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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 (5)



-32.-

 

6월의 아침이다.

커텐사이로 들어오는 햇볕이 온 방안을 환하게 밝힌다여자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 바깥의 소리에 귀기울여 본다.이중창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듯하다.

 

, 오늘은 무엇을 할까?이렇게 여유있는 나날이 언제까지일까...여행?... 그냥 이러고 지낼까?..

 

옆에 누운 딸애를 보니 아직도 잠속에 있다.

 

얘야정말 우리가 무얼 하는거지?

딸애의 볼을 살짝 건드리며 속으로 묻는다.

 

"엄마! 안녕히 주무셨어요? "

 

쌍커풀이 풀어지도록 눈을 뜨며 인사를 한다.

 

". 은지도 아주 잤지? 우리 오늘은 그냥 집에서 이렇게 뒹글까네가 너무 피곤한 같아서"

"증말?  히히 좋아라!"


양 손을 여자 겨드랑이로 들어 밀며 품안으로 들어온다.

 

"? 자고 싶어?"

"아니.. 그냥 엄마 만지고 싶어서 ㅎㅎ"

"그래? ㅎㅎ 엄마도 오랫만에 손을 끼어 보네.. 우리 감고 생각하자.."

 

얼마가 지났을까눈을 뜨니 옆의 딸애가 다시 잠들어 있다딸애의 팔을 살짝 들어내며 침대를 나온다.

맞은 창가로 가서 커텐을 걷으며 애에게 바람이 세게 닿을 까 싶어 창문 한쪽만 열어 놓는그러나 바람이 부드럽다. 아! 여름이 오고 있구나 ...


거실로 나오는데  전화벨소리가 들린다누굴까? 아침에..

 

...여보세요?

...할로!구텐 모르겐 !


독일어로 들려오는 음성에 여자는 깜짝놀란다.


...파울 로렌스 입니다너무 일찍 전화를 했나요?

...아! 안녕하세요.. 아니에요. 일어났어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로 말하자니 짧은 영어가 영 어설픈게 부끄럽다.

 

...다름이 아니라, 연주회 프로그램과 포스터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오늘 시간이 있으신가요?

...저의 사진이 필요하신가요?

...예, 기획사에서 우리 두 사람이 같이 있는 사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죄송합니다. 미리 얘기를 못 드려서... 저도 어제 저녁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러시군요.. 사실 어제 애가 피곤해 해서 오늘은 집에서 쉬려던 참이었어요.

...그러시다면 내일로 촬영을 미루어 보지요,은지가 혹시 아픈 것은 아닌가요?

...아프지는 않아요. 잠깐만요 .. 아직 애가 잠자고 있어요.. 좀 있다 다시 전화 주시겠어요?

...예, 그럼 한 삼십분 후에 전화드릴께요제가 오늘은  아인씨를 만나 같이 반주자 의상만이라도 촬영 전 미리 장만하고 싶습니다

...예? 제 의상을요? 벌써요?

...기왕이면 프로그램사진하고 같은 의상이면 좋을 듯 해서요..

...예.. 알겠어요. 그럼 딸애 상태를 보고 말씀드릴께요.

...예.. 그럼 전화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마치자 그녀에게  파도가 쏴! 밀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연주회를 너무 쉽게 허락한 것이 아니었던가기획사가 주선한다고그렇다면... 그냥 간단한 연주회가 아니잖은가어쩌지?


부엌에 가서 커피를 내리면서도  곰곰히 생각에 젖는다.

이젠  돌이키지 못 하는 기정 사실이야.. 그럼 앞으로 나가는 길만 있지그래 . 가 보자... 앞으로... 첨 가보는 길이지만  길이 있는 곳 이라면 가는거지 뭐.

 

애를 깨우러 방으로 들어가니 아이는 이미 깨어나서 초롱초롱한 눈길로 쳐다본다.


? 엄마! 로렌스 교수님이 전화하셨어? 엄마  나가야 해?“

 ?아니어찌 이리 눈치가 빠르니?“

? 엄마가 한국말로 안 하길래 ㅎㅎ.. ?

? 그래,  교수님이 엄마랑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 연주회 때문에..어쩌지? 은지야 많이 피곤해엄마가 교수님께 은지 일어난 후에 대답 준다고 했거든..“

? 그럼, 나갈게요. 재미 있겠네 ㅎㅎ


아이는 펄쩍 뛰듯이 세면장으로 간다여자는 내려진  커피를  담아 들고 거실로 와 라디오를 튼다. 멘델스죤의 '노래의 날개위에서'가 들려 나온다. 거실은  음악으로 꽉 차인다. 흐르는 듯한 피아노 반주에 바리톤 음성으로...어쩜 이 화창한 날씨에 이리도 어울릴까? 바로 옆에서 그녀를 위해 부르는 듯하다. 감미롭다.

잠시 소파에 앉아 끝날 때까지 듣는다. 


정확히 삼십분후에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로렌스 입니다. 어떻게 은지 괜찮습니까?

...예, 애가 좋아하네요 구경한다고요..교수님과의 시간을 마련하겠어요.

...오! 그렇다면 오늘은 의상만 준비하고 촬영은 내일 하도록 하지요아무래도 촬영하려면 미용전문인도 와야하니까 오늘 다 하기 어려울듯 합니다.내일은 시간이 오래 걸리니은지를 위해 제가 베비씨터를 구해 같이 지내도록 하겠습니다.“

...예.. 그럼 만나서 얘기를 더 나누고요. 제가 지금 은지와 아침식사를 한 후 한 시간 후에나 시간이 나겠는데요.

...아인! 그러면 우리 만나 아침식사 같이하고 ..오늘은 의상만 구하면 되니까 오랜 시간이 안 걸릴 듯합니다,

...예, 그렇지만  아침은 우리 식구끼리 간단히 할게요. 어디에서 만날까요?

...아인씨, 부담가지지 마시고 아침식사 같이 하시지요.. 기획사에서 반주자를 하루속히 보고 싶어합니다지금 연락하면 곧장 나올 겁니다식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연주회건 의논도 하고제가 삼십분 후에  아인씨 집 앞에 차 세우고 기다리겠습니다.

 

아니....무슨일이 이리 전격적으로 진행되는 거지?

 

...예,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딸애의 옷을 입힌다.


? 은지야, 지금 교수님과 같이 만나려는데 아침식사도 같이 먹자고 하시네..내일은 더 오래 사진 촬영이 있는데, 내일 목사님 딸 헬렌네 갈래아니면 엄마 사진찍는 것 귀경하던지.. ?

 

딸애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 본다.


? 엄마, 그럼 지금 나가서 먹는다는 거에요? 알았어요내일 엄마 사진찍는거 볼래요,헬렌네는 나중에 가도 되니까...“

 

여자는 세수를 마치고 살짝 화장을 한다.딸애는 옆에 앉아 방글거리며 웃는다.


? ! 우리 엄마 이쁘다. 엄마 나도 빨리 어른되어서 엄마처럼 화장하고 싶다. ㅎㅎ

 

딸애의 홍조된 얼굴을 보면서 여자도 볼이 발그래해 진다.

 

왜 이러지.. 기획사 사람이 나온다고 그러나.. 기분이 왜 뜨는게지?.

 

옷장을 열고 보니 제대로 된 정장이 없다.

모슬린 검은 원피스를 입고, 은색바탕에  검은 색 잔무늬가 있는 실크머플러를 살짝  걸친다.

 

딸애와 계단을 내려 가는 데, 갑자기 자신이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것 같다.

 

집대문을 연다.대문앞에 로렌스교수가 환하게 웃으며 서 있다.

 

?할로프린세스 은지!“


 딸애는 여자를 바라보며 ?무슨소리라고 묻는 눈길을 준다.


? 은지야, 교수님이 너보고 공주님이라고 하시네.. 너도 인사해 할로! 프로페쏘아!.. 라고


모녀의 대화를 듣는 로렌스 교수는  신기한 듯 쳐다본다.

 

? 할로! 프로페쏘아!“

! 은지! ?

 

교수는 은지를 먼저 뒷칸에 태운다.그리고 교수 옆자리 문을 열며 여자에게 타기를 권한다.

 

차는 달리기 시작한다.여자는 그냥 아무말도 안한다.

맡겨보자.. 라는 맘이다.

 

얼마 안걸려 목적지에 이른다.시내 중심에 있는 임페리알 호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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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정차하자  호텔 도어맨이 얼른 차문을 열어준다.


? 로렌스 교수님 어서 오십시요, 열쇠를 주시지요..“

 

교수의 이름을 아는 것을 보니 자주 찾는 가 보다.

 

안으로 들어간다.

딸애는 눈을 반짝 거린다.

여자는 딸애의 머리를 잠시 만지작 거린다.

딸애가  눈으로만 ' 왜?' 하면서 그냥 놔둔다.

엄마기분이 별 다른지를 아는 것이다.


호텔로비는 그리 넓지 않지만 묵중하니 귀족적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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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렌스는 로비쪽에서 바로 보이는 계단쪽을 가리키며,

 

?아인 , 이 호텔이 원래는 귀족의 집이었어요. 

 19세기 말에 비엔나 박람회가 열렸을 때, 저기 위 초상화의 주인공 황제 프란츠 요셉의 명으로, 

영빈관으로 사용하였었지요. 그 후에도 계속하여 '호텔 임페리알'로 명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비엔나를 찾는 많은 명사가 투숙하고 있지요. 특히 아침식사가 좋기로 유명하고요. 하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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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의 유쾌한 설명을 들으며 호텔 레스토랑으로 들어가니 한쪽에서 손을 올리며 두사람이 일어선다.

 

? ! 먼저 와있었네. 아인씨! 기획자와 의상전문가입니다. 인사하시지요

 

서로 간단하게 인사를 마친후 자리에 앉는데두사람들이 계속 여자를 호기심 가득 쳐다본다.

 

이렇게 여자에게 한 아침이 새롭게 펼쳐지는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