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1일                                                                                                                                                                                                     서울주보 3                                                                                                                                                                                           

말씀의 이삭 

지금 이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



 오랜만에 ‘말씀의 이삭’란을 통해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미 두 차례에 걸쳐 매주 여러분을 만났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썼던 것이 1999년이니 벌써 13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저는 잘 알고 계시겠지만, 암에 걸려 투병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껏 저는 몸이 건강하여 불의의 교통사고로 짧게 병상에 누웠던 적은 있어도 병에 걸려 입원생활을 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병원은 저와 상관없는 별도의 공간이며 운이 나쁜 사람들이나 가는 격리된 수용소와  같은 곳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던 제가 어느새 5년째 투병생활을 하게되었으니 ‘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네 차례’란 트라피스트 수도회의 금언을 새삼스럽게 실감하게 된 요즈음입니다.

 2008년 여름, 저는 드디어 ‘내 차례’를 맞아 암이라는 병을 선고받고 가톨릭 신자로서 앓고, 가톨릭 신자로서 절망하고,가톨릭 신자로서 기도하고,가톨릭 신자로서 희망을 갖는 혹독한 할례식을 치렀습니다.

 저는 이 할례식을 ‘고통의축제’라고 명명하였으며 앞으로 한달동안 ‘말씀의 이삭’란을 통해 아직도 출구가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고통의 피정 기간동안느꼈던 기쁨을 여러분에게 전하고 주보의 지붕 위로 올라가 외치려고 합니다.


 저는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불어 닥친 이 태풍은 다름 아닌 죄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바오로가 말한 올바른 마음가짐 없이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신성 모독의 죄를 범하는 것으로 ‘여러분 중에 몸이 약한자와 병든 자가 많고 죽은 자가 적지 않은 것은 그 때문(1코린 11,30)’이라는 말씀을 떠올렸던 것입니다.저에게 있어 암의 선고는 미국작가 N.호손이 쓴 간통한 죄로 ‘A’란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기고 사는 여주인공의 낙인과 같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병원 복도에서 마주친 머리를 깎은 천사와 같은 어린 환자의 눈빛을 보았을 때 나는 남몰래 눈물을 흘리면서 절규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주님, 저 아이는 누구의 죄때문에 아픈 것입니까. 자기의 죄입니까,부모의 죄입니까. 그때 주님은 제 귓가에 속삭이셨습니다.

 ‘자기 죄 탓도 아니고 부모의 죄 탓도 아니다. 다만 저 아이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요한 9,3)’ 그 순간 저는 비로소 죄의식에서 해방될 수 있었으며 병원 안에 있는 수많은 환자들, 아아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가정 속에서 소중한 우리의 아빠, 엄마, 딸, 아들, 이제 갓 태어난 아기들이 온갖 병으로 스러지고, 신음하고, 죽어가고 있는 것일까요. 그들은 모두 죄인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대로 하느님의 놀라운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있다는 진리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독일의 시인 릴케는「엄숙한 시간」에서 노래했습니다.

 “지금 이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 / 세상 속에서 까닭 없이 울고 있는 사람은 나를 위해 울고 있는 것이다. / (...) / 지금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죽어가고 있다. / 세상 속에서 까닭 없이 죽어가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우리들이 이 순간 행복하게 웃고 있는 것은 이 세상 어딘가에서 까닭 없이 울고 있는 사람의 눈물 때문입니다.우리들이 건강한 것은 어딘가에서 까닭 없이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 덕분입니다. 우리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은 어딘가에서 까닭 없이 굶주리는 사람들의 희생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 어딘가에서 울부짖고 있는 사람과 주리고 목마른 사람과 아픈 사람과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울고, 내가 굶주리고, 내가 슬퍼하고, 내가 병으로 십자가를 지고 신음하면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은 바로 우리 곁에서 이렇위로하고 계십니다.


“슬퍼하지 마라. 기뻐하고 즐거워 하여라. 하늘나라가 너의 것이다.”


최인호 베드로┃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