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일, 인천 공항, 아들은 1월 1일에도 먹지 못한 떡국을 식당에서도 먹지 못하고 출국을 하였다. 메뉴에는 있으나 조리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다니러 온 지 꼭 열흘만이었다.

그 동안 먹고 싶었다는 것을 만들어준다고 노력은 하였지만 머무른 시간이 너무 짧았다.

공항에서 돌아와 아들이 벗어둔 옷 세탁하고 안 닦아도 좋을 방도 또 닦아내고 그래도 시간이 남았다.

저녁을 들며 남편이 왜 반찬을 제대로 안 먹느냐고 묻는데 왈칵 눈물이 났다. 씹고 있던 무말랭이 무침이 목에 걸릴 것 같았다. 아들이 제일 많이 사다 먹는 반찬이 한국에서는 잘 먹지 않던 무말랭이무침이라기에 그애처럼 먹어보고 있었다.

반찬 두어 가지 싸 보내려고 만들어 둔 것도 우여곡절 끝에 못 보내고 말았다.

생각은 잘 하였다.

모두가 감사한 일이다. 살이 빠져 더 보기 좋아진 것도 감사한 일이다. 땀 잘 흘리는 아들아이가 추운 지방으로 갔으니 그것도 다행한 일이다. 한 학기 잘 살고 무사히 다녀가는 것 보았으니 그것도 감사한 일이다. 요즈음 같은 외환 사정에 우리나라 돈 안 쓰고 공부하러 갔으니 감사한 일이다. 남편 눈치 보느라 아들에게 맘껏 못해 준 것도 감사한 일이다. 그러지 않았으면 주님께 죄송스러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 마음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이리저리 비뚤어졌다.

울다 그친 아이처럼 눈물 터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남편이 밉기도 하였다. 꼭 아들과 관련된 일이 아닌 다른 일들, 남의 일들도 마음 아프고 우울하고 그런 일들로 다가왔다. 지난 여름, 그애가 떠날 때처럼 대상포진을 다시 앓지는 않겠지만, 여하튼 마음이 평안치 않았다.

 

식사를 마친 남편이 운동하러 나가자 문득 오랫동안 성령기도회에 못간 생각이 났다. 첫 금요일이니 성시간이 있을 것 같았다. 성체 앞에 앉아 있는 것으로도 위로가 되겠구나 생각하며 산곡3동 성당에 도착하니 본당 봉사자가 무언가 진행 중이었고 성광은 나와 있지 않았다. 보통은 저녁 미사 끝나자마자 이어서 성체 현시, 성체 강복 진행되고 그게 끝난 후에야 성령기도모임이 있었는데. 신년 미사 다음날이어서인가 신부님이 진행하시는 성시간은 끝까지 없었다. 참가한 사람들도 적었다.

 

통성기도가 시작되었다. 전에는 좀 되는가 싶던 방언도 이제는 안된 지 오래여서 그냥 앉아있는데 누군가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봉사자들이 돌아가며 기도를 도와주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 후 두 번째로 누군가가 기도해줄 때였다. 내 입에서 신음 같은 것, 소리 없는 소리 같은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의식을 분명히 하여서 괴성을 내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마음에 떠오르는 듯한 말이 있으면 그것이 선한 편인가 어두운 편인가 구별하려고 노력하고, 왜 나는 이렇게 마음이 산란할 때만 기도모임을 찾게 되는가 생각하고, 이제는 끝났다고 생각되는데 왜 봉사자는 손을 떼지 않을까 생각하고… 그렇게 끊임없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기도가 끝났고 차 한 잔 혼자 마시고 빨리 성당을 나왔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었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고 행복했다. 아들 때문에 더 이상 눈물 나는 일이 없었다. 이 사람 저 사람 생각하면 안쓰럽고 염려되던 이들도 더 이상 그 미래가 암울해보이지 않았다. 마음은 평안하고 행복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랬다.

환경이 변한 건 없는데 내 마음이 변하니 모든 것이 다 좋았다. 이해 안 되는 일이나 사람이 없었다. 기도로 내 안에 있던 모든 슬픔과 근심, 미움과 불안 따위의 감정이 사라져가고 내 마음에 사랑과 평화만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고와 보이지 않는 다른 이들 역시 그렇게 그 안에 그 자신의 모습처럼 있던 어둠이 그와 분리되어 떠나가면 사랑과 평화의 마음만 남을 것이라 믿어지는 것이었다.

 

오늘도 혼자 아침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 시래기국과 무말랭이무침으로 혼자 먹는 식사도 감사하고 행복했다. 오랜만에 오르는 야산에 푸른 하늘이 보이지 않아도 행복했고 미사 중 아버님이 이상한 행동을 하셔도 염려되지 않았다.

미사 후 돌아와 맞는 식사 시간, 이제는 아버님이 혼자서는 식사를 제대로 하시지 못하시는 것을 보면서도 마음이 아리지는 않았다. 병이 많이 진행되셨구나, 하느님께 가실 날이 더 가까워지셨구나, 생각되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아들이 떠난 2일 저녁부터 3일, 4일 오늘까지 평화롭고 행복한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2009년 새 해의 이 체험을 오래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한다. 살다가 평화와 행복을 잊는 날 기억해내고 회복하기 위해 기록한다. 내 안에 어느 새 어둠이 쌓이더라도 내가 아닌 그 어둠들을 내보내고 주님의 평화 안에 머물기 위해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