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심과 마음(心)의 능력

신앙은 올바른 진리에 대한 확신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신앙심은 이런 확신을 살아가게 해주는 마음의 능력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신앙심이란 예수님을 닮으려는 마음이다.
하느님 아버지께 철저히 순종하여 자신을 죽음의 십자가에 내어주면서도
희망을 몸으로 보여주신 예수님의 열정(passion)을 닮으려는 마음의 힘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고 모두가 이와 같은 열정과 확신을 갖고 사는 것은 아니다.
열심히 살려고 해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생기는 경제적 어려움과 고통,
인간관계에서 피할 수 없는 상처와 갈등들,
교회 안에서의 느끼는 실망과 회의 등으로 이 열정은 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내게 그런 열정이 사라져도 나는 여전히 그리스도인으로 남을 수 있는가?
대답은 그렇다. 
이유가 어쨌든 세례성사를 통하여 
내 마음이 하느님을 떠나서는
잠시도 평화로울 수 없다는 실존적 처지가 밝혀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 내가 하느님께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거나,
길을 찾지 못했거나, 때로는 알면서도 가고 싶지 않은 것뿐이다.

우리의 마음(心)은 어떤 대상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러나 마음이 향하는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우리 마음에 기쁨과 평화가 넘칠 수도 있고, 분노와 걱정이 앞설 수도 있다.

신앙심은 우리 마음이 향하는 힘을 참된 진리이신 하느님께로 향하고,
올바른 선(善)을 지향할 때 생긴다.

그저 주일 미사나 판공성사의 의무를 채우는 데 급급한 신자들에게 신앙심이란 남의 이야기이다.
마음이 하느님을 절실하게 찾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에 합체되더라도 사랑 안에 머무르지 못하고
교회의 품 안에 ‘마음’이 아닌 ‘몸’만 남아 있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교회헌장 14항).
신자라 하더라도 성당 문을 나서면
 더 완고하고, 세속적이며, 가톨릭 정신과 무관해지는 우리들의 치졸한 마음을 꼬집는 말이다.

세상살이가 힘들어질수록 마음의 능력을 되찾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인생의 행복과 불행이 결국에는 내 마음먹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남을 바꿀 수 없을 때
차라리 내가 바뀌면 된다는 단순한 논리를 깨달은 인생 선배들의 덕담이 공감이 가는 때이다.
거짓 마음을 버리고
참된 마음(眞心)을 찾기 위한 내적 수양을 강조하는 불교의 수행이나,
‘화’를 다스리는 법, 명상과 뇌호흡 등을 통한 기수련 등의 자기 계발과
마음 수행이 복잡한 현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매력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신앙심은 단순히 자신의 마음을 수련하는 것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신앙심은
자아수련을 통해 마음의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고통을 직면할 수 있게 해주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을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앙심은
고통의 근원을 없애는 예방의학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고통의 현실을 극복하게 해주는 치료의학의 힘을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얻는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심은 십자가 없이는 생기지 않는다.
십자가에 이기적인 나를 못 박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죽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렇게 죽기 위해서는 내 마음의 힘을 키워야 한다.
하느님의 눈으로 나를 보는 마음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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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힘을 주십사
하루의 짧은 시간이라도 그 분 앞에 앉을 수 있는 용기가 그 시작이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