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멈출 수 없었던 사랑의 길
마더 데레사를 말할 때 흔히 몽당연필에 비유한다.
연필은 자신이 무엇을 쓰고 싶다고 해서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누군가의 손에 의해 쓰여 질 뿐이다.
닳고 닳도록 그저 자신을 내 놓을 때 멋진 그림이 그려지기도 하고
아름다운 글이 써지기도 한다.
절대적인 타자에 의해서만 존재한다.

그래서 ‘몽당연필’은 하느님 손안에 온전히 자신을 봉헌하며
사랑의 삶을 살았던 데레사 수녀에게 붙여진 애칭이다.

고정욱님이 쓴 어린이 위인전 「몽당연필이 된 마더 데레사」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한 그분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책을 읽은 시기와 맞물려 ‘마더 데레사’란 전기영화를 봤다.
‘로미오 와 줄리엣’에서 모든 이의 연인이었던
‘올리비아 핫세’가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 ‘마더 데레사’의 모습으로 돌아왔다던 영화였다.
책을 영상으로 옮긴 진솔하고 담백한 영화였다.

교회 역사상 ‘메리 워드’ 이후 300년 만에 비슷한 성소의 길을 걷게 된 마더 데레사,
그녀는 하느님의 뜻을 찾아 ‘로레토 성모수녀회’ 를 떠나
식별 끝에 ‘사랑의 선교회’를 설립했다.
이를 두고 교회는 ‘부르심 속의 부르심’이라 했다.

하느님 손 안의 몽당연필로 쓰여 지길 원했던 그녀의 삶은
‘끝내 멈출 수 없었던 사랑의 길’이었다.

인도의 빈민가에 뛰어들 어 가난한 사람들의 임종을 돕고,
굶주린 이들과 병들어 신음하는 이들을 평생 온몸으로 껴안았다.

그래서 일까. 책을 읽은 후에도, 영화가 끝난 뒤에도 잔잔한 감동과 울림을 준다.

그녀는 말한다. “사람들은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그래도 사랑하라.
당신이 선한 일을 하면 이기적인 동기에서 하는 것이라고 비난받을 것이다.
그래도 좋은 일을 하라…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도와주면 공격할지 모른다.
그래도 도와줘라.”
이것이 세상을 거슬러 사랑한 그분의 사랑법이다.

마더 데레사는 우리에게 이렇게 부탁한다.
“여러분의 눈과 가슴에 기쁨을 담아라.”
그분의 말씀은 먼저 사셨기에 힘이 있다.
삶의 표양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 어떤 훌륭한 말도 메아리에 불과하다.
누가 그를 추종하며, 누가 사랑을 살겠다고 전세계에서 인도로 모여들겠는가.

내가 속한 수도회에서 인도 현지 촬영으로 마더 데레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어 공영방송에 내 보낸 적이 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성당 마루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기도하는 수녀님의 모습이다.

기도는 하늘을 감동시킨다고 했던가 굽은 등,
뭉떵하게 닳은 손과 발이 클로즈업 되었을 때 가슴이 뭉클했다.
아니 뛰었다.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그분처럼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마더 데레사는 시상식 만찬회 경비까지 ‘애긍’을 청해 가난한 사람들의 몫으로 돌렸다.

「인도의 마더 데레사」를 비롯하여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 마더 데레사」,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작은 몸짓으로 이 사랑을」, 등
교회 안팎에 관련 서적은 그분의 삶을 반향(反響) 한다.
살아서는 ‘살아있는 성녀’로 영성의 향기 높은 꽃밭을 일구었고,
죽어서는 시복시성 절차를 밟으려면 사후 5년 후라는 역사상 관례를 깨고
가장 짧은 기간(6년 만에)에 복자품에 오르신 분이다.

전기는 영성서와 달리 한 인간의 진면목을 보게 한다.
부모님의 교육이 마더 데레사의 마음을 어렸을 때부터 가난한 이들에게 열려 있게 했고,
봉사하는 삶으로 뛰어들게 했다.
우연히 가난한 이들을 만나 특별한 빛을 받아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이웃에 대한 사랑과 연민으로 출발한 것이다.
그분의 조건 없는 사랑이 가난한 이웃들의 닫힌 마음의 문을 열었다.
천향길 수녀http://www.paulin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