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우연히 읽은 노희경 작가의 글이다. 
 
“나는 한때 나 자신에 대한 지독한 보호본능에 시달렸다. 사랑을 할 땐 더 더욱이 그랬다.
사랑을 하면서도 나 자신이 빠져나갈 틈을 여지없이 만들었던 것이다.
가령, 죽도록 사랑한다거나, 영원히 사랑한다거나, 미치도록 그립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그게 옳은 줄 알았다. 그것이 상처받지 않고 상처주지 않는 일이라고 진정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드는 생각. 너, 그리 살아 정말 행복하느냐?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만큼만 사랑했고, 영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당장 끝이 났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 싶어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랑은 내가 먼저 다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버리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물잔과 같았다....”

실연에 빠진 연인들이나 읽을 법한 이 글이 나에겐 종교적으로 다가왔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내 사제생활을 하면서 이런 지독한 보호 본능이 발동했으리라....
상처가 두려워서 사랑을 해야 할 때  뒷전이었고, 용기를 내야 할 때 고개를 숙이고 뒤로 돌아섰다.
본당 예산 절약한답시고 가난한 자에게 소극적이었고, 충돌이 싫어 입을 막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던 것 같다. 사목의 주변에서 소외되거나 가난한 자들에게 미치도록 달려가거나 죽도록 사랑한 적도 없는 것 같다.
다 줘야 된다고 목청을 높였지만 주지 못했고, 최선을 다 해야 한다고 했지만 최소만으로 체면을 유지했다.
‘지금 여기에’를 외쳤지만, 지금 여기서 우물쭈물 거렸고, 본받아야할 모범의 자리에 궁색한 변명으로 나를 포장했다.
익명의 그리스도인이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고 있을 때,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부끄럽다. 쑥스럽다. 얼굴이 빨개진다.

예수님께서 오늘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말씀하셨다.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서 예언서의 골자이다.” 성경에는 전해지지 않으나 아마도 뒤이어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한다. - 그리고 제자들과 군중을 둘러보시며 말씀하셨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 -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
자신에게 사랑받을 대상 하나를 유기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정신을 차려야겠다. 내가 왜 여기에 그리스도인으로 있는지, 왜 사제로 살아가는지 물어봐야겠다. 그리고 미치도록, 죽도록, 잃어버린 사람들을 향해 달려가야겠다.   

임현택 안드레아 신부 | 교구 전산홍보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