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하나의 꽃

                                                                       글/ 조정근(신부, 금산자활후견기관 관장)



제가 근무하는 이곳 기관에서는 저소득층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다양한 자활사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 중 금산군 추부면에 비닐하우스 세 동을 빌려 운영하고 있는 영농사업단이 있습니다.
이 곳 비닐하우스에는 지난번에 심어놓은 깻잎이 어느새 예쁜 새순을 틔우고 있었습니다. 하우스 꼭대기에 달린 스프링쿨러에서는 시원한 물이 식물들을 촉촉이 적셔주고 있었지요. 마치 갓 태어난 어린아이들을 정성껏 씻겨주는 것처럼 말이지요. 깻잎들이 잘 크라고 잔잔한 클래식음악도 틀어주고 있었습니다. 깻잎들도 음악을 아주 좋아합니다. 클래식이나 성가를 틀어주면 병충해에 걸리지 않고 무럭무럭 잘 자라납니다.
함께 일하시는 참여자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깻잎들이 아기처럼 귀엽지 않으세요?”
“예. 맞아요. 얘들도 음악을 좋아하고요. 자기들 사랑해주는 것도 다 알아요.”
“그럼요. 요즘 식물도 다 의식이 있다고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있잖아요.”
“맞아요! 관장님.”
“이렇게 어머니께서 식물을 자식처럼 사랑하시니까 무럭무럭 잘 자라나는 거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요즘 관장님께서 아침마다 좋은 말씀도 들려주시고 또 체조도 함께 해주시니까 너무 좋아요. 요즘 그러잖아도 웰빙시대라고 하는데 우리 관장님은 웰빙 관장님이세요. 호호!”
사랑스런 식물들과 함께 하루 종일 생활하시는 참여자 분들의 얼굴은 참 맑고 곱습니다. 늘 땅과 하늘을 마주하고 살면서 좋은 에너지를 받기 때문일 것입니다. 땅과 하늘은 끊임없이 뭇 존재들에게 생명의 기운을 전해주는 이타적 삶의 모델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존재 그 자체로 우리들을 가르치는 넉넉한 스승이십니다.
자활은 결코 물질적인 궁핍에서부터만 해방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족하더라도 정신적 영적인 어둠에서부터 해방되지 않으면 참 행복을 누리기 힘들겠지요. 짧은 시간이지만 저희 기관에서는 매일 아침마다 오분정도 마음 다스리기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약간의 명상의 시간도 갖고요. 오늘 하루 내게 주어진 삶, 주위 분들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를 느끼도록 합니다. 그리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몸의 모든 긴장된 부분을 천천히 풀어주는 체조도 합니다. 하늘의 품에 모든 걸 맡긴 상태에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두드려주고 주물러주고 쓰다듬어 준답니다. 수련모임에서 배운 걸 톡톡히 써먹고 있지요. 그 때 배워놓기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미래에 이렇게 쓸 일이 있을 걸 아시고 하늘이 미리 저를 훈련시키셨나 봅니다.
우리 참여자 분들은 현실적 삶에 어려움도 있습니다. 이곳 기관에서 더불어 함께 일하면서 어두웠던 얼굴이 서서히 밝은 미소로 바뀌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참여자 분들로부터 제가 더 많은 것을 배운답니다. 그분들은 저에게 있어서 삶에 대해 많은 깨우침을 주는 또 다른 스승님들이십니다.
일전에 아침 시간에 말씀을 전하면서 이런 퀴즈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어느 어머니가 아주 지혜롭게 잘 대답을 해주시더군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은 어디일까요?”
“예, 우리가 있는 ‘지금 여기’입니다.”
“와! 너무 잘 맞추셨어요. 어머님이야말로 깨달으신 분입니다. 하하! 그럼 다음 질문 드릴께요.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음.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이요.”
“맞습니다. 다같이 박수 부탁드려요.”
그렇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펼쳐지는 이 놀라운 생명의 신비를 가만히 관찰해보면,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받아 누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흘러간 과거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고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염려하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간다면 미래의 행복은 서서히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과거에 깨달음이란 이 물질세계를 벗어나서 더 높은 고차원의 영적 세계로 귀환하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모두 깨달은 사람들이었는데 진정한 사랑과 더불어 이웃과 조화롭게 사는 삶을 온 몸으로 배우기 위해 일부러 이 물질 세상에 태어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살아온 배경도 다르고 가정환경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른 우리 참여자 분들! 하지만 이 모든 분들이 다 하늘의 귀중한 계획 아래 이 땅에 사시는 예쁜 꽃들 같습니다. 온실 정원에 빨갛게 핀 장미꽃만이 예쁜 꽃이 아닙니다. 들판에서 온갖 비바람과 마주하며 살아온 들꽃의 조화와 아름다움도 결코 장미꽃의 아름다움에 빠지지 않습니다. 비록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우리 모든 이들은 작지만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의 꽃을 피움으로 이 우주의 살림살이에 중요한 한 몫을 담당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 모두가 꽃입니다.

알아주는 이 없고

기다리는 이 없지만

때가 되면 꽃은 피어

우주를 향기로 채웁니다.

가만히 뒤돌아보면

세상 모두가 꽃입니다.

우리 모두가 저마다

하나의 꽃입니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3-27 1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