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이 돋으면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그들에게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그것을 보고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루카 21,29-­33)


◆어느 봄날,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왔을 때 침엽수 세 그루와 이름 모를 활엽수 한 그루만이 덩그렇게 앞마당을 지키고 있었다.
뒷마당의 잔디는 관리를 하지 않아서 가을 잔디처럼 누런 빛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창 밖을 바라보던 남편은 거의 신음에 가까운 소리로 “저 옆집 잔디 좀 봐. 정말 파랗네. 아무래도 안 되겠다” 하더니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기 시작했다.
비료를 사다 뿌리고 잔디가 패어 나간 곳에는 씨를 심었다.
1주일쯤 지났을까? 잔디들이 파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젠 앞마당의 활엽수도 제법 그늘을 드리워서 화분 분갈이를 하거나 꽃모종을 할 때 도움이 된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무화과는 말 그대로 하면 꽃이 없는 나무지만 꽃이 가려져 있을 뿐이지 사실 인류가 재배해 온 가장 오래된 과일나무 중 하나라고 한다.
아담과 하와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난 후에 자신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는데 그때 사용한 것이 무화과나무 잎이었다(창세 3,7).
나무에 잎이 돋으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기도와 봉사의 잎으로 무성해지면 우리의 믿음도 여름처럼 뜨거워질까?

이곳 캘거리는 유난히 겨울이 길다.
기나긴 겨울을 보낸 탓일까? 봄이 오면 집집마다 정원을 손질하는 손길이 무척 바쁘다.
동네마다 가장 예쁘게 꾸민 정원을 뽑아서 상을 주는 행사도 있다.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그 집 주인이 얼마나 꽃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우리가 주변에 일어나는 일을 보면서 사계절을 느끼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 상태를 보면서 신앙을 점검할 수 있다면 참으로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나무에 물을 주듯이 기도생활을 좀더 열심히 해야지. 주위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더 많이 방문해야지’ 결심은 하지만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

어제는 작은아이의 고등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한국 친구들끼리 모여 꽃다발을 주고받으며 사진을 찍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날 딸아이와 가장 친한 친구, 그리고 그 아이의 엄마가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이 내 마음에 찍혀 눈물짓게 했다.
그 친구의 엄마는 한국에서 이민 올 때 근육암 수술을 받았는데 5년을 넘기지 못하고 암이 재발했다.

앙상하게 마른 손과 발, 힘없이 웃으며 서 있던 모습! 야채전을 좋아하는 그 자매를 다시 찾아가 봐야겠다.

신금재(캐나다 캘거리 성 안나 한인 천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