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잊어 버렸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며 피정을 했습니다. 피정을 떠나기 전날 짐을 추리며 감리교 목회자이신 이 현주 목사님의 책을 챙겼습니다. 혼자만을 위한 시간에 틈틈이 읽으려고 가방에 함께 넣었는데 피정이 끝나기도 전에 그 책을 다 읽어 버렸습니다.

한 장, 한 장 읽을 때마다 저도 모르게 제 입에서는 “맞아, 맞아, 나도 그런데... 참... 사람들 다 똑같은 가봐.”하는 탄성들이 터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게 가장 큰 묵상거리를 안겨준 부분이 있어 옮겨 볼까합니다.


목사님께서 시골 교회에서 목회 중에 생긴 일이었는데 어느 날 밤 남루한 노인이 목사관을 찾아 왔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시간도 늦고, 귀찮기도 하고 해서 냉담한 반응으로 그 노인을 그냥 돌려보냈답니다. 그러곤 목사관으로 돌아와 책상에 앉았는데 갑자기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답니다.

“미소한 형제에게 베푼 것이 곳 나에게 한 것이니라...” 이 말씀이 떠오르는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고 합니다.

“하느님 말씀을 전파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목사가 되었는데, 만약 그 노인이 예수님이었다면...”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목사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 즉시 예배당에 들어가 가슴을 치며 속죄의 기도를 드렸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는데도 그날 밤 자신을 생각하면 죄스러운 마음이 들어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며 통회의 기도를 바쳤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예배당에서 가슴을 치며 통회의 기도를 드리는데 마음 속에 예수님의 말씀이 들려 왔답니다.

“이제 그만 좀 해라. 지겹다. 난 벌써 너의 잘못을 용서하고 다 잊어 버렸는데 넌 왜 그렇게 자신을 학대하고 있느냐? 내가 너처럼 그렇게 옹졸한 줄 아느냐? 네가 눈물을 흘리며 통회의 기도를 올리던 그날 밤, 난 너의 잘못을 다 용서했다.”

이 말씀이 가슴에 다가오자 목사님은 또 다시 뒤통수를 크게 한대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고 합니다.

저도 이 부분을 읽는 순간 무언가 멍한 느낌으로 한참을 그 말씀에 머물러 있어야 했습니다.

“나는 벌써 너의 잘못을 용서하고 다 잊어 버렸는데……”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새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저 입으로 되뇌는 사랑이 아니라 가슴 저 깊은 곳을 울리는 그런 말씀이었습니다.

“나는 벌써 너의 잘못을 용서했다. 다 잊어 버렸다.”

그날 밤 저는 감실 앞에 오랜 시간 머무르며 그분께 말했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다 잊어 버려 주셔서……"

이 살레시오 수사·아우구스띠노 수도회 강화수도원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5-19 1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