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카페>에서
                                                                      김  희 재
                                                                
  한 동네 살다가 이사를 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파트 평수를 줄여 가는 바람에 자기가 미국에서 사 온 등나무로 된 예쁜 탁자와 의자 두 개를 놓을 곳이 없을 것 같아 먼저 살던 아파트 지하실에 두고 왔으니 혹시 필요하거든 가져다 쓰라는 것이다.
  마침 앞 베란다가 허전해서 뭐라도 들여놓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별 생각 없이 그것을 가지러 아들을 앞세우고 갔다. 미국에서 예까지 가져 온 것이니 무언가 조금은 남다른 데가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와 함께.....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아파트 지하실에서 먼지를 뽀얗게 둘러쓰고 있는 그것은 예쁜 탁자라기보다는 만지기조차 겁나는 흉물스러운 쓰레기라고 해야 옳았다. 갸름한 모양의 탁자 위에 얹혀 있는 유리는 이미 투명하지 않은 지가 오래 되었고, 얼기설기 엮인 등나무는 틈새에 먼지랑 음식 찌꺼기 같은 것이 빼곡이 들어 차 있어 손을 대기가 겁이 날 지경이었다.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헝겊으로 되어 있는 의자의 방석은 원래 색이 무언지조차도 모르게 온통 곰팡이가 새까맣게 뒤덮여 있었다.
  쓰레기장에 내다 놓아도 일등 쓰레기가 되었을 이런 것을 가져다 날더러 어디다 쓰라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슬그머니 화가 나려 했다.
  “엄마, 이거 우리 집에 가지고 가실 거예요?”
  탁자를 가지러 가자는 말에 마지못해 따라 나섰던 아들도 어두컴컴한 지하실에서 쓰레기나 다름없는 탁자를 보더니 무척 근심스런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이거 가지고 가야 버리기만 귀찮을 거 같은데요?”
  아들은 계속해서 내게 그냥 가기를 노골적으로 종용한다.
  “글쎄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한 번 잘 살펴보기나 하고 어떻게 할지 결정하자.”
  제발 그냥 갔으면 좋겠다는 아들의 시선을 뒤통수가 따갑게 느끼면서도 나는 먼지구덕이 탁자를 요모조모 뜯어보았다. 갸름하고 자그마한 탁자와 두 개가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의자는 결코 싸구려가 아닌 제법 멋을 부려 만든 물건 같았다. 다만 주인이 이것을 제대로 쓰지 않고 아무 데나 방치한 바람에 한 번 제 구실도 못해 본 채 이 꼴이 되었을 뿐.....
  아무튼 이왕 내게 준다는 물건이니 집에 가져다 놓고 쓰임새를 생각해 보자고 마음먹고 아들과 함께 그것을 낑낑거리며 맞잡아 들고 왔다. 불과 아파트 서너 동을 지나오는 동안에 두 손은 물론이고 온 몸이 다 시커먼 먼지로 뒤범벅이 되었다. 아들은 노골적으로 입을 쑥 내밀며 싫은 내색을 했고 나도 몇 번이나 그것을 아무 데나 팽개치고픈 것을 꾹 참았다.
  얼결에 지하실에서 꺼내오긴 했지만 도저히 그대로는 집안으로 들일 엄두가 나지 않아서 밖에서 일차로 먼지를 닦아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물걸레로 구석구석 쌓인 먼지를 닦느라 한참을 북새를 떤 후에 이것을 안에다 들여놓고는 서둘러 소파 천갈이 하는 집에 전화를 걸어 사람을 불렀다. 의자 방석을 예쁜 꽃무늬가 있는 새 천으로 갈아 씌우고, 면봉을 사용해서 나무 사이 구석구석에 끼인 미세한 먼지까지 말끔히 닦아내고는 시장에서 래커를 사다가 두어 번 뿌려 주었더니 등나무 특유의 색깔이 되살아나면서 반들반들하게 윤이 났다. 이제는 누가 보아도 탐을 낼만큼 단아하고 세련된 탁자가 되어 자태를 한껏 뽐내는 것이 내 맘에 꼭 들었다.
  이것을 앞 베란다의 여러 화분들 사이에다 놓으니 예상했던 것 보다 분위기가 훨씬 좋다. 거기에 앉으면 창밖에 모든 풍물이 유리창을 통해 집안으로 들어 와 삭막했던 아파트 베란다가 마치 파리의 거리 카페 같은 분위기로 바뀌어 버리니 말이다.
  이렇게 해서 앞 베란다의 이름이 ‘나 홀로 카페’가 되었다. 물론 카페의 주요 고객은 나다. 아침에 식구들을 모두 내보내고 나서 향내 나는 커피를 한잔 만들어 가지고 나와 창 밖을 내다보며 호젓이 앉아 있으면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서 스무 살 무렵의 감수성을 되찾기도 하고, 나이를 앞질러서 인생을 관조하는 철학자가 되기도 한다. 거기에서 나는 이파리도 없이 앙상하게 서 있던 목련 가지 끝에 새하얀 꽃잎이 달리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오래간만에 봄이 오고 있음을 느끼기도 하고, 모두가 잠이 든 깊은 밤에 혼자서 빈 하늘을 지키고 있는 조각달을 만나 은밀히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자칫 그대로 폐기처분이 되고 말았을 뻔했던 탁자는 나를 만남으로 인해 비로소 자기 존재의 의미를 부여받았고, 같이 만들어져 세상으로 퍼져 나간 어느 탁자보다도 훨씬 살뜰한 주인 사랑을 많이 받으면서 그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게 되었다. 이렇게 내 손에 와서야 비로소 제 모습을 찾은 탁자를 애지중지 하며 어루만지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만남이란 게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 일인가!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 귀하게 쓰이기도 하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이 방치가 되어버리기도 하는 것은 비단 물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님이 분명한 일이니 말이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5-08-23 07:23)