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010005.JPG10원짜리 커피

설마 10원짜리 커피가 있으려고,
밑지고 장사할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러나 있다.
중부전선 임진강 가까이에 자리 잡은 연천 읍내 성당의 커피
자판기에는 10원짜리 동전 하나만 넣으면
구수한 커피도 나오고 감칠맛 나는 코코아도 나온다.

주일 미사에 몰려오는 군인 아저씨들을 비롯해
초등학교 학생에 이르기까지 누구라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도록
연천 본당 신부님이 큰맘 먹고 취한 조치다.
질 좋은 커피와 코코아를 약수로 끓였으니 그 맛이 일품이다.

신부님의 성씨와 대머리는 전두환 씨를 닮았지만
그 마음 씀씀이는 영 딴판이다.
멋쟁이 신부님의 이름은 전숭규.

신부님은 서강대학교에서 정주영 장학금으로 경영학을 공부한 수재다.
그런데 뭣에 홀렸는지 신학교에 편입하여
1997년에 35세 늦깎이로 사제서품을 받았다.
한동안 서울대교구청에서 일하다가,
2004년 의정부교구가 신설되면서 의정부교구로 적을 옮겨
지금 연천성당 신부로 사목하고 있다.

나는 서강대학교에서 맺은 인연으로 올해 신부님을 두 번 찾아갔다.
요즘에 우리나라에 이런 사제가 있는 게 하도 기특해서 이 글을 쓴다.

연천성당은 교적상의 교우 수가 고작 250여 명에 불과하다.
휴전선 지역 교우들의 살림살이가 궁색하다보니
신부님도 밥 빨래 청소 등 사제관 일을 손수 하신다.

주일 미사에 나오는 본당 교우가 60여 명이고
교우 장병들이 또 그 숫자만큼 나오는데,
군인 신자들에게 매주 점심 한 끼나마 대접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서울 양재동성당의 이문주 신부님이 음식 재료비를 보태주어
그나마 점심 공양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빠듯한 살림살이다.

신부님은 지난 성탄 자정 미사 때 교우 할머니에게 강론을 맡겼다.
그분은 젊어서 남의 집 셋방살이를 하던 중에 해산하게 되었는데,
마침 주인댁도 출산하게 된지라
한 집에서 함께 아기를 낳을 수가 없는 처지였다.
한 집에서 동시에 아기를 출산하면
기가 약한 아기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미신 때문이었다.

그래서 집을 나온 셋방 아주머니는
소가 잠을 자는 외양간에서 홀로 딸을 낳았다고 한다.
지독한 산고에 정신을 잃었다가 등어리가 따뜻해서 깨어보면
송아지가 옆에 와 있어 손으로 밀치고 다시 잠들었다 깨어보면
또 송아지가 옆에 와서 따뜻하게 온기를 보내주었다고 한다.

그때 할머니가 낳은 딸이 지금은 성가를 부르고,
외손녀는 성가 반주를 하고, 외손자들은 미사 복사를 선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대충 이랬는데
이보다 더 감동적인 성탄 강론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성탄을 보내며 신부님은 사목위원들에게,
아기 예수님이 오늘날 연천에서 태어나신다면
과연 어느 곳에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시겠는가를 물으시고는,
성당 통장의 잔고 5백만 원을 주변의 극빈자들에게 다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또다시 통장에 6백만 원이 채워지더란다.
현대판 빵의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2005년 초에 신부님은 개인 통장에 있는 총재산 7백만 원을
어떻게 쓸까 궁리하다가 두 가지 일을 했다.
성당 주일학교의 중고등학생 열세 명을 승합차에 태우고
4박 5일 동안 남해안 일대를 견학하는 데 3백만 원을 쓰고,
나머지 4백만 원으로는 휴전선을 지키는 여러 군부대 장병들을 위해
회식용으로 큰 돼지 한 마리씩을 선사했다.
중고등학생들의 생기, 군인들의 사기가 어떠했을지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멋쟁이 전 신부님은 하는 일이 노상 이런 식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 그러니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선행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마태 5,14-16)라는 말씀이 연천 읍내 작은 성당에서는 살아 움직인다.

김형영 시인은 이 성구(聖句)를 멋진 시어로 새로 빚었다.

네가 켜는 촛불은 희미하나
촛불을 켜는 네 마음은 하늘이구나
촛불을 켜는 마음아
네가 이 세상의 풍경이 되거라.
한폭의 아름다운 풍경화마냥
사목 생활을 하시는 신부님 앞날에 진복(眞福)있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