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첫 금요일 저녁
상금 선배님을 다운타운에서 만나 용화 선배님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그 날은 용화 선배님의 5회 동기분들이 미국에서, 토론토에서, 하와이에서 오시는 날이었다.
마치 친정언니를 맞이하는 설레임으로 우리는 퇴근 시간의 분주한 도로를 이리저리 빠져나와 달려가고 있었다.

용화 선배님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안에서 들려오는 웃음 소리, 구수한 음식 냄새...
들어 가지 않아도 그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용화 선배님의 다정한 미소는 언제 보아도 큰 언니처럼 푸근하다.
우리가 준비해 간 꿀 상자를 보시더니 어쩔 줄 몰라 하시며 고마워하셨다.
선배님들에게 우리는 후배로서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였다.

선배님들과 인사를 나누자 우리는 마치 오랜 동안 알고 지내던 친구처럼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앨범을 펼쳐 놓고 학창 시절 그 때로 돌아가신 선배님들 모습은 마치 그 시절의 교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하였다.
교복 치마 허리를  돌돌 말아 올려서 짧게 입었던 이야기,
애교 머리를 내리고 실핀을 꽂아 멋부린 일,
관람금지 된 영화를 보러 갔다가 선생님에게 붙잡힌 기억등...

그 때 그 시절 이야기들로 그 밤이 익어가고 우리는 아쉬운 작별을 나누었다.

토요일 이른 아침, 우리는 벤프를 향해 떠났다.
1번 하이웨이를 달리면서 모두들 드넓은 들판에 감탄을 하였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즐거워하였다.
같은 로키 산맥이지만 미국과는 다른 분위기의 산들을 보면서 캐내디언들이 왜 순박하고 겸손한 지 ...

저 거대한 자연 앞에서 캐네디언들은 고독을 배우고 겸손해지는 법을 배웠으리라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벤프에는 썰파산이 있다.
우리는 4명씩 곤돌라를 타고 산을 올라가면서 주변의 경치들을 감상하고 산 꼭대기에 있는 하이킹 코스를 걸었다.

다람쥐들을 만나기도 하고, 사진을 찍으며 올라가는 길이 마치 소풍을 가는 초등학생처럼 정겨웠다.

내려오는 길, 빽빽이 나무가 들어찬  계곡을 내려다보며 어느 선배님은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하셨다.
"저기 좀 봐라. 융탄자 같다."
"정말 그렇네요."

대답하고 보니 그 말은 융단과 양탄자의 합성어였다.

점심식사는 밴프 시내에 있는 한국 식당에서 하였는데 "게 눈 감추 듯" 정말 그렇게 하였다.

주변에 있는 상점들을 둘러 보았는데 로키 산의 역사를 말해 주듯 암모나이트 등의 화석과 크리스탈종류의 돌들이 많이 있었다.

밴프에서의 온천욕을 뒤로하고 우리는 미네완카호수로 향하였다.
인디언 한 마을이 수몰지구가 되어 거대한 호수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선배님들 중에 목사님 한 분이 계셨는데 함께 안내문을 읽다가 서로 쳐다보며 이네들의 괘씸한 처사에 같이 흥분하기도 하였다.

인디언들은  살던 땅 모두 빼았기고 그것도 부족하여 외곽지역으로 자꾸 밀려나고있다.

"아, 힘없는 자의 슬픔이여..."


우리는 호수 한 쪽에 있는 쉘터에서 바베큐로 저녁을 먹고  숙소가 있는 캔모어로 향하였다.

그 날 저녁 나의 침대 파트너는 아틀란타에서 오신 베로니카 선배님이셨다.
우리는 나란히 침대에 누워 약속이라도 한 듯 지나온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는데...

인생 선배로서 그 분이 들려 주신 이야기는 어느 신부님의 강론보다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시어머니 모시고 산 이야기, 자녀들 키우고 교육 시킨 것...
기도로 어려움을 이겨내며 살아가는 이야기등...

그 날 밤 나는 침대의 용수철이 어깨를 눌러서 편안한 잠자리는 아니었지만 아음만은 아주 평안하였다.

다음 날은 레이크 루이스를 향해 떠났다.
빅토리아 여왕의 넷째 딸이었다는 루이스는 이 호수를 그렇게 사랑하였다지...

간간히 비가 내리다가도 우리가 내리면 비는 약해지거나 멈추곤 하였다.

머레인 호수를 향해 갈때는 빗줄기가 점점 세어지고 있었다.
산 등성이를 오를 때에도 빗줄기는 계속 되더니 우리가 산 중턱에 있는 호수 근처에 오르자 정말 거짓말처럼 해가 나타났다.

산 중턱에서 내려다보는 호수는 정말 장관이었다.
호수 빛깔은 어떻게 표현 할 수 없었고 하늘과 나무와 물빛이 어우러져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 때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가 교가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평소 교가를 부를 일이 전혀 없던 나는 주변을 돌아보며 따라부르기 시작하였다.

"발해 물에 반짝이는..."

어, 전혀 생각나지 않던 가사가 아득한  기억 저 멀리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하와이에서 오신 선배님의 빨간 모자를 서로 돌아가며 쓰고 사진을 찍던 그 머레인 호수에는 지금도
우리 교가가 메아리치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