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인가 부처님은 샤카족이 살고 있는 샤카라라는

마을에 계셨다. 그때 장로 아난다가 부처님을 찾아 인사하고 그 곁에 앉았다.

아난다는 부처님께 이런 문제를 여쭈었다.

“ 부처님 저는 우리가 좋은 우정을 갖고 , 좋은 친구를 갖고, 좋은 교류를 갖는

일은 성스러운 수행의 절반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대답은 이러했다.

“ 아난다여 ,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아난다여, 좋은 우정을 갖고 좋은

친구를 갖고 좋은 교류를 갖는다는 것은 성스러운 수행의 절반이 아니라 그 전부

이다 아난다여, 좋은 친구와 교류를 갖는 수행자는 성스러운 여덟 가지의

도를 닦고 그 수행을 닦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난다여 , 그러면 좋은 친구와 교류를 갖는 수행자는 어떻게 해서 성스러운

도를 닦고 그 같은 수행을 닦을 수 있겠는가.

아난다여 , 그 수행자는 좋은 친구 때문에 욕망의 대상을 물리치고 탐욕을

떠나고 이윽고 번뇌를 버림으로써

올바른 견해(正見)를 닦는 것이다 .

올바른 사고방식(正思)을 닦는 것이다.

올바른 말(正語)를 닦는 것이다.

올바른 행위(正業)를 닦는 것이다.

올바른 삶(正命)을 닦는 것이다.

올바른 노력(正精進)을 닦는 것이다.

올바른 생각(正念)을 닦는 것이다.

올바른 선정(正定)을 닦는 것이다.

아난다여, 이처럼 수행자가 좋은 친구와 교류하는 것은 성스러운 도를 닦는데

큰 도움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친구와 교류하는 것은 수행의 절반이

아니라 전부라고 하는 것이다.

아난다여, 사람들은 나를 좋은 친구로 사귐으로써 병든 몸으로부터 해탈하고

늙어가야 할 몸으로부터 해탈하고 죽어야할 몸으로부터 해탈할 수 있다.

아난다여, 좋은 우정으로 좋은 친구와 좋은 교류를 한다는 것은 이렇게 수행의

절반이 아니라 전부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