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누군지 송장 치웠구나."

지난 10월 16일 오후 성당 다녀 오는 길에 나는 뒤에서 오는 차에 받혔다.

우리 차는 양보 사인 앞에 서 있었는데 뒤에서 오던 어느 케네디언 할머니가 미처 우리 차를 보지 못했는지 그만 뒤에서 들이받고 말았다.

그 때 나는 겨우 대상포진에서 회복되어 가는 중이어서 몸 상태가 별로 좋지않았었는데...

어머니께서 등에 부황을 떠 주시면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나와 함께 일하는 팜은 늘 이렇게 말했다.

"애나, 배드 럭(불운)은 항상 따라다닌다."

정말 그런가?
이제 겨우 대상포진이 나아가서 2주일 쉬고 1주일 일 했을 뿐인데...

병원에서 마이너 인저리 2등급을 받고  물리치료에 들어갔다.

모두들 교통사고는 후유증이 더 무서우니 치료를 잘 받아야 한다고 했다.

사실 나는 그 동안  침이니, 부황이니 하는 그런 대체의학들을 믿지 않았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이렇게 사고를 당하고 보니...

정말 좋다는 데는 다 쫓아다녔다.
침을 맞고 부어오르기도 하고 , 부황 뜬 자리가 시커멓게 죽기도 하면서...

더더욱 세라젬이라는 맛사지 기계는 늘 어머니 방 한 쪽에 자리 잡고 있는 골동품인 줄 알았지 그것이 내게 필요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하였었다.

이제 거의 한 달 이상의 치료를 끝내고 나는 다시 대이캐어로 돌아갔다.

내가 집에서 쉬고 있을 때 어머니는 걱정스러이 내게 이렇게 묻곤 하셨다.

"너 그렇게 쉬어도 직장에서 뭐라고 안하니?"

어머니는 며느리인 내가  저렇게 쉬다가  이민자들 직장 잡기도 어렵다는데...

직장에서 내밀리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에서 그러셨을 것이다.

대이캐어로 돌아간 지난 월요일, 나는 전쟁에서 돌아 온 용사처럼 환영을 받았다.

두 명의 매니저들이  우리 방으로 와서 안아주었고 다른 동료들도 수시로 와서 안부를 묻곤 하였다.

더 더욱 기뻤던 것은 아이들이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내 이름을 부르며 안겨오는 것이었다.

내가 없는 사이 새로이 나의 파트너가 된 중국인 홀리.

그녀에게도 무척이나 고맙다.

힘든 일은 자기에게 시키라며 많은 부분을 도와주고 있다.

모두들 교통사고 후유증을 염려하였지만  나는 이번 사고를 통하여 다시 나를 돌아보고 모든 일이 주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 짐을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