시되 감질나게 응답해주십니다.첨부터 그 집에 끝트머리 소년 다윗에게 기름부으라 하시지 않습니다.현장에 가면 그때 그때 생방송 해주시겠다 하십니다. 이러므로 성도는 삶의 현장을 귀히 여기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의 응답이 성도가 맞부딪치는 현장 속에 깃드여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린 하나의 질문이 생깁니다. 여호와께서도 제사를 수단으로 여기시는가? 사무엘은 그 당시 이스라엘 전 지역을 순회하며 그 지역 백성들과 함께 여호와께 제사 드리는 일을 담당했으므로 그의 제사드림은 여호와와 백성을 섬기는 올바른 목적에 근거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 때 여호와께서 암송아지(화목제물)를 끌고 가라 하심은 여호와께서 백성들과 함께 화목을 누리시고자 하심입니다. 이에 성읍 장로들이 사무엘에게 어인 일로 오셨냐며 떨며 물을 때 평강을 위하여 왔노라고 응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라의 정세가 위태롭고 삶이 불안할 때 아버지께서는 우리들만 이곳으로 보내신 것이 아니라 화목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보내셨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날마다 새롭게 화목케하는 자로 살아갈 것을 명하십니다.

 

사무엘은 장로들에게 나와 함께 여호와께 제사 지낼 것인즉 스스로 성결케 하고 오라 합니다. 그 사이 사무엘은 이새의 집에 가 그들을 성결케 하고 제사에 청합니다. 죄인들이 여호와와 화목을 누리는 길은 화목 제물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와 우리 사이의 담을 허시고 화목케하셨음을 믿고 하늘 보좌로 나아가는 것입니다.사무엘이 청한 제사속에는 이같은 평화의 비밀이 깃드여 있습니다 

 

6: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7: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 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삼상16

 

사울을 경험하고도 사무엘은 엘리압의 외모에 그의 마음이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라고 여깁니다. 안목과 육체의 정욕에 휘둘리는 순간  여호와께서는 당신 생각을 알려 주심으로 돌이켜 여호와의 성품에 힘써 참여 하는 자가 됩니다. 이 때 들려주신 여호와의  말씀은 순종이,들음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과 더불어 유명합니다. 이 말씀은 지금도 여전히 들려 주시는 말씀으로 제 운명을 선택하도록 만든 결정적인 말씀이기도 합니다.

 

여전도사님 중매로 선보는 날 다방에 가니 남자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며칠 후 이 남자가 저 몰래 제가 일하는 곳으로 와 절 보고 갔다 합니다. 그리곤 전화로 절 만나자 하여 나갔는데 제 마음에서는 아니올시다였습니다. 근데 내 마음과 전혀 다른 마음이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는 목소리를 들려 주시는데도 거절했습니다.

 

허나 여호와께서는 반드시 말씀을 이루시는 분이신지라 제 본성으로는 입기 싫은 화목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강권적으로 입혀서 이 집안으로 보내셨지만 정작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벗고 싶었던 불순종의 순간들이 참 많았습니다. 마치 불순종의 사울처럼 그리했으나 성령께서 절 위해 탄식하심으로 회개하여 돌이켜 여기에 이르렀으니 많은 죄가운데 많은 은혜가 넘칠뿐입니다

 

일곱 아들들이 사무엘 앞에 지나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다며 이새에게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고 사무엘이 묻습니다. 양 치는 막내가 남았다 합니다.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삼상 16:12~13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