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로   바라보기, 관명상을 소개해봅니다. (퍼왔습니다)


1. 바라보기, 관명상

  명상은 마음을 비우되 집중하여 바라보는 것입니다.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까요?
명상의 대상은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면 어떤 것이든 좋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별 의식없이 바라보던 것과는 다르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고요한 가운데 편안한 상태로 마음을 집중하여 바라보는 방법입니다.

  나는 어느 날 수많은 서류와 책 사이에서 씨름을 하다가 버려진 종이 한 장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종이를 바라보다가 손가락 사이에 넣고 비벼 보았습니다. 늘 만지던 종이였지만 전혀 다른 촉감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문득 종이는 뭘로 만들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종이는 펄프로 만들고, 펄프는 나무로 만듭니다. 나무는 주로 물과 공기와 빛을 양분으로 하여 자라지만, 온갖 동식물이 죽어서 썩은 비료의 성분도 양분으로 섭취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도 죽은 동식물의 한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눈앞에 놓여있는 이 종이 한장에도 이름 모를 어떤 사람의 흔적이 배어 있을 것입니다. 나도 언젠가는 죽어 자연으로 돌아가서 다른 동식물의 한 부분으로 흔적을 남겨, 먼 훗날의 이름 모를 어떤 사람 앞에 어떤 형태로든 모습을 드러내겠지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종이를 한참 바라보고 있노라니 종이와 어떤 교감이 생기고 친근감이 느껴졌습니다.

  명상에서 가장 핵심적 요소인 호흡을 바라볼 때도 호흡 자체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변화하는 공기의 흐름을 바라보면 마음이 집중되고  어떤 깨달음이 옵니다.

  호흡을 하면 공기가 몸 안에 들어오고 몸 안에 들어온 공기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방 안의 공기가 이동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공기 이동의 흐름을 바라보십시오.

   숨을 내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숨을 내쉴 때 내쉬는 공기의 파장이 온 방 안에 가득 퍼져나갈 것입니다. 그것을 바라보십시오. 공기의 흐름의 변화를 그려 보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호흡은 점점 더 길어지고 가늘어 집니다.

  호흡을 이런 식으로 바라보면 고도의 정신집중이 일어나고 영성이 각성되어 어떤 새로운 느낌과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바라본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동양의 관 명상이나 기독교의 관상 기도는 근본 원리는 같은 것입니다. 종교인이나 수행자는 형이상학적인 인생의 근본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삶은 무엇이며 죽음은 또 무엇인가, 우주적 절대자는 과연 존재하는가, 만약 존재한다면 나와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등에 관심을 가지고 바라봅니다. 그렇게 바라보면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어떤 새로운 느낌과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인간의 심리와 행동에 관한 과학적 지식이 많이 발달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문제에 대해 꼭 형이상학적인 관점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왜 조그만 일에도 화를 잘 내는가, 왜 그렇게 불안한가, 왜 인간관계에 번번이 실패하는가, 나의 성격은 왜 이런가 등의 문제를 심리와 행동과학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상담가나 심리치료사는 특히 이렇게 바라보는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차를 마시면서 차를 바라보고, 꽃을 꽂으면서 꽃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단지 차를 마시고 꽃을 꽂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행하는 대상인 차와 꽃과 하나가 되는 경지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 경지에 다다르면 자아의식이 사라지는데, 이러한 상태를 분별심이 사라진 상태라고 합니다. 이러한 상태에선 주체와 대상을 구별하는 마음이 작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물을 판단하고 분석하고 개념화하는 이성의 작용이 멈추게 됩니다.

  그러니까 관 명상에서는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소위 우리가 말하는 일반적인 지성으로 분석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초월적인 지성으로 바라보고 직관으로 그 존재를 깨닫는 것입니다.

  신이라고 부르는 지고한 존재를 느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에 대한 이론이나 교리는 우리의 지성으로 판단하고 분석할 수 있지만, 신의 존재 자체는 우리의 지성으로 분석하여 느낄 수 없습니다.

  다만 바라봄으로써 직관으로 지고한 존재를 깨닫고 내 안에 그의 현존을 가득히 느끼는 것입니다.

  이제 들숨과 날숨을 바라보면서 침묵을 지키십시오. 그리고 우주의 근본적 의식이라고 할 수있는 지고한 존재를 바라보십시오.

  무엇이 보입니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보일 때까지 몇 시간이고 몇날이고 침묵 가운데서 바라보십시오.

  어떤 느낌이 듭니까?

  우리는 우주의 근본적 의식이라고 하는 지고한 존재를 신이라고 부르는데, 신은 형태가 없으니 신을 바라본다는 것은 사실 텅 빈 어떤 공백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루하고 분심이 들어 침묵 가운데서 계속 신을 바라보기란 사실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특히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나 빠른 성과를 중시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신뢰하면서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 지고한 존재를 바라보면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강렬하게 비치는 빛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빛은 생명의 뿌리입니다. 모든 생명이 그 빛에서 나오고 또 모든 생명이 그 빛으로 돌아갑니다.

  이제 그 빛을 계속 바라보십시오. 어떤 느낌이 듭니까?

  그 빛은 생명과 동시에 자비와 사랑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계속 그 빛을 바라보면 우리가 그 빛의 신비 속에 존재하며 그 빛 또한 우리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관상은 또한 우리를 깨달음으로 인도해 가기도 합니다. 한참을 바라보면, 우리의 지성이 초월적인 지성과 함께 기능하여 어떤 지혜의 깨달음을 가져다줍니다.

  바라보면 이전에 의식하지 못했던 새로운 느낌과 깨달음을 얻을 뿐만 아니라 바라보는 대상과 자아가 하나가 되는 초월 경험도 할 수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라보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