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계의 한 대가가 오랜 연마 끝에
유단자 자격을 갖춘 제자에게 신중한 어조로 한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질문이다. 검은 띠를 받는 참 뜻이 무엇이냐?"
너무도 쉬운 질문에 자신만만해진 제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검은 띠는 긴 수련의 끝을 의미합니다.
제가 그동안 연마한 모든 노력의 대가로 얻는 보상입니다."

스승은 제자의 답변에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아직 검은 띠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1년 후에 다시 오너라."

실망한 제자는 1년 동안 더욱 열심히 수련을 쌓은 뒤,
다시 스승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스승은 이번에도 작년과 똑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검은 띠를 받는 참 뜻이 무엇이냐?"
한결 성숙해진 제자는 작년보다 훨씬 자신있게 대답했습니다.
"검은 띠는 수련 과정에서 기량의 진보를 공적으로 인정하는 표시입니다."

그러나 스승은 이번에도 작년과 똑같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너는 아직도 검은 띠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1년 후에 다시 오너라."

한동안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심각하게 고민하던 제자가
이번에는 인격 수양에 집중적으로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일년이 지난 후 다시 스승 앞에 섰습니다.
스승은 똑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검은 띠를 받는 참 뜻이 무엇이냐?"
제자는 아주 조심스럽고 겸손한 태도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검은 띠를 받는다는 것은 시작을 의미합니다.
더 큰 깨달음을 향한 여정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그 대답에 아주 흡족해진 스승은 드디어
"너는 이제 검은 띠를 받을 준비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홍병식, 룗성공할수록 겸손해지는 미덕룘 참조).

사막을 횡단하는 낙타는
아침마다 묵묵히 주인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주인이 얹어주는 짐을 자신의 등에 짊어집니다.
하루 일과가 끝나는 저녁 시간이 오면
낙타는 또 다시 주인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등에 있는 짐이 내려지길 조용히 기다립니다.

언제나 주인 앞에 고분고분 무릎을 꿇는
낙타 모습에서 참된 겸손이 무엇인지를 배웁니다.
매 순간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주인 앞에 말없이 무릎 꿇는 모습,
매일 자신의 의무를 기꺼이 행하는 모습,
주인이 매일 얹어주는 짐을
아무 불평 없이 지고 가는 모습에서
진정한 겸손이 무엇인지를 깨닫습니다.

낙타는 자신이 지고 가는 짐으로 인해 의미가 있습니다.
낙타에게 짐은 무거우나 짐으로 인해
낙타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발휘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고통과 십자가는 언제나 부담스러운 그 무엇이나
그 고통과 십자가로 인해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리스도인들은 고통과 십자가로 인해
더욱 겸손해지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에서 강조하는 진리는 생각할수록 역설적입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가장 강하다고 생각할 때
사실 우리는 가장 약합니다.
반대로 우리가 가장 약하다고 생각할 때,
그래서 우리 자신을 최대한 낮추는 그 순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시고
그로 인해 우리는 가장 강해지는 것입니다.

겸손은 약자이기에, 또는 무지하기에
뒤로 물러서는 나약함이나 비굴함이 결코 아닙니다.

겸손은 무엇보다도 자신을 버리는 일입니다.
자신의 자리를 내어놓는 일입니다.
자신을 떠나는 일입니다.
한 걸음 물러서는 일입니다.
그리고 내어놓은 그 자리를 하느님을 위한 공간으로 남겨두는 일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언제나 밑으로 밑으로 한없이 내려만 갑니다.
계속 밑으로 내려가다 보면
심연의 밑바닥 거기에 하느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조은일 기자   anniejo@pbc.co.kr  (평화신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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