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 한 그릇 / 도종환 


아침에 죽 한 그릇을 앞에 놓고 기도합니다
이 죽 한 그릇도
하느님께서 은혜로이 내리신 음식임을 생각합니다.
이 죽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고 힘을 내어
하루를 건강하고 복되게 살아갈 것임을 생각합니다.
죽 속에는 현미도 조금 찹쌀도 조금
그리고 연자육도 조금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연자죽이라고 부릅니다.
내가 먹는 아침식사입니다.

연자죽을 먹지 않는 날은
우엉과 표고버섯과 무와 당근을 달인 물을 마십니다.
야채 달인 물 한 그릇을 앞에 놓고도 기도합니다.
그것도 하느님이 허락하신 것임을 생각합니다.
채소를 기르느라 고생한 농부들과
연자죽 가루를 만드는 노동을 한 분들에게도 감사합니다.


하느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단 한 그릇의 밥도 먹을 수 없다는 걸 생각합니다.
그리고 밥 한 그릇을 벌 수 있게 일한 하루의 삶에도 감사하고
일할 수 있는 몸을 갖게 해주신 것 또한 감사드립니다.
죽 한 그릇 속에도 촘촘하게 연결된
많은 사람과 자연과 사물과 작은 우주가 들어 있습니다.


시래기가 되어 걸려 있는 것들은
무나 배추의 맨 처음 나온 이파리들입니다.
땅에 심은 씨앗이 싹으로 변해 흙을 뚫고 나올 때
사람들이 기뻐했던 것도 그것들이고
흙먼지와 폭우를 가장 오래 견딘 것도 그 이파리들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고갱이만을 택하고 난 뒤에
그들은 제일 먼저  버림받았습니다.
쓰레기통으로 가거나 그대로 버려지게 될 운명에 놓여 있다가
그나마 자신들을 기억해주는 손에 의해 거두어져
눈 맞아가며 겨울을 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그 버림받은 것들에서 우러나는
깊은 맛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시래깃국을 먹어본 사람은 그 맛이 어떤 맛인지를 압니다.
그러나 한 사발의 시래깃국이 된 그 이파리들이
어떤 이파리들이었나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고마워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그렇게 시래기가 되어
인생의 겨울을 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몸에 병이 들어 신부직에서 물러나 연풍 은티마을에서 요양중인
연례오 신부님은 목을 다쳐 소리가 나오지 않는 바람에
오랫동안 고생을 하셨습니다.
미사를 집전하면서도 아무 말씀을 하실 수가 없었는데
단 한마디 소리만 입에서 나오더랍니다.
성찬전례 중에 빵 조각을 들고 하늘을 우러르며
"그리스도의 몸"하고 말하는  바로 그 말씀입니다.
신기한 일이지요.
예수님이 빵으로 변해 우리 몸속에 오시는 신비를
경험하는 예절의 상징적 표현인
그 말 한마디만은 입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는 게
신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빵 한 조각 앞에서도
밥 한 그릇 앞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시래깃국 한 그릇 앞에 놓고
잠시 묵상하며 겸허해지고자 합니다.
죽 한 그릇 앞에서 이것을 먹어도 될 만큼
오늘 하루 부끄럽지 않게 살았는지 자신을 돌아보고,
사물을 존중하고 사람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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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으며
자족하는 시인의 가난한 마음이
하느님의 총애를 받을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겸손은 그어떤 것보다도
큰 감동을 주는 위력을 갖고 있지요.

시인의 마음을 읽으며
요즘 처럼 어려운때 많은 위로가 되길 바라며 글을 옮겨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