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이제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 목전에서 행하시는 이 큰 일을 보라 오늘은 밀 베는 때가 아니냐 내가 여호와께 아뢰리니 여호와께서 우레와 비를 보내사 너희가 왕을 구한 일 곧여호와의 목전에서 범한 죄악이 큼을 너희에게 밝히 알게 하시리라 이에 사무엘이 여호와께 아뢰매 여호와께서 그 날에 우레와 비를 보내시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와 사무엘을 크게 두려워하니라"삼상12:16~18

 

사무엘은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 같은 왕이 없어서  주변국들의 공격과 압제를 받는게 아니라 여호와의 목소리와 그 명령을 듣지 않아서라 합니다. 여호와의 공의는 범죄를 그냥 너머가시는 분이 아니시기에 자기 백성일지라도 대적의 손에 넘기시는 형벌을 내리셨다는 것을 이해시킵니다

 

그리고 진노 중일지라도 즉각 회개하고 오직 여호와를 찾으면 구원해주시길 매 번 성실하게 응답해 주신 여호와가

왕 되는 것이 싫어 인간 왕을 구한 너희들이 죄가 크다는 것을 비와 우레로 입증해줍니다

 

밀 베는 때는 비가 내리지 않을 때이지만 여호와께서는 사무엘의 말이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응해주십니다. 

하필이면 왜 사무엘은 여호와께 비와 우레로 이스라엘이 왕을 구한 일이 잘못인가를 입증하도록 했을까? 

이는 이스라엘이 비의 신으로 바알을 섬겼기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비를 내리시는 분이라는 걸 보여주려

함입니다

아합 왕때도 백성들이 바알을 비의 신으로 알고 섬겼기에 삼 년 반 동안 하늘을 닫아 놓으신 적이 있으셨습니다

 

사무엘이 말한대로 바알에게가 아니라 여호와께 비와 우레를 구하자 즉시 응하는 것을 본 이스라엘이 여호와와 사무엘을 크게 두려워합니다. 만일 오늘날의 성도들 앞에서 그런 역사가 나타났다면  크게 두려워하기보담은 크게 기뻐하며 춤추며 여호와를 찬송할 것입니다. 이것은 십자가의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가 죽지 않게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삼상12:19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건만 백성들은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사무엘에게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부르려니 도무지 입이 안떨어집니다. 퍼붓는 비소리와 우레소리를 듣기 방금 전만에도 왕을 세워서 모두가 다 크게 기뻐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 큰 기쁨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감정으로 변한 것은 왜입니까? 성령의 기쁨은 변질되지 않는데 말입니다 

 

왕을 구한 것이 죄라고 외쳐도 죄가 죄인지 모르는 백성들을 깨우치기 위해 사무엘은 비와 우레를 구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즉시 사무엘이 기도한대로 내리는 비와 우레 소리를 듣는 순간 백성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무엘과 함께 하셨던 여호와께서는 천 년 후 나사렛 예수와 함께 하셨고 지금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사무엘을 통해서 일하셨듯이 우리를 통해서도 하실 일들을 기대하며 기도하며 기다립니다.

 

여호와가 자신들의 왕 되기를 싫어 하여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나라 같은 왕을 세웠으니 백성들이 어찌 우리의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백성들은 모든 죄에 왕을 구한 악까지 저질렀으니 날벼락 맞아 죽을 것 같은

공포 분위기에 빠져들어갑니다


이스라엘 중 그 누구가 사무엘이 여호와께 드린 화목제물의 효력 발생을 믿었을까요?  왕을 구한 자신의 죄악을 대신한 제물이 피흘려 죽음으로서 여호와의 진노가 충족되어 이제 나는 화목을 누릴 수 있다는 당위성을 주장할 수 있었을까요?

 

성도는 뒤로 물러가면 안됩니다. 원수가 송사하면 할수록 십자가에서 바로 내 죄를 사하시려고 피와 물을 다 쏟으신 예수를 증거하며 복음의 진보를 이루어 나가야만 합니다. 허나 이스라엘은 아직 복음의 그림자인 죄와 사망의 율법 아래 있으므로 자신들의 죄를 드러내고 있는 사무엘과 여호와가 크게 두려울뿐입니다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지 말고 오직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 돌아서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따르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삼상12:20~21

 

사무엘은 너희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길을 터줍니다. 지도자는 갈 바를 모른채 절망과 낙심가운데 있는 백성들에게 한 걸음씩 내딛도록 길을 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양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우는 사자에게 먹혀버리기 쉽습니다

죄를 짓고도 죄인줄 모르다 강단에서 들리는 말씀을 듣다가,혹은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책망하시면  그 즉시 십자가의 예수를 힘입어 아버지께 나아가 용서를 구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여호와를 따르고 마음을 다하여 그를 섬기는 길입니다.

 

아버지와 화목한 자의 길은 비록 삶은 고달플지라도 심령에 평강과 안식의 젖과 꿀이 흐르며 종내는  고난과 축복을 겸한 형통한 자가 됩니다. 허나 이 유일한 십자가의 길에서 돌아서면 죄 사함을 거절한 것이니 구원도 없는 것입니다

나아가 사무엘은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할 근원적인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구약에도 이런 복음이 있었다는게 새삼 놀랍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삼상12:22

 

아멘!아멘!아멘!

위의 말씀을 사무엘을 통해 특별히 들려주시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왕이신 여호와를 

버리고 사울과 함께 왕정 시대를 맞이 하고 있지만 왕을 구한 집단적 죄의식에 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출애굽시대나 사사시대나 동일하게 왕정시대에도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노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사랑 고백은 북이스라엘이 패망하여 열국으로 흩어져 헤어진 상태가운데서도 예레미야를 통해 다시 또 고백하십니다

 

"에브라임(북이스라엘)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창자가 들끓으니 내가 반드시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예레미야 31 : 20 

 

누가 이 사랑의 무게와 깊이를 함께 공유하며 살아갈 수 있을런지....

여호와께서는 결코 속으로만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말로도 엄청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제 마악 출발한 왕정시대의 모든 백성들이 여호와의 사랑 고백을 믿고 살면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삼상12:23~25

 

평생을 여호와와 동행한 사무엘의 그 기도와 말씀의 숨결이 사울을 나라의 첫번째 리더격인 왕으로 세웠다하여 사장되거나 어디로 가겠습니까? 생각에 이전보다 더욱 주를 사랑하며 주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연구하여 선하고 의로운 길를 터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 고백과 여호와와 백성 사이에서 중보하는 선지자가 있다해도 이스라엘이 노예근성을 굴러가게 하신 여호와를 믿고 자유 시민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거룩한 백성으로서 살지 않는다면 멸망할 것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