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옥인 후배,
이번엔 순례여행을 다녀 왔네요.
매일 매일 미사를 드리면서 여행도 하면 참으로 축복받는 여행이
되리라 믿어요.
저도 지난 일요일 어머니 산소에 가서 새 꽃 꽂고 연도 기도 바치고
돌아 왔지요.
기도하는 날 기억해 주어 감사 합니다.
어떤 여정이 었나요?? 어디 어디를 둘러 가나요?
어디 다른 곳에 써놓았는지요?
김혜경 선배님,
이번에 오신 신부님과 순례자들은 그리스부터 시작하여 여러곳들을 둘러보고 오셨는데,
저하고는 오스트리아 Graz에서 부터 만나서 그라츠와 아드몬트 수도원을 보고
마지막으로 비엔나에서 지내고 귀국하셨지요.
저의 어머니 추도일이 2월 7일이어서 이번에 더욱 더 감명받으면서 지냈어요.
조용한 순례자들과의 동행이라 사진은 많이 찍지 못했구요.
아직도 그간 감동의 여운이 지어질까 봐 선뜻 사진을 못 올리겠는데요,
가끔은 사진이 실제보다 차가운 느낌이 들 때가 있잖아요...
위의 사진을 찍으면서 간구하시는분 방해될까봐 빨리 찍다보니 흔들림이 보이는데,
간구하는 모습의 의미만 보세요^^
도서관사진을 IICC에 한장 올렸어요.
천국같은 도서관의 아름다움을 나눠보고 싶어서요.
혜경언니, 옥인언니.
윗 사진들이 언니들께 많은 의미로 다가서는 느낌이 들어요.
2007년 2월 7일, 부산의 한 성당에서 시어머님의 장례미사를 드렸지요.
어머님 물건을 정리하면서 가져 온 십자가와, 우연히 만난 수녀님이 되신 인일 선배님께서 주신
묵주 목걸이랍니다. 처음 뵌 선배님이었지만 그 만남이 너무 반가와서 무언가 정표로 드리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제 소지품 속에는 흰 장갑과 눈물 콧물 묻은 꾀죄죄한 손수건, 그리고
까만색 사각형의 안나수이 거울 밖에 별 것 없었지요.
그래서 거울을 드렸더니 극구 사양을 하셨는데, 그래도 막무가내 억지로 드렸더니, 그 선배님께서
실제로 늘 들고 계시는 묵주를 주셨어요. 너무 고맙고 감사해서, 또 그렇게 먼 곳에서 만난 수녀
선배님을 만나 뵈어서 저는 내내 가슴이 감격스럽고 벅찼었답니다.
한 울타리에서 단 몇 년 같이 지냈다는 사실로 혈육의 정 보다도 더 진한 사랑을 느꼈었습니다.
비록 어머님과는 천주교, 기독교로 그 이름은 다르지만 어머님께서 남겨 놓으신 십자가며
미사보, 천사 인형들, 양초, 묵주들 등은 장식장 속에서, 선반 위에서, 언제나 저희를 지켜주고 있는 듯 느껴집니다.
광희야~
그래, 우리가 마르틴루터의 종교개혁부터 구교와 신교로 분리되었지만,
근본은 같다고 생각해.
한국에서 살 때는 그저 내가 섬기는 교회생활에 머무렀지만
이곳에 와서 공부하다보니 자연히 가톨릭을 가깝게 대하게 되면서
나의 사고가 많이 바뀌었단다.
서로가 포용하는 것이 우리 기독교인들의 참 자세인가 생각되고...
이글을 쓰면서 얼마전에 어머니를 잃은 광숙언니와 혜경언니 생각도 했는데,
광희에게도 그런 사연이 있었다니....
우리 모두 먼저가신 어머님을 생각하면서 힘내잤구나.
올려준 사진들 잘 보았어.
단아한 모습이 내 맘에 닿아오는구나....
옥인이가 이번에는 성스러운 여행을 하고 돌아 왔구나!
기도하는 어머니들의 사진 엄숙하고 진실함이 전해져 온다.
옥인아~~
늘 값지고 의미있는 글들~~고맙단다.
이제 다른 나라에서는 미사보를 별로 쓰지 않는 것 같은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미사중에 미사보를 써서 미사를 보는
모습이 더욱 경건하고 성스런 느낌을 받습니다.
광희씨 시 어머님 기일이 바로 전 주였었네요.
남기신 성물들에는 유난한 그분들의 숨결이 느껴지지요?
그래서 유물에는 각별한 의미가 있는가 봅니다.
수녀님 ( 혹시 우리 3회 동창?) 이 주신묵주와 십자고상의
십자가 달린 예수님 모습이 너무 닮았네요.
비엔나 카프치너성당에서 한국인 순례자들의 미사가 예정시간보다 늦어졌으나
연속되는 오스트리아 미사에 참석한사람들이 조용히 기다리며...
또한 동참하시는 할머니...
며칠동안 순례여행하는이들과 동행했습니다.
매일마다 드리는 미사시간,
그녀들이 간구하는 간절한 모습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어머니들도 우리를 위해 항상 기도하실 거라고 믿으면서
육신의 어머니를 잃은 모두에게 위로가 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