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내 마음은 천국과 세상  사이 어디쯤에 있다.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는 때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다르다.  

 

11시쯤 요양원에 들렀을 때 아버지의 침대 위쪽은 세워져 있었고 아버지는 조금 기울어지고 조금 오그라진 자세로 눈을 감고 계셨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내 마음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오늘은 시간도 많으니 아버지 손을 잡고 당신 발로 잠시나마 땅을 딛고 휠체어에 앉게 해 드려야겠다 했던 희망은 구멍난 풍선처럼 쫄아들었다. 오늘 내 마음은 세상에 더 가까웠다.

어제는 아버지께서 눈을 감고 누워계셨다. 일정에 착오가 생겨서 아버지께 점심 식사를 도와드릴 시간도 없었다. 잠시 들렀다 가는데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깨지도 않으시는 아버지 손을 잡고 묵주 기도 드리고 성가도 불렀다. 누워계시는 아버지께는 보이지도 않을 하늘이 맑았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고통 없이 쉬고 계시니 얼마나 다행한가. 어제 내 마음은 천국에 가까웠다.

그제는 내 마음이 연옥 가까이 있었다. 추석 연휴 마치고 첫날, 남편도 혼자 보내고 남아 기대를 가지고 아버지께 갔다. 전날은 남편과 함께 아버지를 격려해 드려서 잠시나마 스스로 힘으로 서시고 앞 침대까지 몇 발 걸으시고 휠체어에도 앉으셨지만 오늘은 내 혼자 힘으로 잘 해봐야지. 마음이 앞섰다. 굽혀져 있는 아버지 다리를 주물러드리고 폈다 굽혔다 운동도 시켜드리는데 힘을 주고 계시는지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좀 펴보시라고 드린 말씀이 거슬리셨을까, 아니면 다리가 많이 아프셨을까, 아버지가 다리로 걷어차셨던가 어떻게 하셨다. 슬퍼졌다. 아버지 이러시면 누워계실 수밖에 없잖아.

 

내가 늘 가졌던 바램은 아버지께서 끝까지 미사에 다시니다가 하느님께 가셨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바램인가는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되었다. 별거 아닌 듯 보이던 피부병으로 아버지는 미사에 다닐 수 없게 되시더니, 그 후 며칠 지나지 않아 폐렴으로 사경을 헤매게 되셨다. 황망히 장례 준비를 마쳤더니 아버지는 열이 떨어지시고 중환자실을 나와 계시던 집(요양원)으로 돌아오게 되셨다. 하지만 누워서 몇 주를 보내시는 사이 두 발로 땅을 딛는 일을 못하게 되셨다.

 

남편은 전화할 때마다 오늘은 아버지께서 걸으셨는지를 묻는다. 걷지 않고 누워만 계시면 오래 살지 못하신다고. 남편의 태도는 한결같다. 생명은 소중한 것이고 그 생명을 끝까지 다 사시도록 도와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개인 간병이 허락되지 않으면 특별히 부탁을 해서라도 걸음연습을 시켜드려야 한다고 한다. 엄마를 떠나보내실 때 아버지도 남편과 같은 모습이셨다.

나는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 그 뜻을 헤아려 따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실제로 나는,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어렴풋이 안다 해도 주님의 뜻과 인간의 마음 사이를 오간다. 오늘도 그랬다.

식사를 마치시고 여전히 쪼그라진 자세로 아버지는 잠이 드셨다. 오후에는 목욕이 있다 니 쉬셔야 할 것 같아서 천천히 침대 머리를 낮추었다. 베개를 다리 아래쪽에 놓고 그 위에 다리를 얹어 드리니 어느 정도 다리가 펴지신다. 잠이 드시면 힘도 빠지실 것 같았다.

요양원에는 콧줄(영양관) 꿰고 다리 팔 오그라지고 손 묶인 채 그림자처럼 계시는 어르신들이 더러 있다. 나는 연세에 비해 키가 크시고 매일 미사 다니시는 아버지가 한 달 남짓 사이 그렇게 다리 오그라진 채 누워계시게 될 줄 몰랐었다. 그제야 처음 노인병원 갔을 때 어떤 간병여사님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치매노인들이 그렇게 누워계시면 걷지 못하고 말씀 못하게 되는 데에 일곱 달 정도밖에 안 걸린다던 말이. 다행히 아버지는 발음은 잊지 않으셨다. 목소리가 작고 논리에는 맞지 않지만 말씀을 하실 수 있으시다. 그러시다 드물게 듣는 이를 감동시키는 축복의 말씀도 한 마디씩 하신다.

 

성가 CD를 연속으로 틀어놓았다. 2인실의 짝궁은 하루 종일 거실에서 휠체어 타시는 분이라 방에는 아버지 혼자 계신다. 늘 혼자 계시는 것이 안쓰럽지만, 텔레비전 공해 없는 곳에서 성가 들으시며 주무시는 모습이 평안해 보이시기도 한다.

아버지 편히 쉬세요. 또 올게요. 사랑해요.

뺨을 아버지 이마에 대고 인사하는데도 반응 없으시다. 벌써 꿈속에서 천국의 뜨락으로 놀러 가셨나.

주무시는 아버지 혼자 두고 방을 나오는데도 마음이 어둡지 않다. 나도 편안하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