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역을 쳐서 망하게 하니"삼상5:6 

 

블레셋은 여호와의 궤를 전리품 취하듯 빼앗아 다곤 신 곁에 놓습니다

이에 여호와께서는 먼저 그들의 신인 다곤의 머리와 두 손목을 끊어 놓으신 그 다음 작전을 실행하시는 모습을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로 기록해 놓으십니다(삼상5:6)

홀로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과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일을 행하신 여호와의 손>을 기록한 말씀으로 보존하사 제게도 들려주시니 진실로 영광입니다.

 

말씀 묵상하노라면 태울 것 하나 없이 소진되어 온기가 식어 냉한 가슴 속으로 장작들이 

하나 둘 쌓여지고 그 위로 성령의 불이 타오르는 듯 다시 또 하루를 살 수 있는 활력이 

생기는 걸 늘상 경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습니다 이르시길 <일을 행하는

여호와>,<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리라" 렘33:1~3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에 갇혀 있을 때 여호와의 전에서 머물던 사무엘은 비록 여호와의 궤는 없으나 

이전 보다 더 강력한 여호와의 임재속에 날마다 여호와의 뜻대로, 마음대로 행하시길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불임녀 한나에게 사무엘을 허락한 목적이 사무엘을 통하여 그분의 뜻대로,그분의 마음대로 

일을 지어 행하시기를 열망하셨기 때문입니다. 

 

팬데믹 코로나 현상속에서 무슨 기도를 하십니까? 기도 쉬는 것이 곧 여호와께 범죄하는 것임을 깨달은 

사무엘처럼 종내는 자기 백성으로 돌아 오시는 여호와의 영광을 기대하며 부르짖습니까?

이 팬데믹 코로나 현상 속에 교회와 성도들은  갇힌 것 같으나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블레셋과 같은 세상 곳곳을 

다니시며 당신의 뜻대로,당신의 마음대로 맘껏 일을 지어 다 행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여호와의 손이 엄중히 더하신 결과 독한 종기와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역을 쳐서 망하게 하십니다.

 

"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하게 할지라 그의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찌하랴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가드로 옮겨가라 하므로 이스라엘 신의 궤를 옮겨 갔더니 그것을

옮겨 간 후에 여호와의 손이 심히 큰 환란을 그 성읍에 더하사 성읍 사람들의 작은 자와 큰 자를 다 쳐서 독한 종기가

나게 하신지라 " 삼상5:7~9

 

인간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이니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는 여호와의 궤란 성물 하나만으로도 

아스돗과 그 지역과 가드 성읍의 작은 자,큰 자를 다 독한 종기로 치십니다.(전에는 우리도 다 그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더니<엡2:3>)

이로써 불순종한 인간들이 얼마나 여호와의 진노로 인한 저주의 대상인가를 유감없이 보여준 셈입니다.

세상 나라가 어찌 여호와의 궤를 감당하리요?

 

"이에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에그론으로 보내니라 하나님의 궤가 에그론에 이른즉 에그론 사람이 부르짖어 이르되 

그들이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 하고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그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이 죽임 

당함을 면하게 하자 하니 이는 온 성읍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한 종기로 치심을 당해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삼상5:10~12

 

이제 불레셋의 에그론에 여호와의 궤가 이릅니다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은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가 신뢰할 정도로 

소위 영발있다 하는 귀신입니다.(열하1:2) 그럼에도 여호와의 엄중한 손에는 무력하기 그지없어 사망의 환란을 

당합니다.그나마 살아 남은 자들에겐 독한 종기로 치시니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다 합니다.

저들의 사무침은 어찌하면 여호와의 궤와 화목할 수 있는 길이 있을까?가 아닙니다.

어찌하면 여호와의 궤를 있던 곳으로 돌려 보내 죽임 당함을 면할까?입니다 

교회만큼 여호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사모하는 공동체는 없을 것입니다 

교회가 여호와의 궤,곧 만군의 여호와의 통치를 받기 원한다면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를 쳐서 말씀 앞에 복종시켜 온전한 예배자로 똑바로 서기 위한 순종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세상 나라 블레셋에게 어떤 식으로 통치의 영광을 나타내셨는가? 

단연코 심판으로 여호와 통치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이는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보시고 죽음이라는 심판을 너머 가사 구원으로 영광을 보이신 이스라엘과는 

전혀 다른 방식입니다.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것을 <은혜의 영광>이라고 증거합니다. 

또한 그는 속죄소로서의 십자가 복음을 증거하려면 은혜의 향기로운 냄새와 지독한 

사망의 냄새를 다 감당해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예수)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1:5~6

 

누구라서 언약궤의 통치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할수록 그것은 인간 편에 있지 않고 

통치자 여호와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피조물된 자리에서 그를 즐거워하며 사는 자세인 것입니다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있은지 일곱 달이라 블레셋 사람들이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을 불러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의 궤를 어떻해 할까 그것을 어떻해 그 있던 곳으로 보낼 것인지 우리에게 가르치라"삼상6:1~2

 

저들의 회의 결과 거저 보내면 안되니 블레셋 사람의 방백 수효대로 금 독종 다섯과 금 쥐 다섯마리를 속건제로 

드리면 병도 낫고 그의 손을 너희에게서 옮기지 아니한 이유도 알리라고 합니다.(삼상6:3)

 

"누구든지 여호와의 성물에 대하여 부지 중에 범죄하였으면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되 (레5:15)"

 

어떻해 블레셋이 속건제를 알았을까?의 의혹보담은 제사장과 복술가라는 신분상 이스라엘의 신과 

율법에 관한 지식과 정보에 관심 두고 배웠거나 풍문에라도 들었을 확률이 더 높습니다 

애굽인과 바로가 마음을 완악하게 한 것 같이 어찌하여 너희도 그러겠느냐? 여호와께서 애굽 중에서 

재앙을 내린 후에 그들이 백성을 가게 하므로 백성이 떠나지 아니하였느냐? 라고 가르칩니다 

블레셋 제사장들과 복술인들이 말하는 것을 다 듣고 계신 여호와의 기분이 어떠하셨을까? 저는 솔직히 신의 법궤를 

놓고 이스라엘의 율법과 역사를 통해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지혜를 짜내는 저들에게서 감동을 받습니다.

속건제를 드려 이스라엘의 신께 영광 돌리라(삼상6:5b)는 말과 바로처럼 마음을 완고하지 말라는 말이 그렇습니다 

이에 새수레 하나 만들어 멍에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마리를 끌어다가 멍에를 메우고 

함께 딸려 왔던 송아지들은 돌려 보냅니다.(삼상6:7)

 

소의 특성상 낯선 지역 가기를 꺼려합니다. 새끼 송아지를 딸려 보내도 되는데 부러 떼내고 또한 멍에를 메어 본 

적이 있는 소대신 전혀 멍에를 멘 본 적이 없기에 멍에를 거부하도록,더구나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거부하지 

않을까? 라며 꼼수에 꼼수를 더하는 이들의 본성은 무슨 핑계를 써서라도 하나님을 믿지 않으려합니다

저희들의 완고한 본성을 폭로시키는 것입니다. 사실 여호와께서는 얼마든지 사람의 도움 없이도 당신 

스스로 여호와의 궤를 이스라엘로 돌아오도록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허나 이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죄된 본성을 드러내사 우리로 회개하도록 도우십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궤와 그곁에 속건제인 금으로 만든 것들을 담은 상자를 놓고 그 본 지역 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게 합니다.(삼상6:8) 벧세메스 지역엔 여호와의 궤를 운반하던 레위지파(고핫 자손)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벧세메스와 기얏여아림은 블레셋과 가깝고 그들의 영향력이 미치는 지역입니다.

만일 소들이 가면 여호와께서 재앙을 내린 걸로 알고 안그러면 우연이라고 여기겠다는 것입니다.(삼상6:9).

이제껏 당하고도 끝까지 여호와를 인정치 못하고 시험하려는 마음엔 <우연>이 살짝 살짝, 

그러나 사라질만하면 또다시 치고 들어 옵니다.정직히 말하자면 재앙의 근본적인 원인은  

여호와가 아닙니다.우리가 여호와께 불순종한 것으로 인한 당연한 결론입니다.

그럼에도 우연이라며 가벼히 넘기려 하며 있지도 않은 믿음이 있는 양 하나님의 손이 내린다 

하니 불신의 패역함이야말로 바닥 없는 끝모를 무저갱이 아닌가 합니다. 

문득 전 세계를 덮고 있는 코로나를 우연으로 여길 자들도 있다 싶고 믿음이 있노라며 여호와의 손이 

코로나로 우리를 치셨다고 고백하는 이들도 있겠다 싶습니다. 허나 우리의 탐욕과 죄악으로 온 것입니다.

이런 근원적인 자각 없이는 여호와를 믿어도 자유한 사랑의 영으로 믿을 수 없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블레셋이 하는 모든 언행심사를 아시고 저들에게도 당신을 계시해주십니다.

곧 온 세상 만물을 순복케 할 수 있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젖 먹이는 암소 두 마리를 통해 보여주십니다.

근데 왜 인간들은 그렇게 다루시지 않을까요? 당신의 가장 고귀한 형상인 자유의 형상을 사람에게만 주셨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선 억지로 당신을 섬기라,당신을 사랑해 달라고 강요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다만 인간이 범죄함으로 사단의 손 안에 잡혀 사는게 불쌍하여 항상 팔 

벌리고 기다리고 계시다는걸 복음 곧 십자가의 예수를 통해 항상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눈을 들어 궤를 보고 그 본 것을 기뻐하더니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암소들을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리고 

레위인은 여호와의 궤와 그 궤와 함께 있는 금 보물 담긴 상자를 내려다가 큰 돌 위에 두매 그 날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니라 블레셋 다섯 방백이 이것을 보고 그 날에 에그론으로 돌아 갔더라"

삼상6:13~16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서자 블레셋 방백들은  자기들에게 임한 재앙이 

우연이 아닌 여호와의 손이 하셨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블레셋이 여호와의 궤를 실어 보낸 수레의 나무를 

패고 두마리 암소를 번제물로 드립니다. 본디 숫소로 드려야하건만 여호와께 쓰임 받은 성물은 세속적인 목적으로 

쓸 수 없다는 지식아래 드린 것 같습니다. 밀 베는 좋은 시기에 여호와의 궤가 돌아 왔으니 얼마나 기뻤을까요?

허나 이들의 기쁨은 거룩한 기쁨으로 성화되지 못하고 가볍고 망령된 행위를 낳습니다 

레위인들이 있었음에도 어찌된 영문인지 여호와의 법궤를 들여 다 봄으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치사 (오만)칠십 명을 

죽이십니다.(삼상6:19) 율법에 의하면 일 년에 단 한번 대제사장만이 분향단의 향이 지성소 가득 메울 때 속죄의 

피를 시은좌 (여호와의 법궤)에 뿌린 후 뵈옵는 것입니다

 

이로써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여호와를 사랑하므로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