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

지난 월요일, 교구 선배신부님과 둘이 산에 갔다 왔습니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두 시간 넘게 산행을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선배신부님은 제가 산에 가는 게 대견한지
산행을 끝내고는 곧장 등산용품 파는 곳으로 데리고 가시더니
등산화, 양말, 옷, 물통 등을 한 아름 챙겨주셨습니다.
저는 부담이 되어 사양하면서도
속으로는 평소에 나눔에 대해 강조하시며
후배들을 잘 챙겨주시는 신부님이 왜 이렇게 하시는지 그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너도 후배들을 잘 챙겨주라는 무언의 압력(?)이었습니다

저녁에는 여러 신부들과 식사를 했는데
마침 대화 주제 중 하나는 영성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30년 넘게 사제로 살아오신 분이라 그런지
영성에 대해 아주 쉽고 명쾌하게 정의를 내리셨기에 소개합니다.


“영성이란 기도가 아니라 삶 그 자체이다”

‘미사 많이 드리고, 강론 잘하고, 기도 많이 한다고 그리고 공부 많이 한다고
영성이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생각을 바꾸어 삶이 달라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예를 들어 며느리가 하루 종일 밭에서 일하고
저녁에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와
아기를 등에 업고 아궁이에 불 땔 때
손자 봐 주지 않고 뜨끈한 아랫목에서 기도하는 시어머니를
영성이 깊다고 할 수 있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선생님, 구원받을 사람은 얼마 안 되겠지요?”라는 질문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있는 힘을 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는 주님의 측근인 제자들
혹은 함께 먹고 마시며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것이 아니고
누구라도 정의롭게 살지 못하면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지금은 첫째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꼴찌가 될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귀띔해 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이어도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처럼 살 수 있고
그리스도인이 아니어도 그리스도인처럼 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기도 많이 한다고
구원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위 사람 잘 살피고 배려하는 자그마한 실천들을 소홀히 한 채
구원을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모두 공염불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외적이고 형식적인 기준으로 정의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작은 습관 하나 고치는데도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지금까지 넓고 편안한 길을 찾아서 살아왔는데
좁고 험한 길을 일부러 찾아 나서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하늘나라는 사제라고 해서 전혀 특혜가 없다고 말씀하시는데
어디 등산화 없는 후배라도 찾아봐야 겠습니다.

김영욱(요셉) 신부/서운동 성체 성혈 성당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5-19 1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