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아침, 비가 많이 내렸다. 요양원 지하주차장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차에 오를 때는 괜찮았지만 성당에서 내릴 때는 우산을 써야 했다. 두 사람 함께 앉을 좌석을 찾아 맨 앞자리 왼쪽 끝에 앉았다.  

  미사 도중 갑자기 헌금을 가져 오지 않은 생각이 났다. 밀린 교무금을 잊지 않고 가져오느라고 그 외의 것은 그만 다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주님께 드리는 예물은 다 쓰고 남은 것으로가 아니라 제일 먼저 좋은 것으로 드려야 하는데 교무금 내는 걸 새해 초부터 잊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바빴던 것이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게다가 2차 헌금까지 있는 날이 아닌가. 절로 반성이 되었다. 봉헌할 때에는 봉헌금만이 아니라 그와 함께 한 주일간의 기도나 선행 등도 함께 봉헌하는 것인데 그렇게 정성스럽게 봉헌 준비를 한 적이 얼마나 있던가.

  하여튼 두 번의 봉헌시간에 못 나가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성체를 모시러 나가지도 못했다. 치매이신 아버지는 성체는 반드시 걸어 나가서 받아 모셔야 하는 걸로 아신다. 그런데 성체 시간이 되어도 앉으셔서 꼼짝도 않으신다. 앞자리로 성체 분배 오신 수녀님은 내게만 성체를 주고 가셨다. 섭섭했다. 하지만 남들이 모르는 그 다음 시도가 남았다. 입안에서 성체를 녹여 아버님과 나누어 영하는 것이다. 다행히 그걸 거절하지는 않으신다.

  미사 마치고 나오는데 내 우산이 없다. 비슷한 우산들은 있지만 내 우산은 아닌 것 같다. 빗살이 거칠다. 아버지를 젖게 할 수는 없어서 지나가는 형제님 한 분께 부탁해서 차로 가는 데 누가 내게도 우산을 씌워준다. 작년 우리 교리반 형제님이다. 너무나 반가운 얼굴이었다.

  아버지 요양원 모셔다 드리고 우리 아파트 앞에 이르러 어디에 차를 세워야 비를 덜 맞나 생각하는데, 큰 우산 밑으로 남편의 얼굴이 보인다. 먼저 나를 알아보고 자기가 서 있는 곳에 차를 세우라고 안내하고 있다. 담배를 피우러 내려왔던 듯. 많이 반가웠다.

  ‘하느님은 자상도 하시네. 비 맞지 않도록 남편까지 마중을 보내시다니.’

하고 생각하다가 깨닫게 되었다. 성체를 모시러 나가지 못한 것도 봉헌금도 내러 나가지 못해 부끄러운 나를 위한 그분의 배려이셨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