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8일 한국방송공사 음악당에서는  
특별한 음악회가 열렸다.
수녀들과 불교의 비구니, 그리고 원불교의 정녀 등
120여명이 마련한  ‘북녘 어린이돕기
삼소(三笑)음악회’였다.
그들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의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서 어머니 같은  따뜻한 마음으로
음악회를  마련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그 가운데서도 스님과 정녀들이 수녀들과 함께
‘아베마 리아’(Ave Maria)를 합창하고,
손을 모으고 ‘예불가(禮佛歌)’를 부르는 모습 이 인상적이었다.
서로 종교가 다르다  하더라도 마음을 열면 아름답게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부처님 오신  다음날 저녁에 나는 산보를 겸해  
성북동에 있는 작은 절을 찾았다.  
경내의 큰 나무에는 수많은  연등이 걸려있었다.
마침 저녁 예불시간이어서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스님들과 불자들의 모습이
무척 경건해 보였다.
예불이 끝난 후 화단에 물을 주던 스님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즉석에서 초대를 받아 마주앉게 되었다.

   처음 만난 스님이셨지만  
작은 부분까지 섬세하게  마음을 써주시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미리 방문한다는 연락을 주셨다면
방에 꽃도 꽂고 더  잘 준비하였을 텐데,
갑작스런 만남이라 소홀함을 이해해 달라고 하였다.
차와 함께 담소를 나누던 중
스님은 천으로 가려진 벽장 안에서 작은 그릇을 꺼내셨는데,
그 안에는 물이 담겨있었고
물위에 순백의 난꽃 두 송이가 떠있었다.

   스님께서는
전날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후
길  위에 떨어진 꽃을 주워
방으로 가져왔다며 말을 이었다.
“나무나 풀들이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
얼마나 힘들게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지를  생각하면,
땅에 떨어진 꽃들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비록 떨어진 꽃이지만  
그릇 안에서나마 생명이 다할  때까지
피어있기를 바라면서 담아놓았지요,
가까이 보세요.
꽃들이 얼마나 예쁘고 싱싱 하게 피어있는지를,
자세히 보시면 꽃잎이 만든 그림자도 볼 수 있답니다….”

   그릇 안에 있는 꽃들이
마치 둥근 연못에 피어있는 연꽃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스님께서는 또 작은 초에 불을 밝혀
물위에 띄우시면서
방의 전깃불을 끄셨다.
우리는 촛불과 꽃잎들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말없이 마주앉아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무척 많은 마음의 대화를 나눈 것 같았고,
텅빈 방이었지만
모든 것으로 충만한 듯하였다.

   거울처럼 맑게 보이는 스님 앞에서
잠시나마 내 자신을 비추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스님은 특별히 그레고리오  성가를 좋아한다며 틀어주셨는데,
산사(山寺)에서 듣는 성가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그윽한 분위기에  취해서,
거룩한 성가에 취해서 밤늦게까지 머물다 산사를 나오는데
나무에 걸린 연등들
이 밤하늘의 별처럼 영롱하게 보였다.

  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홍보담당)


평화신문 기자   pbc@pbc.co.kr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5-19 1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