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계간 수필> 2005년, 여름호에 발표를 한 작품입니다.



                         바다, 그리움을 담아내는 그릇
                         
                                                                                            김 희재


   인일여고 복도에서 내다보면 언제나 바다가 있었다. 먼빛으로 보는 바다는 언제나 가슴에 터질 듯이

노을을 껴안고 있었다. 내가 바다를 떠올릴 때면 언제나 석양빛이 함께 따라오는 것도 그때 늘 인일여고

운동장 너머 저만치에 누워있던 바다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바다는 내 고향이고 그리움을 담아내는 그릇

이다. 그래서 그리운 이가 생각날 때면 바다가 보고 싶어지는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일찍 제주 성산 일출봉에 올랐다. 아직 잠에서 덜 깬 몸이 가파른 능선을 끼고 오르느라 귀에

서 목탁소리가 나고 현기증이 나서 그대로 주저앉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고 끝까지 올라가니 탁 트인 사

방에 늘 보았던 옛 친구처럼 아주 친숙한 모습으로 바다가 누워있다. 나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도 않고

아무 말도 듣고 싶지도 않은 심정으로 그저 무심히 바다만 바라보았다. 때로는 내 얄팍한 언어심상으로

는 그려낼 수 없는 풍광과 심정이 있다. 아무리 정확한 단어를 찾아내어 그것을 표현해 보려고 해도 도저

히 되지 않는 상황에 접하게 될 때, 나는 그저 아무것도 담지 못하는 머리가 되어 나를 버리고 속해있는

현실을 버린다. 남들은 그러는 나를 멍청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아니 실제로 나는 멍청한 사

람이다.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각의 실체를 모르고 늘 허상 같은 일상에 매여서 그저 등을 떠

밀리며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바다와 하늘 빛깔은 언제나 같은 톤이다. 하늘이 맑은 쪽빛이면 바다도 그렇고, 하늘이 짙은 잿빛이면

바다도 그렇다. 그렇게 서로 닮은 색깔인 바다와 하늘은 그 끝이 항상 맞닿아 있어서 어디가 하늘이고 어

디가 바다인지 구별을 하기가 어렵다.

마치 내 이성과 감성이 가슴 한복판을 쪼개어 서로 끝을 맞대고 있는 것처럼....

이제야 ‘찬란한 슬픔의 봄을’이라는 시구에서 말하는 찬란한 슬픔이라는 말이 무얼 뜻하는지 조금 짐작

할 수 있을 것 같다.

   성산 쪽 미천굴 가는 길에 있는 ‘김용갑 아트 갤러리’는 조그만 폐교를 수리해서 만들어 놓은 사진작품

과 설치미술이 어우러진 공간이다. 객지 사람이면서도 제주의 풍광에 빠져 그곳을 너무나도 사랑했던 사

진작가인 그는 사계절 변화무쌍한 제주의 모습을 렌즈에 담아내기 위해서 아주 오랜 시간을 카메라 앞

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원하는 색깔의 그림을 찾아낼 때까지 혼신을 다해 렌즈만을 응시하며 사진에

미쳐있는 사이 그의 몸은 조금씩 굳어져 가기 시작했다. 이름도 생소한 ‘루게릭병’이 그를 더 이상 사진

을 찍기는커녕 일상적인 생활조차 할 수 없는 장애인으로 만들어 버렸다.

   내가 갤러리를 찾은 날은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따뜻하고 화창한 날이었다. 억새풀과 제주의 검

은 돌들이 마치 고대 전쟁사에 등장하는 진법에 나오는 미로처럼 온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는 뒤꼍의 갤

러리에 들어섰을 때, 마침 제목도 알 수 없는 명상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묘한 분위기에 사

로잡혀 들어가는데 현관 옆 사무실에 마치 인도의 고승처럼 깡마르고 눈빛만 살아서 형형한 빛을 발하

는 작가가 정물화처럼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가슴이 철렁했다. 전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인데도 딱히 꼬

집어낼 수 없는 동질감과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다. 그의 작품을 보는 순간, 그 느낌이 어디에서부터 온

것인지 곧 알게 되었다.

   그의 작품 ‘제주의 사계’는 마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맑고 투명한 사진이었다.

같은 장소를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다른 색감이 나도록 만든 작품인데 나는 그 앞에서 그만 발이 얼어붙고

말았다. 그 속에는 작가의 혼과 열정, 슬픔, 아픔, 기쁨, 미래, 그리고 생명까지 그대로 녹아 있어서 도저

히 내 짧은 언어로는 그려낼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 이것을 얻기 위해 작가는 그리도 제 몸을 조금씩 죽여 갔구나......

나는 그 작가를 모르지만 그의 심정은 알 것 같아서 가슴 속이 예리한 날에 베이듯이 알싸하니 아파왔

다. 사람들은 그저 무심히 보아 넘길 수도 있는 이 장면 하나를 얻기 위해 제 생명을 조금씩 갉아먹은 작

가의 원죄와도 같은 그 감성이 그 작가에게만 있는 것은 아닐 터였다. 놀부의 심술보가 아닌 감성보를 하

나 더 달고 세상에 나온 사람들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제 생명을 갉아먹으며 살고 있구나 생각을 하니 도

저히 주체할 수 없게 눈물이 쏟아졌다. 왜 멀쩡한 사진 작품 앞에서 우느냐고 누가 물으면 딱히 대답할

말도 없는데 그냥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일상의 현실에 묻혀 치열한 생활인으로 살아야 했던 내 속에서

감히 고개를 내밀지 못하고 움츠려 있던 내 감성이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내게 호소할 수 있는 유일한 길

이 그렇게 나를 울게 하는 것뿐이었던 모양이다.

   사진 작품뿐만이 아니라 전시실 바닥에 조형물로 가져다 놓은 이름 없는 제주의 작은 돌멩이들도 내

가슴을 마구 흔들어댔다. 볼품도 없고 특징도 없는 그 돌멩이는 바로 나였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내가 그저 그런 군상의 아주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각이 들면서 아무것도 내어

놓을 것이 없는 내 삶이 자꾸 돌아다 보였다.

내가 가장 소중하다고 붙들고 있던 것들이 정말 귀한 것이었을까?

그것들은 내가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그 후부터는 바다를 생각하면 언제나 인일여고와 함께 그 갤러리가 오버랩 되어 떠오른다. 거기는 치

열한 생활인으로 살아야 하는 내 속에서 설 곳을 잃고 거의 뇌사상태에 빠져 있던 내 감성을 되살려 깨워

준 곳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곳은 이미 내게 또 다른 바다가 되었다. 잃어버렸던 내 감성을 만나게

하고 그리움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지금도 습관처럼 바다를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