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안의 자물쇠를 열고

몇 년 전 제주도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이국의 정취가 느껴지는 그 곳에서 많은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三多三無라는 말이었다.
제주도에는 특히 도둑이 없고, 거지가 없고, 대문이 없다는 뜻으로
三無라는 말을 쓴다는 것이다.

옛날 제주도의 농어촌에 가보면
대문이 없고 방문도 열어 젖혀 놓은 채
들이나 바다에 나가 온종일 일을 한다.

그 동안 집을 지켜주는 것이 있다면
정낭과 정주목이란 목봉과 구멍 뚫린 나무기둥뿐이다.
집 입구의 양쪽에 구멍을 뚫은 돌이나 나무(정주석, 정주목)를 세우고
나무를 가로로 걸쳐놓는 것인데
정낭 하나를 걸쳐 놓은 것은
집주인이 잠시 집을 비우는 동안
방목하는 소나 말이 집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고,
정낭 2개를 걸쳐 놓은 것은
주인이 밭이나 이웃 마을에 잠시 갔지만 아이들이 근처에 있다는 표시이다.
또 정낭 3개를 가로질러 걸쳐 놓은 것은
집 주인이 멀리 가고 며칠이 지나서야 돌아온다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정낭을 걸쳐 놓으면 주인이 없는 줄로 알고
이웃에서 집을 돌보아 주기도 하였다고 한다.

듣기만 하여도 그 시대의 인심이
얼마나 후하고 소박한 삶이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보통 현관문에는 몇 개씩이나 되는
자물쇠와 보조키까지 달아 놓는 것이 보통이다.
게다가 요즘은 번호 키와 지문 감식까지 되는 자물쇠도 모자라
전자 경비업체에 맡기는 집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모든 것들이 너무도 익숙해져서
오히려 외출을 하고도
문을 잠그고 나왔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 걱정을 해본 경험,
혹은 열쇠를 집안에 두고 나와
자기 집임에도 불구하고 들어가지 못해 애를 먹었던 경험들이 몇 번씩은 있다.

만일 그 옛날 집을 비우고도 마음 편히 외출을 하던 옛 사람들이
우리들의 이러한 모습을 본다면
너무나도 한심하다는 생각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많은 신앙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물쇠와 보조키를 꼭꼭 걸어놓은 것이 현관문만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너무도 많은 자물쇠를 걸어 놓고 살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 접근하는 것이 두려워
수없이 만들어낸 우리 마음 안의 자물쇠 때문에
이제는 우리의 마음이 숨을 쉴 수조차 없게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혹은 하느님께서 바로 내 앞에 와 계심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닫힌 마음으로
그분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마저 먼 것은 아닌지
우리 자신을 되짚어 보아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수없이 많은 재물을 맡겨놓으셨다.
그 재물은 우리 각자가 은총이라는 형태로
하느님께 받은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이 모든 것들을
마음속에 가만히 쌓아놓고 살아서는 안 된다.
또한 나만을 위해서 사용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 걸어놓았던 자물쇠를 열고
우리 마음 안에 가득히 쌓여있는 하느님의 재물을
그분 뜻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그 재물은 나만을 위한,
내 가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모두를 위한 재물인 것이며
결국 모든 것을 다시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하는 것이다.

최경일(빈첸시오) 신부 / 상1동 성당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5-19 1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