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산을 오르다 보면
계절이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촉촉이 물기를 머금었던 나뭇잎들도 조금씩 빛이 바래지고,
산새들의 울음소리도 예전같이 낭랑하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산자락을 타고 불어 오는 바람도 무척 시원합니다.
이제 한가위가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지
모든 것이 풍요롭게 느껴집니다.
어렸을 적,
한가위 날 저녁에 동네 친구들과 둥근달을 보면서
달에서 놀고 있는 토끼를 찾으려고
한참 동안 바라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는 정말 달에 토끼가 살고 있는 줄 알았으니까요.

   지난 여름에
저는 성당의 교우들과 함께 동해에 갔다가
바다 위로 두둥실 보름달이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 기억에 달이 뜨는 것을 본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둥그런 보름달이
바다 위로 떠오르는 것을 본 것은
서너 번밖에 되지 않기에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달이 뜰 때, 처음엔 붉은 감같은 색이었는데
조금씩 누런색으로 바뀌더군요.
달이 떠오르면서
바다 위로 영롱한 빛의 길을 만들어 주는데,
세상의 모든 번잡함을 떨쳐버리고
깨끗한 모습으로 길을 걸어가라는
가르침으로 보였습니다.

   일본의 유명한 선사 ‘이뀨’라는 분은
말년에 다음과 같은 선시를 남겼다고 합니다.
“평생에 둥근달을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
이뀨 선사의 말대로
우리는 평생을 살면서 둥근달을 과연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요?
이뀨 선사의 시가 떠올라
달을 바라보는 제 마음은 숙연해지기까지 하였습니다.
그 동안 무심코 바라보았던 달이
그 날 따라 제게 많은 이야기를 건네는 듯했습니다.


   그 동안, 늘 내 곁에 있기에
무심코 대했던 사람은 없으십니까?
그리 길지 않은 인생
사랑하면서 살아도 모자랄 터인데,
내 것만을 챙기려
다른 사람을 소홀히 대한 적은 없으십니까?
사랑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더 열심히 사랑하세요.
평생 몇 번이나 그 사람을 마주 대할 수 있겠습니까!
늘 내 곁에 남아 있을 것 같은 모든 것도
결국은 다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가 영원히 마주 대할 분은
오직 하느님 한 분 아니겠습니까?
그분께 희망을 두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이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김성만 안드레아 신부·남대문시장성당 주임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5-19 1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