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하느님은 무서운 하느님이야.”

  가까운 친척 동생이 말을 시작했다. 세례를 받았지만 오랫동안 쉬는 신자인 동생은 최근 어떤 사람들과 사이가 나빴다. 그런데 속이 상해서 혼잣말로 뭔가 부정적인 말을 할 때마다 그쪽에서 욕하는 전화가 걸려오는 걸 세 번이나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혼잣말이라도 안 하게 되었다고 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주차장에서 접촉사고를 냈다. 운전석에서 내린 여자는 차도 곧 폐차할 생각이었으니 보험처리하지 말고 이십 만원만 내라고 했다. 그러면 간단히 해결될 것 같았으나 동승했던 초등학교 학부모 엄마 하나는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녀는 전 해에 가족이 교통사고 쉽게 합의했다가 후유증으로 가족이 고생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보험처리 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 일은 세 명이 입원하는 대형 사고가 되어 나는 열 손가락에 지문을 찍고 경찰차를 타고 가서 현장검증도 했다. 운전하던 여자는 동네 병원에 오래 입원해 있었다. 나는 겉으로는 예의 바르게 행동했지만 속으로는, 아이를 기르는 엄마가 저렇게 살면 어떻게 하나 하고 비판하였다.

  일 년이 못 가서였다. 마을버스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앉아 있던 나의 목이 앞좌석 쇠 손잡이에 부딪혔다. 다친 사람은 나 하나였다. 보험사에서는 합의를 독촉하고 운전기사의 표정도 생각났지만 목이 아픈 나는 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의사의 멸시하는 듯한 눈빛을 보았다. 그제야 일 년 전 사건이 생각났다. 그래서 보험사와 합의를 하고 그 합의금을 북한 돕기 단체에 기부금으로 내었다.

  누군가를 축복하는데 대상이 축복을 받을 만하면 그 축복이 대상에게 돌아가고 그가 축복을 받을 만하지 않으면 그 축복이 축복하는 사람에게 되돌아온다는 말을 들었다. 반대로 저주 역시 대상이 저주받을 만하면 그 대상에게 효과가 미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저주는 고스란히 자신에게 되돌아온다고도 했다.

  선한 말을 유도하기 위해 누군가 지어낸 말 같기도 하지만 머리칼 한 올도 세고 계시는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이시지만 어떤 경우에는 ‘무서운 하느님’이 되신다는 것도 안다.

  다만 그 때의 ‘무서운 하느님’은 ‘심판하시는 하느님’이라기보다는 ‘가르치시는 하느님’이시다. 우리가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으로, 말뿐 아니라 생각도 나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시는 것이다.

  그러면 그분이 정말 무서운 하느님이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