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2일 새벽 1시.

다음주부터 가동될  '다직종간 의무기록 충실성 검토' 위한 Task Force Team 간사이어서

의사직,간호직,약사,의료기사가 작성할 checklist 를 이 밤이 가기전에 꼼꼼히 완성해야 했다

의사모듈, 간호사모듈등 의료정보 화면들을 들락날락 하면서 필수항목들을 확인하던 중

사망기록 항목 검토를 위해 최근 2일간 우리병원 사망자 명단을 검색하였다

어떤 사망케이스를 참조할까 명단을 따라가던중, 한 이름에 눈길이 멈추었다

'어? 동호 미술선생님과 같은 분이 돌아가셨네'

노 * *    남/48세   주안4동 *** 의료급여 1종

어???? 선생님 맞나봐

마음이 황망해지면서 불길함, 두근거림, 돌개바람이 지나갔다

의무기록을 찾아보니

사망하신 분은 동호 선생님이 맞으셨다

알콜성 간경화로 최근 수년간 치료 중이셨고

2일전 사망일에 식도정맥류 파열로 인한 다량 출혈로 구급차에 실려 오셨다가

10시간만에 중환자실에서 임종하셨던 것이다

같은 날, 선생님이 윗층에서 의식잃어 소생술하고 사망선고 받으시던 시간에

나는 사무실에서 무심히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호 선생님의 사망사실을 부인할 길이 없어지고 나니 

하던 일감위에 눈물콧물이 번졌고 울음은 점점 엉엉 소리를 내며 터져 나왔다

 

밤 한시가 지났지만 알바마치고 돌아온 동호가 전화를 받았다

'동호야  ***선생님 그제 돌아가셨구나'

'너 어떻하니,

선생님 제대로 찾아뵙지도 않았으니

이제 어쩔꺼니'

나는 울면서 동호를 나무랐다

너 자란거보시며 얼마나 흐뭇해 하셨을건테

매정한 놈아, 그렇게 선생님 찾아뵙는 거 미루더니

선생님이 못기다리시고 술병 얻으셔서 세상 떠나셨다

이제 어쩔래, 평생 네맘에 되돌리지못할 빚을 졌구나

왜 그리 못되었니, 왜 그랬니 하니,

한참만에,

'그림 잘하면 찾아뵈려고 했어요'  대답한다

그래, 네맘은 그랬는지 몰라도 선생님은 못기다리셨구나

어쩔꺼니 이녀석아.... 엄마 너무 슬퍼....

 

재능은 있으셨으나 내내 가난했고 초식동물처럼 외로웠고, 

어머니와 여동생의 가장으로 각박한 하루를 사셨으면서도 낭만이셨던. 

무슨 인연인지,  동호를 끝내 사랑해 주시고 희망을 두셨던

고마운 분이 지척에서 세상을 달리했음에 

나는 부끄러운줄 모르고 소리내어 울었다

 

초등 4학년 가을에 동호 담임선생님께서 부르시더니

'동호, 그림학원 좀 다녀서 미술성적좀 높여야 되겠어요

내신평균이 떨어지면 좋은 학교 못넣어요' 하셨다

노선생님은 미술학원서 만난 30대 후반의

홍대 응용미술학과 졸업하신 미술강사 이셨다

야구이야기만 하면 눈을 반짝이고

그림에는 정말 어이없고 대책없던 오동포동하던 꼬마를

빙그레 웃으며 맞아주셨다

 

그림을 마치면 선생님은 자주 동호와 소박한 밥집에 들러

때론 외상으로 아줌마 눈치를 받으면서 태평하게

철부지의 배를 채워 집에 돌려보내셨다

당시도 지금처럼 늦은귀가를 하던 내게

동호 배불리 먹여주는것은 크나큰 고마움이었다.

늘 값싼 삼겹살이었지만,  

잘 굽는법, 참을성있게 기다리는법, 김치에 싸서먹는법을 가르쳐주셨고

다구워진 고기의 살점은 동호밥에 얹어 주시고 선생님은

떼어낸 비계에 김치에 싸서 드신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수업료 드릴때면 고기 먹여주시는 보답으로 얼마간씩 더넣곤 했다

동문들의 그림전시행사라도 있는 날이면

'오늘은 소고기 먹여줄께' 하시며 아들인양 달고 가셔서 그림도 보여주시고

친구들에게 소개도 해주시고 맛난것을 챙겨먹여 배가 불룩해 오기도 했다

 

선생님은 항상 먼저 오셔서 이젤에 어린 제자의 스케치북을 열어 놓으시고

베레모 이쁘게 쓰시고 이젤 옆 의자에 비스듬히 앉으셔서 책을 읽으며 동호를 기다려 주셨다

선생님 어머니생신날,  내복이라도 사실때면 BYC에 함께 데려가 런닝셑트를 들려 보내셨고

가끔은 장미꽃 선물로 어머니 기쁘게 해 드리라고 동호에게 신사도를 가르치시기도 했다

 

철없는 동호가 돌아와서 전하는 그런저런 조각이야기들을 들으며

선생님은 궁색한 형편에서도

왜 그리 꼬마를 존중하고 사랑해 주시는지 궁금했고 감사했고 선생님께 좋은일이 있기를 바랬었다

 

중학교 들어간후, 선생님이 동호에게도 술 심부름을 시키시거나

그림지도에 전념 않으시고 화실에서 취해 계시는 날이 많아 지면서

동호는 3년여 맺은 인연을 접고 그림학원을 가지 않았다

그리고 동호가 고등학교 전주로 가고

대입준비 하는동안 선생님은 간간히 내게 동호 근황을 물으셨다

전주 학교에 가서 동호가 고전하는 것을 들으시고는

도울길이 없나 안타까워 하시며 희망의 말을 해주셨다

동호가 삼수 끝판에 엉뚱하게도 홍대미대를 지원하고 합격했을때 그 과정에서

미술선생님께 의논을 드리지 않은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선생님은 나중에 합격사실을 아시고 '동호어머님, 정말 섭섭합니다" 하셨다

동호는 간간히 전화통화만 할뿐, 끝내 선생님께 보답하는 자리를 마련하지 못했다

 

선생님은 우리병원에서 돌아가신후 비용이 덜비싼 사랑병원 영안실로 옮겨가셨고

발인 몇시간 남기고  한밤중에 내 전화를 받은 동호는 그 밤으로 영안실을 찾아

여동생과 친구분들이 지키는 빈소에서

살아 못뵌 사죄와 함께 선생님 가시는 길에 향을 올렸다

 

동호의 초등시절을 생각하면 

마음만은 부자이셨던 노선생님과 인연이 닿아 무한정 받았던

그 특별한 사랑을 빼놓을 수가 없다 

가족아닌 그 누구가 그토록 사랑을 줄것인가

선생님에게 진 사랑의 빚을 감당하기 어렵다

가난한 삶,  외로운 삶, 힘든 삶을 살아오는 중에

내 아이에게 기울여 주신 사랑이 고맙고 귀해

안타깝게 세상 떠나신 필립보님의 영혼을 생각하며

눈물로 위로와 감사를 드린다 

 

주님께서 필립보님께 주신 소명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나

그가 그 소명을 다하고 떠났는지도 알지 못하나

이 세상 초라하던 삶으로부터 몸을 벗게 하신 주님,

저희에게 많은 감동을 주시고 가신 선생님의 영혼이

이제 평화와 자유하시기만을 간절히 기도 합니다

죽음을 통해 동호에게 깊은 깨달음을 더해주신 분

선생님은 그녀석의 영원한 멘토가 되셨습니다

이제 맛난 밥 대접할 길 없고

드릴것이라고는 기도뿐이니 기쁘게 받아주십시오

선생님, 감사 합니다

 

나는 궁금하다

돈도 없으신 선생님이

가까운 2차병원을 집옆에 두고 어찌

살아 한번 오신적이 없는

우리병원 응급실에 그 새벽에 찾아와 돌아가셨을까

나는또 왜 발인앞둔 새벽에 집에도 안가고 일하다가

많은 사망자중에 하필 선생님 사망명단을 찾아내어

일년흘릴 눈물을 흘려대고 있는건지.

주님께서 지극하신 선생님 가시는 길을 배웅하라고

작은 기적을 만드신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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