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_5983.jpg

 

 

 

 

†찬미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편하게 생각하시는 집에 들르십니다.

예수님이 특별히 사랑하시는 마리아와 마르타, 나자로가 사는 집이지요.

 

 

이날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너무 피곤해서

사람들과 떨어져서 편한 집에서 좀 쉬어가고 싶으셨을 겁니다.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마르타는 알아채지 못했어요.

그저 반가운 마음에 예수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을 대접을 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마르타는 자기위주의 친절을 베풀었던 겁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시는 길은 머지않아 죽음을 앞둔 길입니다.

착잡하고 심란한 마음인데 진수성찬이 눈에 들어오겠습니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기위주의 친절을 베풀면서

상대편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투덜대고, 화내고, 미워합니다.

 

 

마리아가 동생 마리아를 보니까 기가 막혀요.

손 하나 까딱 안하고, 자기가 마치 공주인양 주님의 발치에 앉아

주님의 이야기만 듣고 있지 않는가!

마르타는 예수님께 마리아가 자기 일을 좀 거들게 해달라고

딴에는 분노를 억제하면서 예수님께 일러바칩니다.

 

 

사제에게도 편한 집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이 강론을 준비하면서 저도 자신을 뒤돌아보았습니다.

30년 동안 많은 본당을 거쳐 왔고, 피정을 다니면서 전국의 신자,

전세계의 신자들을 많이 만났지만 정말 편한 집이 몇이나 될까!

헤아려 보았더니 놀랍게도 두세 집도 안 나왔습니다.

문 열고 들어갈 때부터 사제의 마음을 읽는 교우가 있습니다.

‘아, 신부님이 잠시 쉬러 오셨구나!’

 

 

본당신부가 교우들을 방문할 때 미리 공지를 합니다.

“오늘 20여 집을 다녀야 하니 음식 절대 차리지 마세요.”

그러나 막상 방문을 해보면 사제 앞에 앉아 필요한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차리느라 싱크대 앞에서 난리법석을 떱니다.

이건 분수 떠는 것이고, 분별이 없는 겁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역성을 들어주지 않으시고 서운한 말을 하십니다.

“마르타, 너는 많은 일을 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다.

네 동생 마르타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지금 시대는 분별의 시대입니다.

영적인 분별이 없으면 사제도 수녀도 신자도 다 망가집니다.

마리아는 분별을 한 겁니다.

이 성서구절을 마르타를 활동하는 사람, 마리아는 기도하는 사람으로 이야기합니다.

교회는 분명히 두 사람의 몫이 모두 필요합니다.

그러나 순서가 있습니다.

마리아처럼 먼저 기도한 후에 마르타처럼 행동으로 보여야 합니다.

 

 

분도수도원 현관 앞에 들어가면 어떤 말이 적혀 있느냐!

‘기도하고 일하라!’

일한 다음 기도가 아니라 기도하고 일해라!

기도하고 봉사해라!

기도하고 액션단체에서 일하라!

아마 이 뜻일 겁니다.

 

 

거듭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기도가 밑바탕이 되지 않으면

끌려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가 밑바탕이 되지 않은 활동, 그 속에는 예수님이 안계시고 사람만 있습니다.

 

 

마리아처럼 예수님 곁에서 듣고 묵상하면서

내 자신이 은총으로 적셔져야만

예수님을 위하여 봉사를 하게 되는 겁니다.

 

 

러시아의 어느 철학자의 말로

‘가장 이상적인 사람은 고독하면서 동시에 사회적이어야 한다’ 고 합니다.

 

 

외롭다는 말은 이성을 찾는다는 말이지만, 고독하다는 것은 영적인 갈구입니다.

사제는 고독해야 합니다.

사제가 외로우면 문제이지만, 사제가 고독하지 않아도 문제입니다.

자기 혼자 침잠해서 아무의 간섭을 갖지 않고

하느님과 깊은 친교를 이루는 고독의 시간이 우리 신앙인에게 필요합니다.

 

 

하지만 고독하기만 하면 안 되겠지요.

고독을 통한 영적인 에너지를 갖고, 동시에 사회적이어야 합니다.

어떤 이는 고독을 즐기지만 사회성이 부족합니다.

 

 

예수님은 영적 에너지의 충전을 받아

‘나 살려 주세요~’

‘나 마귀 떼어주세요~’

그 사람들 만나기 위해서 밤새 기도하시는 겁니다.

 

 

여러분도 한 번 스스로 분별해 보세요.

나는 사회적이기는 한데 고독하지 않은지~

기도하고 묵상하기는 잘 하지만 사람들 만나기를 불편해 하지 않는지~

 

 

여러분 모두 어렵고 복잡한 문제 가지고 계실 겁니다.

그것 해결할 길은 오늘 예수님 말씀대로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입니다

‘내 곁에 머물러라, 그리고 기도해라!

네 머릿속에 있는 세상의 방법을 쓰기 전에 먼저 기도해라,

기도하면 기적을 이룰 것이다!

 

 

아오스딩 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기도로 강해지지만 하느님은 우리의 기도로 한없이 약해지신다’

 

 

교회는 마리아, 마르타 모두 필요하지만

봉사 밑에 기도가 깔려있지 않다면 그 봉사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결국에는 자화자찬, 남 의식해서 해야 되고, 체면 때문에 해야 되고,

사람 좋아서 해야 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우리 신자들의 모든 봉사에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오늘 이 복음 들으면서 몇 가지 화두를 던져 봅니다.

여러분 자신은 과연 이 김신부를 편하게 대하는가?

편하지 않다면 이유가 있을 겁니다.

내 속의 상처가 다른 사람을 오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지는 않은지~

또 내 이웃들이 왔을 때, 편한지.... 아니면 굉장히 불편한지~

내가 다니는 성당은 편안한 성당인지~ 기쁨이 있는 성당인지~

아니면 성당에 나가면 상처를 받는 성당인지~

내 본당이 불편하다면 평화를 이루는 성당에

내가 한 몫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가지길 바랍니다.

 

 

다른 사람이 불편하게 한다면 성령께 도움을 청해야 될 겁니다.

‘제가 가진 인간적인 약점 때문에 사람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니,

예수님께서 들어오셔서 편하게 머물다 가시는 영적인 내 마음의 집으로 변화시켜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우리들이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 때는 먼저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하면서 분별을 청해야 합니다.

자기위주의 친절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크게 주거나 역효과가 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일상생활 가운데 많이 부딪히는 문제들입니다,

 

 

우리들이 친절을 베풀 때는 분별의 기도를 청해야 되고

누군가와 대화를 하기 전에 먼저 주모경이라도 바치고 사람을 대해야 합니다.

외출 할 때, 잠시 십자가를 바라보며 영광송이라도 바치고 나가야 합니다.

‘주님, 제가 나가서 돌아올 때까지 제 입이 하느님의 축복으로 거룩한 입이 되게

해 주십시오. 혹시라도 제 입을 통하여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려고 한다면

파수꾼을 두시고, 자물쇠를 채워주십시오.‘

이렇게 짧은 기도라도 해야 됩니다.

 

 

내 몸이, 내 집이, 내가 다니는 성당이, 내가 찾아가는 성지가

예수님이 편하게 느껴지는 그런 곳이라면

천국이 이 땅에 내려 와 있는 겁니다.

그런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 기도를 청하십시다. 아멘

♧느티나무신부님 (2013. 07. 21 연중제 16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